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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혁명 100주년] 계급과 권력투쟁 없는 촛불광장과 선거 그리고 이후 2
  • 계급과 권력투쟁 없는 촛불광장과 선거 그리고 이후 2
    - 토론을 위한 테제 -


    2. 촛불 투쟁에서 못다 한 토론

     

    “지난 촛불 투쟁이 노동자들에게 던져준 과제는 선거(대의) 민주주의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 자체였고, 노동 중심 정치가 아니라 ‘국가와 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지배(통제) 문제였다.”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1, [코뮤니스트 5호])

     

    ◆ 촛불 투쟁의 성과물은 누가 가져갔는가?


    ◆ 촛불 투쟁은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으로 마무되었다. 촛불 정세를 무사히 넘긴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촛불에 자극받아 보다 세련된 통치 체제를 만드는 것으로 계급투쟁을 잠재울 것이다. 촛불 투쟁 다음의 투쟁은 촛불 투쟁의 연속(적폐청산-개혁 촉구)인가? 그것을 넘어서는 투쟁(반자본주의 투쟁)인가?

     

    - 1905년에 소비에트는 갑자기 자발적으로 출현한다. 소비에트의 본질은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다양한 계획들, 토론들,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온 제안들, 모든 사건의 발전, 그리고 혁명가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소비에트를 탄생시켰다.

    - 1905년의 ‘기억과 자극’은 1917년 소비에트가 모든 권력을 가지면서 러시아에서 재탄생한다.

    - 러시아 혁명의 자극과 1920년대 혁명적 물결은 독일과 헝가리에서 노동자계급에 생동하는 힘과 넘치는 생각들을 강하게 분출하게 했다. 투쟁이 발전함과 동시에, 모든 장소에서 ‘노동자 평의회’와 ‘총회’가 나타났다.

    - 그리고 암흑과도 같았던 기나긴 반혁명의 시기가 지나가고, 1960년대 말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1968년 5월 프랑스에서의 총파업과 그에 이은 전 세계에 걸친 노동자 투쟁의 폭발과 함께 역사의 무대 위에 재등장한다. 이러한 역사적 부활은 ‘상상력’의 해방과 함께 더 큰 자극이 되어 ‘급진적인 행동’과 ‘혁명적인 운동’에 새로운 세대를 낳았다. 1968년 프랑스와 1969년 이탈리아 노동자 집회의 특징인 ‘폭넓고 심도 있는 토론’ 문화를 만들었다.

    - 2011년 국제적인 차원의 ‘분노’ 물결은 ‘광장을 점거하자!’는 공통의 구호로 전 세계를 휩쓸었다. 광장의 정치는 앞선 모든 역사적 자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진정한 연대’, ‘대중총회’, ‘토론문화’로 재현되었다“ (대대적 촛불 투쟁, 주체 그리고 자극, [코뮤니스트 5호])

     

    ◆ 계급(대중)의 의식을 바꾸는 것은 ‘대대적 파업’, ‘민중 봉기’와 같이 혁명적 사건-상황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일상적인 저항 속에서도 ‘진정한(계급적) 연대’와 ‘대대적인 토론’이 가능하다. 촛불 투쟁이 대중 의식을 일부라도 바꿔 놓았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 촛불 광장의 ‘열린 정치’와 ‘직접 민주주의’에서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나?

     

    “지난 촛불 투쟁은 대중 행동의 침체기 속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양적인 분출과 대중 행동 가능성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촛불 대중의 다수를 이룬 노동자들도 일부가 조직적으로 참여하고 대부분은 개별적으로 참여했지만, 촛불 투쟁의 자극으로 다시 생산현장과 거리에서 토론하고 투쟁할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촛불 투쟁에 계급이 아닌 시민으로 참여한 노동자들이 다시 자본가 계급과 맞서는 노동자 계급으로 돌아왔을 때 가능한 일이다.” (정권교체를 넘어 선거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의 전면적 투쟁으로!!!, [코뮤니스트 5호])

     

    ◆ 촛불 투쟁에서 ‘계급’은 어떻게 사라졌나?


    ◆ 촛불 투쟁에서 문제는 자본주의이었나? 자본주의에 포섭된 노동자계급이었나?

