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 대대적 촛불 투쟁은 더 넓고 깊은 곳으로 향해야 한다.
  • 대대적 촛불 투쟁은 더 넓고 깊은 곳으로 향해야 한다.




    1. 종편 등 언론 보도를 계기로 점화되기 시작한 촛불 투쟁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게 확산되었다. 이러한 대폭발과 분노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보수언론과 종편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촛불 집회를 중계했고, 박근혜 게이트 폭로에 전 방위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중의식과 행동이 급진화하지 않도록 촛불 집회를 질서와 평화 집회라는 틀에 가두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여기에는 자유주의-진보 언론과 보수-반동 언론이 따로 없이 한목소리를 냈다.

    국회의 탄핵 가결 이후에는 비판과 지지의 수위는 다르지만,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유지하는 황교안 체제의 안착과 대선 국면으로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10월 29일 첫 집회를 시작으로 촛불의 행렬은 (주최 측 추산) 한 달 만에 200만을 넘어섰고, 작년 연말엔 연인원 1,000만을 넘기며 폭발한다. 언론보도에 의해 점화된 촛불 투쟁은 이제 언론에만 의존하지 않고 거리와 광장에서 직접 소통한다. 온라인에서도 다양하고 풍부하게 소통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촛불 투쟁에서 나타나고 있는 열린 정보 공유, 쌍방향 소통, 수평적 토론, 독립적 판단과 행동 등 새로운 ‘대중적 소통’이야말로 1,000만 촛불이 (보수반동) 언론권력을 넘어설 힘이자 가능성이다. 

     

    2. 2016년 11월 12일 개최된 ‘민중총궐기-범국민행동’ 이후 ‘퇴진행동’은 지난 2017년 1월 21일 ‘13차 범국민 행동의 날’ 촛불 집회까지 2개월 넘게 수많은 촛불 집회를 개최했다.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는 ‘퇴진행동’이 기획하고 주최했지만, 수십만 명을 넘는 인원이 숫자를 늘려가며 참가한 것은 개별단위의 자발적인 참가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단해 참가한 사람들이 시차를 두고 꾸준히 모인 것이다.

    집회 참가자 중 상당수가 처음 참가한 집회였지만, 이들의 분노는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까지는 모르지만 ‘박근혜가 물러날 때까지 촛불 집회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촛불 투쟁의 확산은 바로 이러한 ‘분노’와 분노를 표출할 ‘광장’과 광장에서 주장해야 할 ‘목표’가 누구에게나 명료하게 보였고, 그것을 ‘촛불 집회’가 실현해 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촛불 투쟁의 유지와 확산에 '퇴진행동'이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집회 주최 측은 촛불 투쟁의 발전 가능성인 ‘분노’와 ‘광장’과 ‘목표’를 제한 없이 열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통제하고 가두는 역할도 했다. 촛불 투쟁을 통해 광장의 직접민주주의를 확장하고 나아가 촛불을 넘어선 다수의 혁명으로 발전시키는 갈림길에서 퇴진행동이 그 계기를 막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3. 촛불 투쟁이 사상 초유의 규모로 분출한 계기는 박근혜 정권의 추악한 민낯이 밝혀지면서이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늘 감춰져 있었다. 바로 박근혜 정권 이전부터 곪아 터진 자본주의 위기(공황)가 문제의 본질이다.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자본가 권력이 근본적인 처방보다는 자신들의 연명을 위해 모든 희생과 고통을 노동자민중에게 떠넘겼다.

    1,000만 비정규직,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 최악의 450만 실업자 시대, 몰락하는 자영업, 생존권 위기에 몰린 빈민과 노인, 철저한 계급사회임을 증명하는 구조화된 빈부 격차,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촛불 투쟁의 배경이다.

    정치적으로 박근혜 정권은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국정원 동원 부정선거 문제와 세월호 참사 책임이라는 치명적인 약점과 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특정 세력의 권력 독점-남용 문제로 내부 균열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었다.

    이에 박근혜는 자신의 약점을 덮기 위해 반대세력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지지층 결집만을 위한 독선적 통치로 일관해왔다. 집권 초기부터 공안탄압으로 시작하여,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투쟁을 온갖 추악한 방법을 동원해 막았다. 다음에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투쟁인 민중총궐기를 국가폭력으로 막고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사경에 빠뜨려 끝내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으로 대표되는 지도부를 구속하며 탄압의 고삐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거칠 것 없이 공격에 매진하던 박근혜 정권은 내부 균열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해 박근혜 게이트를 정점으로 급격하게 추락했다.

    박근혜 정권 내내 밀리기만 하던 저항 세력에게 촛불 투쟁의 힘은 새로운 공간과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재벌의 정경유착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성과연봉제, 사드 배치 철회, 국정교과서 추진 중단 등의 투쟁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절박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현안은 차가운 농성장과 광화문 광장 한편에 묻혀있다.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사태로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음에도 <노동자의 책> 사건과 같이 국가보안법 탄압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것은 아직 적대적인 방해세력과 시스템이 건재함을 방증한다. 더욱 근본적이고 강력한 투쟁 없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4.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 투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대규모 집회에서 중심이 되어 왔다. 그만큼 조직력과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초기에도 조직노동자들은 집회의 중심을 유지했고 거리행진에서도 버팀목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후퇴를 거듭한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 투쟁에서도 ‘조직적으로 참가하는 단체 참가자’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동안 유력한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외면하거나 방해했다.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에 맞선 총파업 투쟁은 회피하거나 무력화시켰다. 또한, 크고 작은 노조를 가리지 않고 관성처럼 자리 잡은 어용세력과 조합주의자들은 민주노조 원칙을 훼손하고 수많은 투쟁을 교란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예상치 않게 맞닥뜨린 촛불 집회의 위세에 조직노동자들은 자극받고 고무되기도 했지만, 노동조합 투쟁에서 그래왔듯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투쟁 물결에 자신들이 가진 노동자 고유의 무기로 투쟁에 힘을 싣기보다는 형식적으로 대응했다. 책임과 희생이 따르는 ‘계급적 투쟁’보다는 편하고 이익이 되는 ‘조직적 집회 참가자’의 길을 택했다.

