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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
  • 조회 수: 7050, 2013-08-29 12:54:11(2013-08-29)
  •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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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8월 26일 남궁원 동지를 포함한 7명의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건으로 경찰에 긴급 체포되었고, 체포된 지 사흘만인 8월 28일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풀려났다. 경찰은 그 후 한 차례 더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역시 기각당했다.

    2009년 8월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노련 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했고, 2년이 지난 2011년 12월 16일 2심 재판 선고 공판이 열렸다. 같은 해 2월 24일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사노련을 국가변란 선전·선동 단체라고 규정하고 오세철·양준석·양효식·최영익 등 4명의 활동가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남궁원·박준선·오민규·정원현 등 4명의 활동가에게는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집시법 위반을 덧붙여 모두에게 벌금 50만원 형을 부과했다.

    1심 재판 이후 피고인 측과 검찰 측은 쌍방 모두 항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2심에서 재판부는 피고인 측의 항소 이유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검찰의 항소 이유만 일방적으로 수용하여 오히려 형량이 더 강화된 판결을 내렸다.

    아직까지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지 않았지만,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혁명적 사회주의와 코뮤니스트 운동은 탄압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그 길의 중심에 남궁원 동지가 있었고, 대법원 상고 중 동지들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주의자들을 단죄하는 재판은 진행 중이고 국가보안법은 미쳐 날뛰고 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의 정치적 의미

     


    11월 17일 법원은 경찰이 재청구한 사노련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혁명적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을 강령으로 삼아 사노련을 만든 뒤 인터넷과 촛불시위, 노동현장에서 이러한 노선을 선전하는 등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혐의”에 대해 소명이 부족하고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 기각 이유였다. 첫 번째 영장이 기각된 8월 28일 이후 78일만이다.

    영장에 크게 보강된 내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장을 재청구한 것에 대해 사노련을 비롯하여 민변, 사노련 공대위는 의아해했다. 다시 기각될 경우 위신추락 등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을 감수하고서까지 검·경이 영장 재청구를 감행한 속내가 무엇일까? 검찰은 겉으로는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나, 영장실질심사에 4명의 공안검사가 직접 나와 “이런 세력을 놔두면 실질적 위험세력으로 성장하고 그때는 처벌할 수 없어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며 구속을 강변한 것을 보면, 이번의 영장 재청구는 검찰수뇌부와 이명박 정권의 배후지시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새로운 전망

     

    우리는 여기서 이른바 「사노련 사건」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전형 창출의 문제이다. 사노련의 출범은 비공개 써클 형식의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관행을 넘어서는 새로운 전형 창출의 계기를 마련했다.

    일각에서는 공개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에 대해 비판과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공개 활동이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탄압의 빌미가 되고 역량손실을 가져와 결국 사회주의 운동의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노련은 미래의 사회주의운동에의 도전이라는 인식의 전환 위에서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사회주의운동을 혁명적 맑스주의 원칙을 굳건히 견지하면서 전개할 것을 결의하면서 출발하였다. 「공개」의 문제를 「합법」으로 잘못 이해하는 곡해가 여기저기서 있었지만 이는 이번 사노련 사건을 계기로 한낱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단체 구성에 해당한다는 사노련의 「우리의 입장」과 「대중행동강령」은 대중에게 공개된 정치적 입장이며 「공개」와 「수위조절」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사회주의 운동은 그 운동의 진정한 뜻을 숨기고 존재할 수 없다. 사회주의는 몇 몇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담론이며 실천적 용어이며 행동의 지침이다. 이 의미를 대중적으로 알리고 실천으로 옮길 때만이 사회주의 운동은 역동적으로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 이를 몇몇 활동가나 지식분자의 전유물로 여기고 비밀스럽게 대중에게 다가간다 한다면 그것은 박제된 훈고학일 뿐이다. 우리가 외치는 정치사상의 자유는 바로 이러한 사회주의운동의 공개화, 대중화, 전면화인 것이다.