     


    3. 촛불 대선과 노동자계급의 쟁점

     

     촛불 투쟁과 조기 대선에서 수많은 주장과 쟁점과 공약이 있었다. 하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현안은 주목받지 못하거나 ‘가공된’ 쟁점에 의해 가려졌다. 대선 기간 고공농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안은 대선의 쟁점이 되지 못하고 외면 당했다. 민주노총과 부르주아 야당이 함께 주장한 재벌개혁과 자칭 변혁세력이 주장한 사내유보금 문제는 유력 대선 후보들의 토론 주제로 자주 거론되었지만, 다수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은 주목받지 못했다. 국가, 사회, 가족, 공동체에서 이중 삼중의 차별과 고통을 받고 있는 성소수자의 인권은 짓밟혔다. 상시적인 생존권 위기와 위험한 생활조건에 처한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책은 시혜적 차원에서만 다루어졌다.

     

     대대적인 촛불 투쟁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는 현 위기와 모순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 문제로 나아가지 못했다. 방어적인 노동자 기본권 요구에 머물렀던 노동자 운동 진영은 대선에서도 자신들의 현안과 쟁점을 계급투쟁-권력 투쟁으로 모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극우 친자본 세력의 ‘강성노조’ 공격이 쟁점이 되었을 때, 자본과의 전면전을 선언하지 못하고 억울함과 노동 존중을 호소하는 데 그쳤다. 촛불투쟁의 주역이었다는 민주노총과 이른바 좌파 세력은 대선에서 공세적이지 못했다. 노조 할 권리,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최소한의 방어적 요구도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투쟁으로 쟁취하겠다.'는 계급적 요구가 아니라 '투쟁과 정책협약'을 병행하는 애매모호한 시민적 요구에 그쳤다. 

     노동자 계급은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교체냐, 노동존중이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죽이고 생존권을 파탄 낸 ‘자본가 계급의 대리-협력세력에게 권력을 바치는 선거냐, 노동자를 살리고 스스로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이냐’를 선택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했다.오히려 대선으로 세상을 바꾸자면서, 대선이 ‘노동존중 평등사회’를 가져올 거라는 환상을 유포했다. 하지만 ‘노동존중’은 노동자 투쟁과 단결의 힘이 자본가 권력과 맞설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평등사회’는 선거가 아니라 노동자 투쟁과 혁명으로 노동자계급이 자기 권력을 가질 때 가능하다.

     

     선거가 노동자계급에 중요하거나 선거 공간을 반드시 계급투쟁(권력투쟁)의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비록 부르주아 선거라도 계급적으로 최대치를 요구해야 한다. 완전한 파업권, 정치사상의 자유, 노동자 통제(생산수단 몰수), 자본주의 타도 , 노동자혁명-노동자 권력의 필요성을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당장은 실현할 수 없는 주장이더라도 ‘권력’과 ‘국가’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때에는 끊임없이 구체적인 노동자의 언어로 설명하고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이른바 좌파 세력은 자신들의 조합원들에게조차 계급의 강령적 요구를 꺼내놓지 못했다.

     

     이른바 좌파 정치세력 중에는 ‘계급의식’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정의당 후보를 지지하는 곳이 있었고, 지지할 후보가 없다면서 노동자 혁명당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곳도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계급정당-노동자혁명당이 부르주아 선거에서 노동자들에게 선택지를 하나 더 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에게는 자본가 정권-체제에 맞서 싸우고 노동자 혁명-노동자 권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노동자혁명당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부르주아 정치를 타도하는 목적을 갖기 때문에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적이고 적대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혁명당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부르주아 선거 참여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극히 제한적이고 예외적이어야 한다. 문제는 매번 반복되는 선거에 대한 전술과 입장이 노동자 투쟁과 노동자 의식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후퇴시키는 역할만을 해왔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요원한 혁명당 건설 전망 속에서 선거 때마다 당위로 주장하는 당 건설 주장은 더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적이고 적대적인 선거대응을 하는 일이다. 그것은 초기에는 당 없는 선거 대응, 당 건설로 향하는 선거 대응, 소수가 할 수 있는 선거 대응, 선거를 넘어서는 투쟁 창출, 선거를 거부하며 투쟁과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실천과 자기조직화 전망이 될 것이다.

