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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2호] 자본주의 쇠퇴 논쟁 : 40년의 공공연한 위기
  • 조회 수: 7701, 2013-08-23 14:18:31(2013-08-23)
  • 자본주의 쇠퇴 논쟁 : 40년의 공공연한 위기


    [기획번역] 40년의 공공연한 위기는 자본주의 쇠퇴가 종착역에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후 호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맑스주의가 쓸모없게 되었고, 자본주의가 영원한 젊음의 비밀을 발견했으며1)  노동계급이 더 이상 혁명적 변동을 위한 세력이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완전한 고립 속에서 늘 활동하고 있는 소수의 혁명가들은 맑스주의 근본적인 교의에 여전히 충실하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한 명은 새로운 혁명적 주체에 대한 마르쿠제의 탐구에 대한 대응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재확인하는 책,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에 대한 비판」(1972)을 출간한 미국의 폴 매틱(Paul Mattick)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장 끊임없는 공헌은 1969년에 출간된「맑스와 케인즈: 혼합경제의 한계」였는데 이 책은 1950년대 이후 연구물과 에세이에 기초하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 공공연한 경제위기의 새로워진 단계의 첫 번째 징표가 드러났지만 (보기를 들어 1967년의 파운드화 평가절하), 자본주의가 아직도 깊고, 구조적인 위기에 의해 부설된 체계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흐름을 역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매틱은  “영구 위기” 에 대한 그의 주요 저술이 나온 지 30년이 넘은 후에 헨릭 그로스만 (Henryk Grossman)의 자본주의 붕괴이론을 요약하고 발전시켰는데2)  여전히 자본주의가 퇴행적 사회체제로 남아있고, 축적과정의 기본적 모순이 요술을 부릴 수 없어 표면으로 드러날 운명이었다고 주장했다. 축적과정을 규제하는 부르주아지의 국가의 사용이 서구에서 선호하는 케인즈주의 “혼합경제”이건 동구의 스탈린주의 유형이건, 이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는 가치법칙의 작동에 간섭하려는 의무가 모순을 극복하려는 체제의 징표가 아니라 (보기를 들어 카르당(Cardan)이 「현대 자본주의와 혁명」에서 주장했듯이) 바로 자본주의 쇠퇴의 표현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선진공업국에서 ‘번영하는’ 조건의 긴 기간에도 불구하고, 자본생산이 경제에의 국가개입을 통해 내재적 모순을 극복했다는 가정에 대한 어떠한 근거도 없다. 개입 스스로 자본 생산의 위기의 지속성을 가리키고 있고 정부가 결정한 생산의 성장은 사적기업 경제의 계속되는 쇠퇴의 분명한 징표이다. […] 케인즈주의 해법은 모순을 연장시키는 사이비 해법으로 드러날 것이고 맑스가 예측한 자본축적의 모순적 경로를 막아내는 해법은 아니다."3)
     

     이처럼 매틱은 “자본주의가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생산체제이기를 그쳤고 반대로 보이는 모든 피상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퇴행적이고 파괴적인 생산체계가 되었다 4) 고 주장했다.  제19장  “제국주의적 명령” 의 첫머리에 매틱은 전쟁으로의 추동은 그것이 축적과정에서의 방해물의 논리적 결과이기 때문에 자본으로 막아낼 수 없다고 확인한다. 그러나 “전쟁을 통한 낭비물 생산이 승리한 자본주의 강국들을 위한 자본확장의 새로운 시기에 도움이 되는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동과 정치권력의 대체를 가져오지”만, 그는 부르주아지가 이로 인해 너무 확신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재빨리 덧붙인다. “이런 종류의 낙관주의는 핵무기 사용을 포함할지도 모르는 현대전의 파괴 관점에서 보면 지배적일 수 없다."5)


     그러나 자본주의에게는 “전쟁이 만장일치가 될 수 없는, 자살일 수 있다는 인식은 새로운 세계 대전으로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6)  그러므로 그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천명하는 전망은 혁명가들이 1차 세계대전시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로 내걸었던 기치로 남아있다.

     

     그러나 「맑스와 케인즈」에서의 매틱의 자본주의 쇠퇴에 대한 분석은 몇 가지 결함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그는 가치법칙을 쇠퇴의 표현으로 왜곡하는 경향을 보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동구 블록의 완전히 국가화된 국가는 더 이상 가치 법칙에 종속되지 않고 위기를 향한 경향에 종속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적 자본의 관점에서 이러한 체제가 “국가의 수중에 자본을 집중하기 때문에 국가 사회주의로 묘사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한다.7)  심지어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국가자본주의로 기술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국가자본주의체제는 사유재산 자본주의에 재앙을 주는 이윤생산과 비이윤생산 사이의 특정 모순의 고통을 받지 않는다…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경기침체 없이 이윤생산과 비이윤생산을 할 수 있다.”8)  그는 어떤 면에서 스탈린주의 국가가 자본주의의 서구형식에 매우 적대적인, 다른 체제를 구성한다는 생각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냉전 배후의 추동력을 발견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오늘날 제국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제국주의는] 자유방임자본주의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와 다르다. 왜냐하면 자본은 원료 원천, 특권적 시장, 자본수출 이상의 것을 위해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더 이상 경제적 가치관계와 경쟁적 시장 메커니즘에 종속되지 않는 자본생산의 새로운 형식에 맞서 사유재산체제로서의 삶을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9)  이러한 해석은 동구 블록 국가들이 엄격하게 말하여 그들 자신의 제국주의적 역동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매틱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후에「국제공산주의흐름(ICC)」의 지부가 된 미국의「국제주의」그룹은 매틱의 이러한 결점을 인식하고 “국가자본주의와 가치법칙: 「맑스와 케인즈」에 대한 응답”이라는 글을 1970년대 초「국제주의」제2호에 실었다. 이 글은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매틱의 분석이 그가 여러 곳에서 방어한 쇠퇴의 개념을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국가사회주의가 위기에 종속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매틱이 주장한대로 그것이 생산력의 자동제어와 발전에 더욱 유리하다면, 또한 스탈린주의체제가 제국주의적 추동을 따르도록 떠밀리지 않는다면,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물질적 기초는 사라지고 쇠퇴시대에 의해 제기된 역사적 대안은 불분명해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매틱의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의 사용은 잘못 붙인 이름이다. 매틱이 기술하듯이 착취적이지만 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서의 국가자본주의 또는 ‘국가사회주의’는 2차 세계대전 전에 나타난 ‘관료적 집산주의’라는 부르노리찌와 맥스 샤흐트만의 규정과 놀랍게도 닮았다. 매틱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가치법칙에 기반을 둔 생산양식인 자본주의 붕괴는 역사적 대안인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대안적 사회주의 또는 야만 또는 ‘국가사회주의’의 문제가 된다.”