     

    노동자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의 결합

     

    두 번째는 사회주의운동과 대중운동의 결합의 문제이다. 첫 번째 구속영장은 사회주의운동과 촛불과의 결합을 문제 삼았다. 사노련은 촛불대중과 결합하면서 노동자의 관점으로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근본문제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촛불노동자 13대 행동강령」을 만들어 배포하고 촛불대중과 함께 비정규직 철폐, 공기업 민영화 반대, 이명박 퇴진을 외쳤다. 사회주의적 요구를 가장 현실적인 촛불대중의 요구로 구체화하고 그것이 결국 노동자정부 그리고 노동자권력의 문제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헌번 제1조’나 이명박 정부를 넘어선 노동자 · 민중 정부의 필요성을 촛불대중이 스스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 번째 영장이 기각된 후 사노련은 더욱 열심히 정치신문을 만들고, 석방자대회를 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의 전면화와 대중화를 펼쳐나갔다. 그리고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등 노동자들의 투쟁에 결합하고 연대했다. 그리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이 제2의 촛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와 구조적 해체가 금융, 실물, 소비의 위축을 넘어 자본주의 문명의 해체로 나아가는 역사적 대전환점에 우리는 서있다. 자본의 생존 몸부림이 전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되면서 노동자의 삶은 가난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야만이냐 사회주의냐의 선택의 막다른 골목에 접어든 것이다. 앞으로 더욱 거세질 자본의 공격에 맞선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이 솟구쳐 오를 것은 불 보듯 훤하다. 사회주의세력은 이러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당연히 앞장서서 인류의 희망과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외칠 것이고 역사의 미래에 주인이 될 노동자계급과 함께 어깨 걸고 싸울 것이다.

    검경과 이명박 정권이 영장기각 가능성에도 아랑곳없이 무리수를 두면서 밀어붙인 것은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을 억압하고 사전에 차단시키려는 것일 게다. 재청구된 영장을 기각시킨 법원의 판단은 공개적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구속으로 대응하지 않은 합리적 결정이라고 본다.

    사노련 사건 - 대중적인 사회주의운동의 앞날을 열어갈 첫 시험대로 삼자

    이제 모든 사회주의운동세력은 보다 적극적이고 공개적인 사회주의선언을 하고 대중적인 사회주의실천을 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사노련 사건을 일개 정치조직 사건이 아니라, 사회주의운동의 앞날을 열어갈 첫 번 시험대로 삼자! 모든 사회주의자들과 선진노동자들은 노동자운동을 실질적인 사회주의운동으로 만드는 장도에 나설 것을 기대한다. 사회주의를 사회주의자들의 깃발만으로 휘날리게 하지 말자! 그것은 만국의 노동자들의 깃발이며 실천적 행동이다.


      오세철

     

     

     


      6월1일 사노련 재판 모두 진술문

     
    처음 진술

    남궁원 

     

     

    저는 어저께 (5월31일) 서울중앙지방 법정에서, 2시간에 걸친 검찰의 사노련 기소 내용을 들으면서 이번 사노련 재판은, 사노련 사건뿐만 아니라, 검찰이 한국에 있는 모든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활동을 겨냥하고 있다고 봅니다.

     

    검찰 추가 증거 목록에 보면 ‘사노위’ 건설 제안문도 포함돼있는 것으로 보아,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단체로, 사노위도 곧 검찰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저는 현재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사노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국가보안법상의 재판을 받고 있지만, 미래에 또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단체 재판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3만 페이지에 달하는 검찰의 증거 목록과 주장을 핵심적으로 정리하면,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사노련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와 쌍용자동차, 노동현장 투쟁의 배후에 개입한 폭력세력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위험한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검찰은 사노련을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단체 구성과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합니다. 저는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 사회주의/공산주의 세계를 꿈꾸고 실천하는 공산주의자입니다.

    검찰은 저희들에게 폭력 운운하는 세력이라고 합니다. 저는 폭력을 싫어합니다. 아니 어떤 사람도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 자체는 구조적으로 노동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회입니다.

     

    “정리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77일간의 공장점거를 하면서 외쳤습니다. 왜 정리해고는 노동자에게 살인이라는 말로 다가올까요? 모든 생계수단을 잃게 되는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에게 죽음으로 다가옵니다. “정리해고” “살인”이라는 말처럼 폭력적인 말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정리해고’는 수없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어저께 용산 망루 농성 사건으로 기소된 철거민들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의 죄를 물어 4-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평범하게 장사를 하던 분들이었습니다. 도심재개발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소박하게 생존권을 요구했던 철거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었습니다. 5명의 철거민 동지들이 숨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가하는 폭력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사노련, 아니 이 땅에 모든 양심 있는 세력과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은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용산참사 철거민 투쟁에 연대를 했습니다. 정리해고를 중단하라고, 재개발을 중단하라고.