    조직노동자들은 대대적인 촛불 투쟁을 만나 박근혜 정권의 공범인 ‘재벌(대자본)에 맞선 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촛불이 100배로 커지는 동안 자신들의 동료인 ‘투쟁사업장 현안 해결을 위한 연대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 집회에서 유의미한 동력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 고유의 투쟁으로 촛불 투쟁과 결합할 때 박근혜 정권과 자본가 지배체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5. 연인원 1,000만 명의 촛불 집회 참가가 다수는 노동조합, 정당, 시민단체 등의 조직적 참가자가 아닌 개별 단위(가족, 친구, 혼자)로 자발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이다. 자발적 참가자들은 조직된 세력에 거리를 두기도 하고, 조직화되기를 바라기도 하고, 스스로 조직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대한 촛불 대중이 어느 정당이나 단체에 대규모로 가입하는 차원이 아니라 촛불 대중의 가장 명료한 부분이 스스로를 정치(의식)적으로 조직하는 일이다.

    자발적 참가자들은 10여 차례 이상의 촛불 집회를 거치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촛불 투쟁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촛불 대중의 분노가 ‘급진적 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시도되지도 못하고 막혔지만, 촛불 집회에서 나타난 ‘저항 문화의 정서적 충격과 창조력’은 또 다른 투쟁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촛불 대중 다수가 여전히 미조직-개별 참가자로 남아 있는 이유는 촛불 집회의 대형 무대와 긴장감 없는? 행진에서 집회 참가자들은 주체가 아닌 관객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촛불 투쟁이 열어 놓은 광장을 제한 없이 넓혀야 한다. 거리, 일상, 지역, 공동체에서 다양한 형식과 열정적인 내용으로 수백, 수천, 수만 개의 광장토론-대중총회(집회, 회합)를 만들어야 한다. 그곳에서 토론하고 결정된 것을 함께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광장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이다.

    조직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발적 참여자들도 아직은 촛불 광장에서의 열린 정치와 직접 민주주의 요구를 일터, 생활공간, 지역 사회로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서 토론과 투쟁을 통해, 크고 작은 권리를 찾고, 공동체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촛불 투쟁이 아직 집회 참가자들의 삶과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작은 의미에서도 촛불 투쟁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이다.


    6. 2017년 겨울, 우리가 맞고 있는 ‘자본주의 위기’의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혹독하다.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노동자민중의 생활조건은 악화되었다. 실업은 점점 더 커져 일상이 되었고, 비정규직 확대는 이 사회를 점점 더 깊이 잠식하고 있다. 최소한의 생활 조건도 기대할 수 없는 가난과 굶주림마저 만연하다. 촛불 투쟁은 이렇게 비참한 현실과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가 결합한 결과이다.

    이에 수십, 수백만의 분노한 사람들이 ‘박근혜 퇴진’과 함께 마음속으로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염원하며 거리에 나섰다. 이러한 분노와 염원은 그동안의 수동성을 넘어 광장과 거리를 ‘거대한 인파’라는 물리력으로 점거했다. 광장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막혀있던 분노와 현재의 위기에 대한 문제들을 주장하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수백만의 대중들이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의식’은 단상에 선 지도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거나 그의 지침을 따른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대적인 토론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그러한 토론을 이끌어내는 투쟁을 경험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촛불 투쟁의 미래는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가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것은 눈앞의 정세를 쫓는데 급급한 정권교체 전략이 아니라, 촛불 투쟁에서 근본적으로 부족한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현실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7. 이 체제는 박근혜와 같은 대표자를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다.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자본가 계급’의 이윤추구를 보장하고 이 사회의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새로운 정부를 세울 것이다. 그 배후에 ‘국가’라는 폭력기구가 환상(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켜주는 곳)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질적인 지배자들’이 기대는 곳이 바로 국가기구이다. 그들은 한 몸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본가 계급의 국가를 지키고 강화할수록 그들도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촛불 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한 줌 안 되는 지배계급의 착취와 불평등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국가(통치)기구의 일부인 정부를 야당으로 교체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지배계급의 특권을 그대로 유지해주고 노동자민중에게는 불리한 ‘선거제도’로는 더욱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로지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 권력을 무너뜨리고, 다수 계급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상을 건설해야 가능하다.

    그 희망은 비록 지금 소수이긴 하지만, 선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생산과 일상을 직접민주주의로 조직해, 자신의 삶을 조절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법 제도에 맡기지 않고 투쟁으로 돌파하면서 스스로 조직하고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즉 ‘자기 권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 촛불 투쟁의 ‘광장’은 생산현장과 노동자민중의 삶과 투쟁이 있는 모든 곳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 촛불 집회의 ‘민주주의’는 광장 토론-대중총회-직접행동으로 조직화하여, 1,000만 촛불 참가자의 지역, 공동체, 일상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 촛불 광장의 ‘직접 정치’는 완전한 정치사상의 자유 쟁취와 노동자계급의 자기 권력 의지로 나아가야 한다.

    - '대대적인 촛불 투쟁'은 야권연대-정권교체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의 전면적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아직 작은 승리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 권력'을 위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첫 번째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가 천천히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갈 길이 먼 것이다.


    2017년 2월 1일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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