    현실은 「국제주의」의 글 편으로 기울었다. 동구에서의 위기가 보편적으로 서구에서와 동일한 형식을 취하지 않았음은 사실이다. 특히 소비재 측면에서 보면 과잉생산보다는 과소생산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수십 년 이들 경제를 침해하고 주요 노동자 투쟁의 불꽃의 원인이 되었던 인플레이션은 관료주의가 가치법칙의 효과를 어떤 방식으로든 요술을 부릴 수 없음을 보인 하나의 징표였다. 무엇보다 1980년대 말 전체 동구 블록의 몰락은 군사 및 사회적 수준에서 막다른 골목임을 반영하면서, 그를 교묘하게 회피하려 했던 스탈린 체제에 대한 가치법칙의 “복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케인즈주의처럼 스탈린주의는 스스로 “자본축적의 모순적 경로를 연장시키지만 막을 수 없는 사이비-해법10) 임을 드러냈다.

     

     매틱은 독일 혁명의 직접적 경험과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의기양양한 반혁명에 맞선 계급노선의 방어에 의해 단련되었다. 공산주의 좌파의 또다른 “생존자” 마크 치릭(Marc Chirik)은 반동과 제국주의 전쟁의 시기에 그의 전투성을 유지했다. 그는 이전의 논문에서 그 공헌을 말한 「프랑스공산주의좌파」(GCF)의 성원이었다. 1950년대에 그는 베네쥬엘라에 있었고, 잠시 조직활동에서 떠나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초 그 주위에 젊은 동지들을 서클로 모았고 자본주의의 쇠퇴 개념을 포함한 「프랑스공산주의좌파」와 같은 동일한 원칙에 기반을 둔 「국제주의(internationalismo)」그룹을 형성했다. 그러나 「프랑스공산주의좌파」가 암울한 시기에 노동자운동을 고수하려고 투쟁했던 반면, 베네쥬엘라 그룹은 세계 노동계급의 의식 속에서 부글거리는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건강한 체제를 갉아먹기 시작한 금융적 공간이 실제로 노동계급의 패배하지 않은 세대가 만나게 될, 새로운 위기로 뛰어들었음을 보였다는 것은 놀라운 명확성을 지니고 인식할 수 있었다. 1968년 1월 그 그룹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예언자가 아니다. 우리는 미래에 언제 어떻게 사건들이 펼쳐질지 예측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중 한 가지는 깨닫고 있고 분명하다. 그것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빠져든 과정은 멈출 수 없고, 직접 위기로 이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발전하는 계급전투성의 역류하는 과정은 노동계급이 부르주아국가의 파괴를 위한 피나고 직접적인 투쟁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도 똑같이 확실하다.” 이 그룹은 그 해 5월 프랑스와 이태리 그리고 다음 해 여러 곳에서 반혁명의 종식을 가져온 대규모 사회운동들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번뜩이는 입장을 가진 그룹 중의 하나였다.

     

     「국제주의」그룹에게 이러한 계급운동은 이미 실업증가와 임금인상통제의 시도를 낳은 세계 경제위기의 첫 번째 효과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반응이었다. 다른 그룹에게는 이것은 한물 간 맑스주의의 기계적인 적용이었다. 즉 68년 5월 혁명이 보여준 것은 잘 기능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직접적 저항이었다. 이는 공룡같은 분파의 작업에 위기와 계급투쟁을 연결시키는 시도를 거부한 「상황주의자」의 견해였다. “오래된 비트로츠키주의적인 초좌익의 파편 세력에게는 적어도 주요 경제위기가 필요했다. 그들은 어떠한 혁명운동도 경제위기의 귀환에 종속시켰고, 결국 아무것도 오지 않았음을 보았다. 이제 그들은 5월 혁명에서 혁명적 위기를 인식했고, 이러한 ”보이지 않는“ 경제위기가 68년 봄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놀림당하는 두려움 없이 그들은 지금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증가에 대한 계략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경제위기는 1929년에 살아있던 가시적인 객관적 실제가 더 이상 아닌 그들의 종교를 지지하는 일종의 성만찬의 존재인 것이다."11)  실제로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위기와 계급투쟁 사이의 관계에 대한 「국제주의」그룹의 견해는 최고조로 개조된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맑스주의 방법에 대한 그들의 충실성은 68년 5월 같은 운동의 발발같이 소수의 현란하지 않은 조짐에 기초해서 관찰하게 했다. 1973년 이후 경제위기의 눈에 띌 만한 심화는 경제 모순을 극복했다는 카르당(Cardan)의 자본주의 이론을 채택한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이었음이 명백해졌다. 그 모순은 지금 분명히 지나간 자본주의의 생명의 시기에 연결되어 있다.

     