     

    우리의 이런 연대 행위가, 폭력 세력입니까?

    저는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노동자 시민에게 폭력을 가하는 이 체제를 바꾸려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 모든 폭력의 근간은 바로 이윤을 추구하는 체계입니다. 그런데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 자체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의 노동자를 살육한 2차 세계대전을 벌인 체제입니다.
    자본주의는 폭력과 야만의 체제입니다. 자본주의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에, 다시금 한반도에서 전쟁 책동과 공포를 조장하는 세력이 바로 지배계급입니다.

    지배계급에 맞서, 자본주의 폭력에 맞서, 다수의 노동자 대중과 함께 싸우는 것이 이 땅의 공산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산주의자임을 떳떳하게 밝히고 실천해나가려고 합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단지 좋은 꿈이나 이상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전쟁, 빈곤, 생태계 파괴를 극복하는 문제는, 노동자 대중에게 절대적인 필요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계급투쟁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2010년 6월1일

     

     


    법정 최후 진술문


    “자본주의는 쇠퇴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단지 좋은 이상이 아니라, 인류의 행복한 삶을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현실적 필요성입니다. “

      


    1. 저는 얼마 전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앞에서“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외치며”, 찬이슬을 맞으면서 200여명이 거리 노숙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울산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20대~30대 초반이며, 40대 초반~50대 후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40대~50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과 대화를 하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40대~50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들과 똑같은 라인에서 차를 만드는 일을 10년 넘게 해온 분들이었습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정규직과 임금차별(50%)을 받는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10년이 넘게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보통 14시간 일하며, 2시간 마다 교체를 하는데, 교체해줄 사람이 없으면, 화장실도 못 간다고 합니다.

    그 여성 노동자들이 한 말을 옮겨보겠습니다.
     
    “거리에서 장사하는 상인들도 우리 싸움에 힘내라고 한다”

    “집에서도 우리 싸움을 지지하고 있다”

    “우리 애들 비정규직 만들 수 없다.”

    “오늘 연대 세력이 많이 오니까, 힘이 난다. 연대 세력이 많이 와주면 좋겠다.”라고

    저의 두 손을 꼭 잡으면서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대책위 피켓 문구를 봤습니다.

    “우리 아빠 때리지 마세요!”

    “비정규직 노동자는 당신의 아들, 딸, 동생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염원은 “비정규직 철폐”입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철폐는 현 자본주의 체제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구호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자본과 적대적으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글로벌 기업인 현대자본에 맞서, 며칠째 공장점거 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싸움이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는 바로 연대 파업의 확산입니다. 그리고 전국적인 파업입니다.

    공장점거 파업에서 지역연대파업의 확산, 이어지는 전국적인 파업. 저는 바로 이것이‘노동자평의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이 염원하는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스스로 계급의식을 체득하고 있으며, 스스로 자본과 적대적으로 투쟁하면서 노동자의 권력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얼마 전 개최된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심 곳곳 대형빌딩에는 "위기를 넘어, 다 함께 성장"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본가 전문 홍보가 조차도 ‘위기’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위기. 대체 이 위기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1970년대 이후 세계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2007-2008년 세계자본주의 심장인 미국을 강타한 금융위기는 아이슬란드 국가부도를 거쳐, 러시아, 남부 유럽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헝가리 등에서 국가 재정위기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오늘날 지구적 규모에서 벌어지는 자본주의 금융위기, 국가 재정 위기는 바로 신자유주의 산물입니다.

    이런 점에서 자유방임형 경쟁자본주의에서, 국가 주도적 케인즈주의로, 다시 시장 만능을 추구했던 신자유주의 파산은, 자본주의가 역사적 쇠퇴 경향에 서 있음을 보여줍니다.

     

    3. 신자유주의 종주국인 미국을 보겠습니다.

