계급투쟁
  • 부르주아 선거에 반대하는 프롤레타리아 정치
  • 부르주아 선거에 반대하는 프롤레타리아 정치

    <편집자 주>
    부르주아 총선을 앞두고 "우리가 자본주의 선거 참여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관심과 정치 참여의 기권을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정치와 부르주아 국가의 혁명적 전복을 지지하기 때문이다."는 원칙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 글을 다시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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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운동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선거, 의회제도는 부르주아 정치의 핵심이다. 물론 우리는 자본가계급이 위기의 시기(파시즘이 명백한 보기이다)에 또는 스탈린주의 정권이나 주변 나라들의 다양한 군사 독재에서처럼 선천적으로 약한 곳에서 자주 그것을 배제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야만적인 억압은 계급 지배의 가장 효과적인 형태가 아니며, 최선진국에서는 민주주의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착취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이 통치되는 방식에 대해 실제로 발언권이 있다는 환상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민주국가는 부르주아 독재의 더욱 미묘한 가면이며, 계급 갈등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는 것을 막는 가장 좋은 틀이다.

    그러나 19세기에 노동계급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 투쟁했고, 이 투쟁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맑스주의자와 아나키스트가 구별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참정권 운동가들의 영웅적인 투쟁은 어떠한가? 확실히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위해 확보한 권리를 행사하여 그들의 투쟁을 존중해야 하는가?

    맑스, 엥겔스, 로자 룩셈부르크 등은 노동계급이 경제적 차원에서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 투쟁을 통해 얻은 개선을 뒷받침할 법률을 위해 투표권과 부르주아 의회 내부의 투쟁을 강령에 포함하는 정당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이 그들을 개량주의자라고 공격하고 혁명을 위한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투쟁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여전히 우위에 있으며 따라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계급 정체성과 역사적 강령을 발전시킬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답변했다.

    이러한 관점에 심각한 함정이 담겨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노동자 운동이 즉각적인 이익을 위한 투쟁에 너무 집착한다면, 혁명과 코뮤니즘의 장기적인 목표를 놓치게 되어 고통스럽게 만들어진 조직이 부르주아 사회의 기능적 부분이 될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노동조합과 대중적 사회민주당들은 점차 자본주의로 통합되었고, 그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상의 흐름이 생겨났고, 자본주의가 곧 혁명을 필요로 하는 역사적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에 항상 기반을 둔 맑스주의의 기본을 수정함으로써 이 과정을 정당화했다.

    이러한 수정주의 또는 기회주의 경향의 절정은 위기의 시대가 도래하고 노동자 조직이 선택에 직면한 1914년에 도달했다. 그것은 부르주아지에 자신을 팔고 전쟁을 지지함으로써 자본주의 내에서 성취한 것을 고수하느냐, 노동계급의 국제적 이익을 옹호하고 전쟁에 반대함으로써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느냐의 선택이었다. 1917~21년에는 혁명의 위협에 반대하여 지배계급을 지지하느냐, 혁명 투쟁에 동참하느냐의 선택이 극명하게 제기되었다

    혁명은, 정의에 따르면, 과거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요구하며, 1914~18년 제국주의 전쟁으로 촉발된 최초의 거대한 혁명 물결 속에서 노동계급에 충성을 다한 사람들은 자본주의 전쟁 세력의 일부가 된 낡은 조직, 즉 노동조합과 정당과의 단절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들은 개혁을 위한 투쟁에 초점을 맞춘 이전 시대의 전술을 거부하고, 혁명의 필요성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조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에트 대 의회

    투표와 의회의 문제는 혁명의 시대에 적합한 전술에 대한 논쟁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3년간의 헛된 학살 끝에, 노동계급은 봉기와 대대적 파업이라는 진정한 혁명적 방법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운동은 노동계급이 힘을 통합하고 정치 권력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조직 형태(노동자 또는 병사의 대중 총회에서 선출되고 소환이 가능한 대표자를 기반으로 하는 소비에트 또는 노동자평의회)를 만들어냈다. 이 기관들은 지금 정권을 잡고 향후 4~5년 동안 국민을 억압하고 사취할 수 있는 정당에 투표하는 원자화된 시민을 기반으로 하는 부르주아 의회에 직접 반대했다. 그리고 평의회가 등장하는 모든 곳, 특히 독일에서 지배계급은 무엇보다도 평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민주당의 영향력을 통해 권력을 의회에 넘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의회 형태를 넘어 실제로 새로운 형태의 정치 권력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아래로부터 직접 통제되고 사회의 완전한 변혁을 목표로 했을 때 투표권이 대다수의 노동계급에 부여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영국에서는 참정권 운동의 대다수가 전쟁을 지지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후인 1918년에 (아직 전부는 아니지만)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는 것도 상징적이었다. 처음에는 피착취자와 피억압자 다수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이 계급 지배의 전복을 초래할 것이 두려워 반대했지만, 부르주아지는 이제 위협받는 체제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보통 선거권을 부여하기 위해 서둘렀다. 실비아 팽크허스트는 당시 이 속임수를 비난했는데, 여전히 우리에게 유명한 참정권 운동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전쟁을 지지한 그의 어머니 에멀린(Emmeline)을 포함한 참정권 운동과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실비아 팽크허스트와 그들의 기관지 「노동자 전함」(The Workers' Dreadnought)은 자신을 노동자 혁명과 동일시하면서 의회와 부르주아 선거에 맞서 소비에트를 위한 투쟁에 들어갔다.

    프롤레타리아 전망의 필요성

    물론 이 모든 것은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노동계급은 혁명에 가까워졌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노동계급은 자신을 계급으로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수십 년 동안 소련과 동구권 국가에서 '코뮤니즘'을 건설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고, 맑스주의는 반박되어 왔고, 노동계급은 더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왔다. 확실히 다음 선거에 출마하는 주요 정당들은 더는 계급을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에 '노동'당도 포함된다. 그리고 우파의 영국독립당(UKIP)과 좌파의 녹색당과 같은 기성 정당에 대한 급진적인 대안인 척하는 정당들은 우리에게 영국다움으로 또는 관련 시민으로서 투표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1914년보다 훨씬 더 노쇠하고, 오래 지속할수록 인류의 생존 자체를 더욱 위협한다. 경제 위기, 전쟁, 도처에서 야만에 직면한 세계에서 부르주아 선거에서 약속한 국가적 해결책과 개혁은 그 어느 때보다 기만적이다. 그리고 첫 번째 혁명의 물결 이후 전 세계적인 규모의 모든 구조 변화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은 여전히 이 체제에서 부를 창출하는 계급이고, 여전히 피착취계급이며, 여전히 사회를 위에서 아래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에게 부족한 것은 전망, 즉 오늘날의 모습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습에 대한 감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망은 정치적 관점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누가 권력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 즉, 소수의 착취자가 권력을 갖느냐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이들로 구성된 대다수가 권력을 갖느냐, 그리고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와 자연환경의 파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그들의 특권을 지키느냐, 연대와 인간의 필요 충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모든 형태의 부르주아 정치는 우리가 이러한 사회 질서에 도전하기 위해 필요한 자기 조직화되고 의식적인 운동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선거 참여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관심과 정치 참여의 기권을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정치와 부르주아 국가의 혁명적 전복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출처> 국제코뮤니스트흐름
    https://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1503/12357/proletarian-politics-against-bourgeois-elector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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