     68년 5월이 노동계급의 실패한 부활을 반영했다는 가설은 자본주의에 대한 확실한 혁명적 비판을 발전시키려 했던 그룹과 서클의 국제적 확산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자연스럽게 기나 긴 후퇴의 시기 이후에 이러한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정치 운동은 극도로 이질적이었고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스탈린주의의 공포에 맞서 반응하면서 “레닌주의”나 맑스주의의 경직성에 입맛을 다시는 어떤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노골적인 반응을 하는 정치조직에 대한 의심도 있었다. 몇몇 새로운 그룹은 장기적 분석을 상실한 채 1968년 시작된 국제적 투쟁의 첫 번째 물결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지 못하면서 열광적인 활동주의에 스스로를 매몰시켰다. 또다른 그룹은 노동자 투쟁과 위기 사이의 연결고리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았다. 즉 노동자의 전투성이 본질적으로 억제되지 않은 임금 요구를 제기하고 구조조정하려는 자본주의적 계획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면서 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프랑스의 「노동자행동을 위한 연대그룹」(「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파생그룹의 하나)에 의해 주창되었고, 특히 위기와 계급투쟁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전통적 맑스주의”를 가망 없는 “객관주의”(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연재물의 다른 글에서 다룰 것이다)로 본 이태리의 노동자 자율주의 경향의 견해였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세대는 공산주의 좌파의 작업을 재발견하였고, 쇠퇴이론에 대한 개입은 이러한 과정의 부분이었다. 마크 치릭과 「국제주의」그룹의 젊은 동지들은 프랑스로 왔으며 1968년 사건의 열기 속에서 「세계혁명」 그룹의 첫 번째 핵심을 만드는데 힘을 보탰다. 이를 발단으로 「세계혁명」그룹은 정치적 접근 방식에 쇠퇴의 개념을 중심에 두었고, 수많은 평의회주의자, 자율주의자, 그리고 개인들에게 노동조합, 민족해방, 그리고 자본주의의 민족주의에 대한 그들의 반대가 더욱 일관성있는 역사적 틀의 기반 위에서 정당하게 이해되고 방어될 수 있음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세계혁명」지의 초기에 실린 글들은 「자본주의의 쇠퇴」에 대한 연재물이었으며 그 후 「국제공산주의흐름」의 첫 번째 팸플릿으로 출간되었다. 이 텍스트는 온라인12) 에서 볼 수 있고 아직도 「국제공산주의흐름」의 정치적 방법론의 본질적 기초를 포함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는 자본주의 자체의 부흥과 쇠퇴를 검토하기 전에 자본주의 이전의 원시적 공산주의로부터 다양한 계급사회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역사적 고찰을 하고 있다. 이 연재물과 함께 “사회혁명의 시대”에 대한 맑스의 개념에 기초해서, 인류의 생산력의 발전의 장애물이 되었을 때 모든 계급사회의 몇몇 주요 요인과 공통 특징을 도출한다. 즉 지배계급의 분화사이의 전쟁의 강화, 국가 역할의 성장, 이념적 정당화의 해체, 피억압, 피착취 계급의 투쟁증가가 그 특징이다. 이러한 보편적 접근을 자본주의 사회의 구체성에 적용하면서 20세기 초 이후 자본주의 어떻게 “발전의 형식”으로부터 생산력에 대한 “족쇄”가 되었는지를 보이려고 시도한다. 구체적으로 세계대전과 수많은 제국주의 갈등의 현상, 1917년에 터진 혁명투쟁, 국가역할의 엄청난 증대, 그리고 전쟁경제의 발전과 다른 형태의 비생산적 지출을 통한 인간노동의 엄청난 낭비가 그것이다.

     

     새로운 경제위기의 첫 번째 징표가 분명해진 시기에 제출된 이러한 보편적 전망은 쇠퇴이론이 좌익공산주의의 입장을 위한 본질적인 시발점이었음을 다른 나라들의 수많은 그룹들이 깨닫게 했다. 그것은 「국제공산주의흐름」의 강령의 핵심이었을 뿐 아니라 「혁명적 전망」과 영국의 「공산주의 노동자 조직」같은 다른 그룹에 의해서도 채택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쇠퇴의 원인에 대해서는 중요한 의견의 불일치가 있었다. 넓게 이야기하면 「국제공산주의흐름」의 팸플릿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분석을 채택했는데, 전후 호황 (새로운 시장의 일종으로 전후경제의 재건을 보는)의 설명이 그 후 「국제공산주의 흐름」내부에서 논쟁이 되었고, 항상 경제문제에 대한 다른 견해들이 존재했으며, 특히「공산주의노동자조직」등이 채택한 그로스만-매틱의 이론을 선호한 동지들도 있었다. 그러나 혁명운동이 다시 부상한 이 지점에서 “쇠퇴이론”은 중요한 성과를 얻은 것 같았다.

     


     소멸하는 체제의 대차대조표

     

     자본주의의 쇠퇴를 이해하기 위한 혁명가들의 지속적 노력에 대한 우리의 조사는 이제 1970년대와 1980년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이십년과 지금까지 이론적 수준에서 일어난 발전과 수많은 퇴행을 살펴보기 전에, 이 연재물의 첫 번째 논문에서13) 우리가 도출한 대차대조표를 기억하고 보완하는 것이 유용할 것 같다. 특히 그 논문이 나온 2008년 초 이래 극적인 발전이 경제적 수준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1. 경제적 수준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국제적 계급투쟁은 일련의 전진과 후퇴를 거쳐 왔지만, 경제위기는 노동자 투쟁 스스로 자본주의의 경제적 곤란의 근본 원인이었다는 자율주의자들의 테제를 훼손하면서 냉혹하게 심화되었다. 노동계급의 주요 역사적 패배와 동시에 일어난 30년대의 공황은 이미 자율주의자들에 맞선 강력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70년대 중반과 80년대 초 그리고 90년대에 걸쳐 우리가 간헐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더욱 지속적이고 심각한 방식으로 다가온 노동계급의 패배의 시기에, 경제적 균열의 가시적 진화는 노동계급으로부터 오는 저항의 수준에 의해 근본적으로 결정되지 않는 어떤 것, 즉 여기서 작동하고 있는 “객관적” 과정이었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부르주아지에 의한 효과적 통제에 종속되지도 않았다. 호황의 시절을 수반했지만 고삐풀린 인플레이션의 원천이기도 한 케인즈주의 정책을 포기하면서, 80년대 부르주아지는 핵심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대량실업과 탈공업화의 파고를 움직이는 정책으로 “장부의 균형”을 맞추려 했다. 그 이후 몇 십년동안 단기 호황을 가져왔지만, 2007-8년 파국으로 수면 위로 폭발한 심각한 긴장을 쌓아오는, 부채에의 대량의존으로 성장을 자극하는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1914년 이래 자본주의 세계 경제에 대한 일반적 개관은 어떤 기법을 시도하든지간에 상승하는 생산 양식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을 피할 수 없는 체제의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있다.

     

    1914-1923: 1차 세계대전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국제적 물결;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전쟁과 혁명의 시대”의 새벽을 선언하다.