     

     아무리 노동자 운동이 후퇴하고 투쟁의 힘이 지속해서 약해졌어도,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투쟁해야만, 자본가 계급에 밀려있는 교착상태를 깨고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첫걸음은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이다. 대리인과 우상을 내세우지 말고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고 노동자 계급의 방식으로 직접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혁명세력들은 부르주아 정치판에 끼어들지 말고 비록 소수일지라도 항상 노동자계급의 자리에서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 이를 넘어서는 공산주의 사회만이 대안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워야 한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선거유세용 집회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정치광장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 정치광장을 통해 자기 사업장 투쟁을 넘어 노동자들이 정치적 의사표현과 투쟁의지를 제한 없이 표출하고 행동하는 ‘노동자 직접행동’, ‘노동자 직접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부르주아 정치 비용(선거자금)을 모금하지 말고 노동자들이 직접행동과 연대의 장에서 함께 할 수 있도록 직접행동(투쟁) 기금을 조성하여 선거 이후의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모든 연대 세력은 투쟁과 조직 모두에서 소외되었던 비정규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 장애인, 빈민, 이주노동자들의 현실과 투쟁에 관심을 갖고 적극 연대해야 한다. 노동자 투쟁과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결합만이 계급 운동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


     선거에서 노동자계급의 쟁점은 선거공약과 후보검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에만 존재한다.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담아내고 분출하게 하는 노동자 정치도 부르주아 정치판이 아닌 노동자의 자리에서만 가능하다. 자신의 자리도 지키지 못하면서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지 말자.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용납하지 말자.



    <부르주아 선거와 선거 전술에 대한 토론>

     

    ◆ 이번 대선에서 노동자계급의 쟁점은 무엇이었나? 쟁점은 현실에서 표출된 것인가? 기획되어 가공된 것인가?


    ◆ 선거 국면에서 차악에 대한 (비판적) 지지는 계급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 오히려 후퇴시키는가?


    ◆ 프랑스 대선에서처럼 기권이 아닌 투표 거부-모든 후보 반대 행동은 조직할 수 있는가? 코뮤니스트는 왜 차악을 선택하지 않는가?


    ◆ 현재의 노동자들에게 선거란 무엇인가? 혁명 세력에게 선거전술이란 무엇인가?

     

    "노동자계급은 노동자의 해방이 의회의 장악이나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의회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뒤 사회주의를 입법화하는 동안 지배계급이 평화적으로 우리를 기다려 줄 것이라고 믿는 의회주의의 환상일 뿐이다. 의회 민주주의는 자본가계급의 독재를 위장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자본주의 사회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기관은 의회 밖의 군대, 사법기관, 국가관료, 보안세력, 생산수단의 통제자로 존재한다. 따라서 현재는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기구와 제도(의회제도 포함)들을 파괴하는 것이 혁명의 과제이다. 또한, 노동자계급은 의회주의 보통선거권의 잔해 위에 노동자평의회의 계급기구와 노동자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사회의 다른 잔재들 위에 노동자계급의 독재를 세워야하는 역사적 장도에 올라있다. 이때 의회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그 어떠한 혁명적 의도들과는 무관하게 단지 죽어 가는 자본주의 껍데기인 의회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는 일일 뿐이다.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1, [코뮤니스트 5호])

     

    ◆ 의회주의(선거주의)를 반대하면서도 여전히 부르주아 선거를 노동자계급의 강령을 위한 선전 및 선동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고, 부르주아 정치의 실체와 위선의 폭로를 위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유용한가?

    반대로 의회와 선거개입에 대한 전술들이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정치적 장치들을 유지하고, 노동자들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경향이 굳어졌기 때문에 현재에서는 선전 및 선동수단으로서 선거와 의회의 활용이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어버렸나?

     

    ◆ 낡은 부르주아 선거(의회) 제도와 기구를 파괴하는 목표와 현실에서 투쟁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한 괴리가 있는데, 중간 단계가 필요한가? 지속적인 선전과 직접행동 촉진 이외에 방법은 없는가?



    국제코뮤니스트전망 l 이형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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