     

    1924-29: 전쟁 흔적에서 “옛” 경제와 왕국의 전후 침체를 구제하지 않는 짧은 경기회복; “호황”은 주로 미국에 제한되다.

     

    1929: 미국 자본의 풍부한 확장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깊고 넓은 공황을 재촉하는 장관의 추락으로 끝난다. 19세기초의 순환적 위기의 경우 같은 생산의 자생적 부활은 없다. 국가 자본주의적 수단이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사용되지만 그것은 2차 세계 대전을 향한 추동의 부분이다.

     

    1945-67: 국가 지출의 주요 발전(본질적으로 부채를 통해 금융조달되고 생산성의 예기치 못한 성과에 기초한 케인즈주의 수단)은 “제 3세계”의 상당부분을 배제한 채, 그 이전의 어떤 것과도 다른 성장과 번영의 시기를 위한 조건을 만든다.

     

    1967-2008: 40년의 공공연한 위기는 특히 70년대의 질주하는 인플레이션과 80년대의 대량 실업에 의해 시현되었다. 그러나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의 위기는 지구의 어떤 시기와 부분에서 다른 시기와 부분보다 더욱 “공공연”하다. 자본운동과 금융 투기에 대한 제한의 제거: 노동력이 싼 지역에의 일련의 전반적 산업재배치: 신기술 발전과 무엇보다 국가, 기업, 가계를 위한 사실상 무제한적 신용에의 의존은 거대이윤이 소수 엘리트에 의해 만들어지는 “성장” 거품을 만들고, 광란적인 공업성장은 중국 같은 국가에서 일어나며, 신용카드 소비자주의는 중심 자본주의 국가에서 새로운 정점에 이른다. 그러나 경고 표시는 이 시기를 통해 가시화된다: 호황 뒤에는 정기적으로 침체가 뒤따른다.(보기를 들어 1974-75, 1980-82, 1990-93, 2001-2의 경기 침체, 1987의 주식시장 추락…) 그리고 매 침체 이후에 자본에 열린 선택은 더욱 좁아져, 자본주의 회로 밖의 지리적/경제적 영역으로의 외부 확장의 가능성이 항상 있었던 상승기의 “경기 침체”와는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모든 의도와 목적으로의 이러한 출구를 결여한 채, 자본가 계급은 그 체제가 몰락하도록 저주받은 가치법칙을 점점 “속이도록” 강제된다. 이는 똑같이 케인즈주의와 스탈린주의 공개적인 국가자본주의 정책에도 적용된다. 그들 정책은 대처와 레이건에 의해 상징화된 “혁명” 이후 그들 앞에 놓인 것을 쓸어버릴 것 같았던 이른바 “신자유주의”정책과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이윤이 나지 않는 경제 부문에 대한 재원조달과 지원을 통해 시장을 지배하는 해결책, 어떤 비법도 지니지 못한다. 실제로 이러한 정책은 스스로 자본주의 국가의 발산이며, 무제한적인 신용과 투기를 부추김으로 자본주의 가치생산의 고전적 법칙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의 경제적 추락 이전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1997년 극동의 “호랑이들”과 “용들”의 몰락인데, (악성) 부채로 힘을 얻은 광란적 성장의 시기는 갑자기 모든 것을 되돌려 받는 벽돌담에 대한 대항으로 끝났다. 이는 그 후 중국과 인도가 또 다른 극동경제를 위해 예비되었던 “기관차”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더라도 결국 올 것은 전조일 뿐이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과대 선전된 컴퓨터 부문에서의 “기술혁명”은 특히 자본주의의 내부 모순으로부터 자본주의를 구할 수 없다. 이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높이고 이윤율을 낮추며 세계시장의 실질적 확장으로 상쇄될 수 없다. 물론 더 많은 노동자를 구호대상으로 내몰지만 더욱 많은 상품을 내뱉음으로써 과잉생산의 문제를 가속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2008… 세계자본의 위기는 자본주의국가가 지난 40년 동안 적용한 “해법들”, 무엇보다 신용에의 의존이 그것들을 부지런히 실천해왔고, 지난 시기 잘못된 신념을 지녀왔던 정치인, 금융가와 관료들의 눈앞에서 폭발한 질적으로 새로운 상황에 도달한다. 지금 위기는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인 미국과 유로존으로 튀어 오르고 있으며 지속적인 경제 확장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처방이 쓸모없어 보인다. 신용을 통한 가공 시장의 창조는 화폐가치를 파괴하고 고삐 풀린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면서 역사적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부패를 되돌려 갚기 위해 지출을 줄이는 국가의 시도와 신용 억제는 시장을 더욱 제한할 뿐이다. 그 순결과는 1930년대의 공황보다 본질적으로 더욱 깊고 해결할 수 없는 공황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공황이 서구로 내려가면서 세계 경제를 어깨에 짊어진 중국 같은 나라에 대한 쓸모없는 커다란 희망은 완전한 환상임을 증명하고 있다. 중국의 산업성장은 서구에 값싼 상품을 파는 능력에 근거하고 있는데, 만일 이 시장이 말라버리면 중국은 경제적 용해에 직면할 것이다. 


     결론: 상승시기에 자본주의는 그 내적 모순의 표현이면서 지구적 확장의 불가피한 순간이었던 위기의 순환을 통해 거쳐 온 반면 20세기와 21세기 자본주의의 위기는 1930년대 이후 폴 매틱이 주장한 대로 본질적으로 영구적이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완화제가 그 죽음의 병의 추가적 요인이 되는 단계에 도달했다.

     

    2. 군사적 수준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추동은 또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적 막다른 골목을 표현한다.
     
    “시장이 줄어들수록 원료의 원천과 세계시장의 정복을 위한 투쟁이 더욱 치밀해진다. 서로 다른 자본주의 그룹 사이의 경제 투쟁은 국가 사이의 투쟁이라는 가장 마지막 형식을 취하면서 더욱 집중된다. 국가 사이의 가속화된 경제 투쟁은 마침내 군사력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 뿐이다. 전쟁은 국제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가 그의 경쟁자를 희생시키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경제적 또는 군사적 승리에서 개별 제국주의가 발견하는 순간적 해법은 단순히 적대적 제국주의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사회노동이 수십 년, 수백 년 쌓아 온 가치의 엄청난 양을 파괴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제국주의 시대의 자본주의는 고층을 위한 건축자재가 낮은 층과 기초로부터 나오는 건물과 같다. 고층건물이 광란적일수록 전체 건물을 지지하는 기초가 약해진다. 꼭대기의 권력이 크면 클수록 실제로 건물은 더욱 허약하다. 그 기초를 밑으로부터 파도록 강제하는 자본주의는 인류사회를 파국과 혼돈으로 내던지면서 세계경제를 미친 듯이 침식하도록 작동한다.”14)

     

    제국주의 전쟁은 국지전이건 세계대전이건 더 이상 공공연한 전쟁의 국면에 제한되지 않는, 자본주의 스스로를 파괴하는 경향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다. 그것은 우리가 자본의 물리적 파괴, 전체 인구의 학살, 또는 순수 군수생산으로 대표되는 가치의 엄청난 불임이든 간에 그렇다. 쇠퇴시기의 전쟁의 본질적으로 비합리적 본질에 대한 「프랑스공산주의좌파」의 인식은 2차 세계대전 후의 세계경제의 재조직화와 재건에 의해 다소 가려졌지만, 전후 호황은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예외적 현상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자본주의 체제가 채택한 국제조직의 양식이 무엇일지라도, 전쟁은 영구적으로 되어버렸다. 세계가 두 개의 거대한 제국주의 블록으로 분화된 1945년 이후, 군사갈등은 보편적으로 두 초대강국이 전략적 우위를 다투면서 끊임없는 “민족해방” 전쟁의 형식을 취한다.

    1989년 이후 약한 러시아 블록의 몰락은 전쟁에의 추동을 약화시키지 못하면서 남은 초대강국인 미국이 더 자주 직접 개입하도록 만들었는데, 이는 우리가 1991년 걸프전쟁, 90년대 말 발칸전쟁,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서 본 바와 같다. 미국에 의한 이러한 개입은 대체로 그리고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지역 경쟁국의 악화와 증식을 보였던 옛 블록체제의 해체로 열린 원심력의 경향을 제어하려고 했다. 국지적 경쟁의 보기는 르완다, 콩고로부터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에 이르는 아프리카를 유린한 끔찍한 갈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악화되는 긴장,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핵 냉전 등이었다.
     
     1차, 2차 세계대전은 본질적으로 미국에 혜택을 주면서 주요자본주의국가들 사이의 권력균형에 있어서 주요한 전환을 가져왔다. 물론 1945년 이후 미국의 압도하는 지배는 전후 번영의 핵심요인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표어 중의 하나와 반대로 전쟁은 “국가의 건강”이 아니다. 거대하게 부풀어진 군사부문이 소련의 몰락을 가져오는데 도움을 준 것과 같이 세계의 헌병으로 남는데 대한 미국의 헌신 또한 왕국으로서의 거대한 총액은 할리버튼이나 다른 친구 자본가들에 의해 움켜쥔 신속한 이윤에 의해 상쇄될 수 없었고 반대로 미국을 세계의 채권자로부터 주요채무자의 하나로 바꾸는데 도움을 주었다.

     

     「국제공산주의경향(ICT)」같은 혁명조직들은 전쟁, 무엇보다 모든 세계전쟁이 자본주의가 관여하는 한 탁월하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윤율 저하의 원천인 부풀어진 총 고정자본을 파괴함으로써, 자본주의 쇠퇴시기의 전쟁은 이윤율을 회복하고 축적의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토론을 시작하는 순간은 아니지만, 그러한 분석이 옳다고 하더라도 이는 더 이상 자본을 위한 해결책일 수 없다. 첫 째, 다른 것들 중에서 안정적인 제국주의 블록의 형성을 요구하는 3차 세계대전의 조건이 “자력갱생”의 법칙을 따르는 세계에서 함께 올 수 있다는 증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3차 세계대전이 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확실하게 축적의 새로운 순환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인류의 소멸로 귀결될 것이다.15) 그것은 자본주의 비합리성의 마지막 시현이지만 우리들 누구도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소”라고 여기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3. 생태적 수준에서
     
    1970년대 이후 혁명가들은 자본주의가 그 유용성이 없어져 파괴되는 체제가 되었다는 분석에 새로운 차원, 즉 지구적 차원에서의 재난이 위협하고 있는 자연환경의 황폐화의 증가를 인식할 수 있었다. 자연세계의 오염과 파괴는 처음부터 자본주의 생산에 내재해 있었지만 지난세기 동안,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가 지구의 마지막 구석구석까지 쉬지 않고 점령하면서 더욱 광범위하게 더욱 깊게 뿌리박게 되었다. 동시에 그리고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막다른 골목에서 공기, 땅, 바다, 강, 그리고 숲의 약탈은 자연자원에 값싼 노동, 그리고 새로운 시장에 대한 잔인한 국가경쟁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특히 지구온난화의 형태로 온 생태적 파국은 자본주의의 묵시록의 새로운 기수가 되었고 연이은 국제 정상회의는 부르주아지가 그를 해결할 가장 기본적인 조치도 취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최근의 보기를 들어보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전에 파국의 예측을 하는데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가장 최근의 보고서를 보면 세계의 정부들은 더 늦기 전에 환경변화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는데 5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와 수많은 과학기관에 따르면 지구온도가 2도 이상 오르지 않는다고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목표 밑으로 배기를 유지하기 위해, 배기에 대해 허용된 총예산이 ‘동결’되기 전에 오직 5년 동안 문명은 일상을 지속할 수 있다. 그 경우 경고의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해 2017년 이후로부터 건설한 모든 새로운 하부구조는 완전히 배기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16)


    이 보고서가 나온 지 한 달 후인 2011년 11월에 국가사이의 국제회의에서 처음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개최된 더반(Durban) 정상회의에서 탄소배출에 대해 제한을 법적으로 두어야 한다고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2015년에 합의가 되어야 하고 2020년에 발효되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에너지기구」와 그 대회에 연관된 수많은 환경단체의 예측에 따르면 너무 늦은 것이었다. WWF-UK(자연을 위한 세계 기금, 영국)의 기후변화 대표인 키스 올로트(Keith Allott)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들은 협상을 진전시키는 길로 구원했지만 우리는 어떤 환상도 가져서는 안 된다. 더반회의의 성과는 4C 온난화에 세계를 법적으로 묶어놓는 전망을 우리에게 남겨놓고 있다. 이는 인류와 자연세계에게 파국이 될 것이다. 정부들은 협상 텍스트에 한 줌의 구체적 단어에 초점을 맞추면서 중요한 시간을 보냈지만, 배기량을 줄이는데 필요한 더욱 강력하고 긴급한 행동을 요구하는 과학 공동체로부터의 계속되는 경고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17)

     

     생태론자들의 개혁주의 개념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목졸리고 있고 스스로의 삶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는 덜 경쟁적이고 더 협동적이며 더 합리적일 수 없고 모든 수준, 특히 국민국가의 수준에서 극단적인 경쟁에 내몰리고 있고 당면한 생존의 기회가 없는 채 자본주의 검투사들은 야만적인 선더돔(Thunderdome)에서 싸우고 있다. “경제성장”의 우상에 모든 것을 희생시키면서 가장 단기적인 이윤을 추구하는데 내몰리고 있다. 대시 말해 지난 수십 년 동안 부채가 가중되는 가공적 성장에 기반한 자본축적은 우상이다. 어떤 국민경제도 절대적 한계까지 국가의 자연 “재산”을 착취하게 될 때 눈곱만큼의 정서도 허용할 수 없다. 자본주의 세계 경제하에서 협소한 국가이해를 지구의 전반적 이해에 종속시킬 수 있는 국제법과 거버넌스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지구온난화가 제기한 실제 임계선이 무엇이든 간에 전체로서의 생태적 문제는 부르주아지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계속되는 지배가 인류의 생존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증거를 더욱 더 제시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교훈적인 보기를 들어보자. 이는 경제위기 같이 생태적 위험이 군사갈등의 위협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하는 보기이기도 하다.
     
    “최근 몇 달 석유회사들은 최근까지 얼음에 막혀 채굴할 수 없었던 그린랜드 서부 해산에 있는 탄화수소가 풍부한 지역인 바핀(Baffin)만에 대한 탐사전에 줄대기를 시작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외교관들은 항해시간과 장거리 유조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캐나마 북극해를 통한 해상로에 대한 협상권을 재개했다.”

     “러시아와 덴마크가 어업에서부터 천연가스 매장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접근을 금지하려는 희망으로 해저에 대한 경쟁자로서의 주장을 하면서 북극에 대한 소유권조차도 분쟁의 대상이 되었다.”

     

     “북극개발에 대한 치열한 경쟁도 반비밀 웹사이트인 위키리스크에 의해 지난 주 배포된 외교 케이블에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미국 외교관 사이의 메시지는 어떻게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북쪽 국가들이 항로 뿐만 아니라 세계 매장량의 25%를 차지한다고 예상되는 해저 석유 및 가스 저장고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움직였는지를 보여주었다.”

     

     “케이블에서 미국 관리는 자원에 대한 다툼이 북극에 대한 무장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극에 평화와 안정이 존재하지만, 그러나 미래에 무장개입까지 이르는 권력의 재편이 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2009년 국무성 케이블은 러시아 대사의 말을 인용했다.”18)


    이렇다. 지구온난화의 가장 심각한 표출의 하나는 격변하는 홍수를 포함하는 북극빙하의 녹아내림과 더 이상 빙산이 태양열을 지구로부터 반사할 만큼 존재하지 않을 때의 온난화의 “피드백 고리”는 즉각 온실효과에 덧붙여 화석연료를 태우는 궁극적 결과와 함께 국민국가들의 거대한 경제적 기회의 연속으로 즉각 나타난다. 그리고 동시에 점차 감소하는 자원 – 이 경우는 석유와 가스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물과 비옥한 토지인 – 에 대한 투쟁은 네 가지 또는 다섯 가지 방식으로 소규모 제국주의 갈등을 빚을 수 있다.(영국은 이러한 분쟁에 관여해왔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점증하는 광기의 피드백 고리이다.

     

     동일한 글은 그린랜드 누크에서 「북극협의회」회의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조인된 성숙한 협정을 “좋은 뉴스”로 이야기하면서 끝맺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제국주의 갈등을 향한 자본의 숨겨진 충동을 앞지르게 될 때 외교협정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자본주의가 준비하고 있는 지구적 재앙은 지구적 혁명에 의해서만 피할 수 있다.

     

    4. 사회적 수준에서
     
    사회적 수준에서, 특히 자본주의의 부의 주생산자인 노동계급에게 자본주의 쇠퇴의 대차대조표는 무엇인가?

     

    1919년 내부해체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코민테른이 선언했을 때, 영속성 있는 개혁 투쟁이 필요하고 가능하다는 사회민주주의의 시기 밑에서 또 하나의 노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혁명은 필요했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자본주의는 더욱 깊숙이 노동계급의 삶의 표준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이 연재물의 이전 글들에서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이러한 분석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보았던 그 다음 20년 동안 끊임없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50년대와 60년대 호황기 동안 중심에 있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노동계급이 예기치 못한 임금상승, 실업의 인상적인 감소, 그리고 유급 병가, 유급 휴일, 교육 및 건강서비스 제공 등과 같은 일련의 국가지원 복리후생을 경험했을 때 혁명가들 사이에서도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이 진실로 자본주의가 전반적으로 쇠퇴하고 있고 영구적인 개혁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테제를 고수하고 있는 혁명가들이 유지했던 주장을 무효로 만들고 있는가?

     

     여기서의 쟁점은 이러한 성과가 “진정한”가 또는 중요한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성과가 무엇이었고 무엇을 한 것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제공산주의흐름」이 보기를 들어 내부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전후 번영의 원인에 대한 논쟁을 시작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해가 필요한 것은 이러한 성과가 이루어진 역사적 맥락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노동자운동의 조직과 투쟁을 통해 얻은 19세기의 노동계급의 삶의 표준의 줄기찬 개선과는 거의 닮지 않았다는 것을 보이기 때문이다.


     
    전후 “개혁”의 많은 부분은 전쟁이 1917-19년의 모델 위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물결을 일으키지 않고 이루어졌음이 진실이지만, 건강서비스나 완전고용 같은 조치를 위한 주도권이 자본주의 국가기구, 특히 좌익으로부터 직접 왔다. 이는 국가에 대한 노동계급의 신뢰를 증진시키고 그들 자신의 투쟁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 효과를 가져왔다.

     

    심지어 호황기 동안에도 경제적 번영은 심각하게 제한적이었다. 노동계급의 거대한 흐름, 특히 제3세계 뿐 아니라 중심국가의 중요한 주머니(보기를 들어 미국의 흑인 노동자와 가난한 백인)는 이러한 성과로부터 배제되었다. “제3세계”를 통틀어 유린된 농민과 기타계층의 수백만을 생산적 노동으로 통합시키지 못한 자본의 무능력은 오늘의 거대한 빈민촌과 세계적 영양실조 및 빈곤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은 한국, 베트남으로부터 중동 및 남동부아프리카에 이르는 “저개발”국가의 유혈적 대리전을 만든 블록 내 경쟁의 첫 번째 희생양이었다.

     

    노동계급의 삶의 질을 진정으로 개선시키지 못한 자본주의의 무능력의 또 다른 증거는 노동일의 수준에서 볼 수 있다. 19세기 “진보”의 징표 중의 하나는 19세기 초반 18시간에서 8시간으로 노동일을 지속적으로 줄이는 것이었는데, 이는 19세기말 노동자운동의 주요 요구 중의 하나였고, 1900년대와 1930년대 사이의 많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리고 전후 번영기를 포함하여 노동일은 다소 정체되었다. 노동자를 고역으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하고 기술발전은 탈숙련, 일터에 머물게하는 강도 높은 착취와 더불어 광범위한 실업, 그리고 휴대전화, 휴대컴퓨터, 인터넷에 감사하게도 작업장으로부터 떨어져서도 쉬지 않고 일하도록 만들었다.

     

    호황기 동안 어떤 성과를 얻었든지 간에 그것은 지난 40년 동안의 지속적인 급습에 의한 것이었고 어떤 휴지 기간의 전망도 없이 더욱 광범위한 공격에 종속되어 있는 임박한 공황과 함께 있다. 40년 위기 동안 자본주의는 대량실업 강제라는 직접적인 임금삭감과 복지국가를 분해하는데 비교적 조심스러웠다. 그리스 같은 국가들에 지금 떠맡기는 야만적인 긴축조치는 어디 있는 노동자들에게나 올 수 있는 조짐이다.

     
    더 넒은 사회적 수준에서 이러한 긴 기간 동안의 자본주의의 쇠퇴는 “대자적” 계급이 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능력에 대한 엄청난 위협을 수반하고 있다. 노동계급이 1960년대 말 투쟁을 부활할 때 혁명의식을 발전시키는 능력은 그들이 거쳐 온 반혁명 – 노동자의 세대가 그들 자신의 정치적 전통과 조직을 깊이 의심하도록 만든 스탈린주의의 “프롤레타리아” 의상을 입고 스스로 보여준 반혁명 – 트라우마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스탈린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사기성 짙은 등식은 80년대 말 스탈린 체제가 몰락할 때,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적 대안을 발전시키는 능력, 즉 노동계급의 자기신뢰를 더욱 침식하면서 극점까지 몰아갔다. 이처럼 스탈린주의 국가자본주의라는 자본주의 쇠퇴의 산물은 계급의식을 망쳐놓는 부르주아지의 모든 분파에 의해 사용되었다.

     80년대와 90년대 동안 경제위기의 진화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전통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 세계의 지역에 산업 상당부분을 이전시키면서 산업집중과 노동계급 공동체의 붕괴를 요구했다. “발전된” 세계의 대부분을 가로지르는 도시 황무지의 창조는 계급 정체성의 약화와 사회적 연대의 일반적 실증을 가져왔는데, 그 반대편에 있는 상대방은 중립적이지 않지만 파괴적 효과를 가진 다양한 거짓 공동체를 추구했다. 우리는 해방되지 않은 백인청년으로부터 영국의 「영국방어동맹」같은 극우집단을 지적할 수 있고 동일한 물질적 상황에 직면한 근본주의 이슬람과 자하드 정치를 지적할 수 있다. 더 일반적으로 우리는 공업화된 국가의 모든 도시 중심부의 갱문화의 썩어가는 효과를 지적할 수 있는데 이들은 멕시코 같은 주변국에 대한 가장 괄목할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 나라는 부패한 중앙정부와 더 이상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살인적인 약물갱 사이의 영구적인 내전으로 잡혀있다.

     

     허무주의적 폭력의 증가 같은 미래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잃어버린 이러한 현상은 그 본질이 국제적 연대인 계급, 통일된 계급으로 스스로를 보기 어렵게 만드는 세계의 피착취자의 혈관 속의 느릿느릿한 이념적 독이다.

     

     80년대 말에「국제공산주의흐름」안에서는 70년대와 80년대 투쟁의 물결이 혁명적 의식의 전진에서 정(正)의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 경향은 마크 치릭에 의해 매우 날카롭게 비판을 받았는데, 그는 프랑스에서의 테러리스트 폭탄투하와 동구블록의 갑작스런 내부분리를 해석하면서 그가 해체단계로 기술한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시기에 들어섰다는 생각을 제기했던 첫 번째 인물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단계는 지배계급과 피착취계급 누구도 미래사회에 대한 각각의 대안을 밀고나갈 수 없는 일종의 사회적 막다름에 의해 근본적으로 결정되었다. 그 전망은 부르주아지를 위한 세계전쟁인가 아니면 노동계급을 위한 세계혁명인가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결코 버틸 수 없고 자본주의의 길게 이어지는 경제위기는 새로운 깊이를 파는 운명에 처해있고, 새로운 전망이 없이 사회는 발부터 썩는 운명에 놓여 노동계급의식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해체라는 「국제공산주의흐름」의 개념의 이론적 파라미터가 받아들여지든 아니든 이 분석의 본질은 이것이 자본주의 쇠퇴의 마지막 단계라는 주장이다. 우리가 체제의 쇠퇴의 마지막 단계 즉 죽음의 고뇌를 목도하고 있는 증거는 심연의 끝에 서 있는 인식, 즉 “묵시적 분위기”가 더더욱 일반화되고 있다는 지점까지 지난 몇십 년에 걸쳐 분명히 상당부분 쌓였다는 점이다.19)  그리고 아직 프롤레타리아 정치 운동 내에서 쇠퇴이론은 합의되기에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이 연재물의 다음 글에서 쇠퇴이론에 반대하는 몇몇 논쟁을 살펴볼 것이다.

     

    번역/ 오세철


    <주>

     

    * 출처: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International Review」, 2012, 1st Quarter, no.148 

     

    1) 「자본주의 쇠퇴」에 대한 연재물의 지난번 글을 보라.
      http://en.internationalism.org/internationalreview/201111/4596/post-war-boom-did-not-reverse-decline-capitalism

     

    2) http://en.internationalism.org/ir/146/great-depression

     

    3) 폴 매틱, 「맑스와 케인즈: 혼합경제의 한계」, Merlin Press, 1969, London(1980 재판), 14장, “혼합 경제”, 152와 163쪽

     

    4) 매틱, 윗 책, 274, 275쪽

     

    5) 매틱, 윗 책, 274, 275쪽

     

    6) 윗 책

     

    7) 매틱, 앞 책, 22장, “가치와 사회주의”, 321쪽

     

    8) 매틱, 앞 책, 20장, “국가 자본주의와 혼합경제”, 291쪽

     

    9) 매틱, 앞 책, 19장, “제국주의적 명령”, 264-5쪽

     

    10) 「맑스와 케인즈」의 또 하나의 약점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잉여가치 실현의 문제에 대한 그녀의 관심에 대한 매틱의 거부태도이다. 그 책에서 룩셈부르크에 대한 유일한 직접인용은 다음과 같다. “한 세기가 지나면서 맑스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잉여가치 실현의 어려움에서 위기와 전쟁, 그리고 자본주의

    의 실질적 사망의 객관적 이유를 보았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의 실제 세계가 생산과 유통과정임이 틀림없지만, 처음 생산되지 않으면 유통이 있을 수 없고, 그 때문에 생산과정의 문제에 우선성을 둔 맑스와는 별로 관련이 없다. 잉여가치 생산이 가속화하는 자본확장을 보장할 만큼 적절하다면 자본주의가 유통의 영역에서 비틀것이라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9장, “위기의 자본주의”, 91-2쪽)
        “처음 생산되지 않는 한 어느 것도 유통될 수 없다”는 중언부언으로부터, 그리고 잉여가치의 적절한 생산이 가속화하는 자본확장을 허용한다는 맑스주의 이론으로부터 시작하여 매틱은 문제의 잉여가치가 반드시 시장에서 실현된다고 주장할 때 부당한 연역을 이끌어낸다. 같은 종류의 유추는 이런 문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상품생산은 잉여가치를 새로운 자본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한 그 자신의 시장을 만든다. 시장 수요는 소비재와 자본재를 위한 수요다. 축적은 오직 자본재의 축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소비되는 것은 축적되지 않고 단순히 사라질 뿐이다. 자본-노동의 교환관계 밖에서 잉여가치의 실현을 허용하는 것은 물리적 형식에서의 자본의 성장이다. 자본재의 적절하고 지속적 수요가 존재하는 한 시장에 들어오는 상품이 왜 팔려야 하는지 이유가 있을 수 없다.” (8장, “잉여가치의 실현”)
       “고정자본은 결코 그 자신을 위해 생산되지 않지만 생산물이 개인소비의 영역에서 더 많은 고정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는 맑스의 견해와 위의 매틱의 견해를 대조하라.(「자본」 3권, 18장, “상업자본의 회전”, 305쪽)
    다른 말로 말하면 생산수단의 수요를 잡아끄는 것은 소비수단의 수요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이 연재물의 이전 논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매틱 스스로도(“경제위기와 위기이론”에서) 앞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http://en.internationalism.org/ir/146/graet-depression, 각주 20), 그의 개념과 맑스의 정식화 사이의 이와같은 모순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 논쟁을 다시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주요 문제는 매틱이 로자를 맑스주의자와 진정한 혁명가로서 인식하고 있지만, 로자가 넌센스로 그리고 맑스주의의 기본틀 밖에서 축적과정에 대해 제기했던 문제를 무시하는 사상적 경향을 함께하고 있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이는 로스돌스키(Rosdolsky) 같은 로자의 비평가들의 비평의 모든 경우와 같은 것은 아니다. (http://en.internationalism.org/ir/142/luxemburge, 참조) 이와 같은 본질적인 종파주의적 접근방식은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을 심대하게 훼손시켰다.

     

    11)“상황주의 인터내셔널”, 12호, 6쪽

     

    12) http://en.internationalism.org/pamphlets/decadence

     

    13) http://en.internationalism.org/ir/2008/132/decadence_of_capitalism 역사적 위기의 전반적 경로, 생산 활동에 대한 영향, 노동자의 생활표준 등에 관련된 통계는 더 자세한 분석을 위해 「국제평론」 이번호(148호)에 실린 “자본주의는 생산의 쇠퇴의 양식인가? 왜 그런가?”를 볼 것.

     

    14) 국제 상황에 대한 보고, 「프랑스공산주의좌파」, 1945년 7월

     

    15) 이는 점점 더 혼돈에 빠지는 제국주의 체제 아래에서 인류가 더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옛 블록체제에 의해 부과된 규율 없는 국지전을 파괴하는 것이 더욱 가능하게 되었고, 그 파괴적 잠재력은 핵무기의 확산으로 더욱 증가되었다. 동시에 국지전이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발발할 것이기 때문에 60년대 후반 위기 이래 세계전쟁으로의 추동을 멈추게 하는 다른 요인에 덜 의존하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 중심국가의 노동계급을 직접적인 제국주의 격돌로 동원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16) http://news.nationalgeographic.com/news/energy/2011/11/111109-world-energy-outlook-20 11

     

    17) http://www.guardian.co.uk/environment/2011/dec/11/global-climate-change-treaty-durban

     

    18) http://www.washingtonpost.com/national/environment/warming-arctic-opens-way-to-competition-for-resources/2011/05/15/AF2W2Q4G_story.html

     

    19) 보기를 들어
    http://www.guardian.co.uk/culture/2011/dec/18/news-terrible-world-really-doomed?INTCMP=SRCH

     

    쇠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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