    2007년 서브프라임 경제위기 이후, 미국 저소득자에게 떠오른 새로운 부채수단이 신용카드, 자동차 할부금융, 학자금 융자입니다. 새로운 부채수단들은 지방은행과 직결돼있습니다. 이것이 부실화되면서 급증하는 것이 바로 지방은행 파산입니다. 2009년 한 해 동안 미국 지방은행 파산은 총 120개입니다. 181개 금융사가 파산한 지난 1992년 이후 최악의 수치입니다. 더구나 오바마 정부가 구제 금융에 쏟아 부은 재정적자가 1.4조 달러입니다. 1945년 이후 미국 역사상 최고 재정적자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오바마 등장 이후 34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미국경제는 70%가 소비구조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노동계급의 궁핍화와 고용위기(대량실업)는 소비 위축과 장기 경제침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해마다 1조 달러 이상씩 엄청난 재정적자가 불어나고 있고, 무역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파산한 금융기관 구제금융을 위해, 수 조원의 돈을 풀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를 윤전기로 마구 찍어냈습니다. 달러는 전 세계를 휘저으면서, 신흥공업국 등을 중심으로 흘러들어 투기자본으로 전환했습니다.

    미국 오바마는 2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무역수지개선을 위해,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저임금 노동자의 착취를 통해 저가의 상품을 전 세계에 공급하는 세계 공장입니다. 중국이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인 20~40%를 받아들인다면, 중국 제조업은 수출에 타격을 받고 기업이 도산하게 됩니다. 최근 중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공장점거 투쟁을 겪은 중국 입장에서는 위안화 절상 요구를 쉽게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은 세계시장 쟁탈을 위한 수출 경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지속적 확장을 통한 이윤확보에 혈안이 돼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전 지구화된 상태에서, 새로운 식민지(?) 시장을 개척하지 못하다면, 자본주의 자체는 과잉생산의 영원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은, 자본주의가 자신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4. 한편, 우리는 자본주의가 위기에 직면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취한 긴축재정과 노동법 개악, 정리해고, 임금삭감, 복지축소, 물가폭등에 맞선 전 세계 노동계급 투쟁을 볼 수 있습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아프리카 대륙에서 물가폭등에 항의하는 카메룬 폭동 소요, 볼리비아 대중 투쟁, 이집트 총파업, 유럽에서는 그리스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투쟁, 루마니아 공무원 총파업, 스페인 공공부문 총파업이 벌어졌습니다. 덴마크, 독일,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프랑스 노동자들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총파업 투쟁, 노동자 감축에 항의하는 영국 지하철 노조의 24시간 총파업이 있었습니다. 아시아권은 한국 쌍용 자동차 77일간 공장점거 파업, 방글라데시 섬유산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비공인 파업 투쟁 3,000건이 발생했으며, 중국 공산당과 국가화된 노조에 맞선 중국 노동계급의 삵쾡이 파업 투쟁이 전개된 바 있습니다.

     

    5. 그러나 여기서 상투적인 문구는 피하겠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더 이상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비참한 조건 아래서 살 수 없기 때문에 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착취와 소외는 노예제, 봉건제, 19세기 자본주의에서도 이미 존재했습니다.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시점에, 우리는 혁명계급-부르주아지의 출현을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충돌 속에서, 혁명이 중요한 이유는 혁명계급-프롤레타리아트가 그 계급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계급의 공멸이라는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의 대두,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근본적 회의를 던진 세계경제대공황, 5천만 명의 인명이 학살된 제2차 세계대전은 분명 파국의 시대였습니다. 세계대공황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제적 군사적 투쟁인 2차 세계대전을 낳았고, 그 결과로 대공황은 해소되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최대 희생자는 노동자였습니다!

    자본주의 경제 붕괴는 대중이 ‘지적으로’ 공산주의(communism)를 알기 전에 객관적으로 혁명의 ‘필요성’을 낳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본주의 경제 붕괴는 혁명을 향한 가장 큰 동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은, 20세기 전반부 세계대공황 (1929~1933) 같은 대재앙이 재현될 가능성을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거 20세기 초반 혁명가들이 그래했듯이, 지금 사회주의, 공산주의자에게는“하늘 아래 엄청난 무질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은 훌륭합니다.”

     

    6. 따라서 저는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 위기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시대야말로, 이른바‘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낡은 고집으로 여기던 혁명의 문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혁명의 문제설정은, 자본주의 위기를 단순히 경기순환상의 문제로 보지 않고, 자본주의 체계 자체의 역사적 쇠퇴 경향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노동계급이 역사적 관점을 상실하고 하나의 공장, 하나의 지역에 갇혀 있으면 패배한다는 역사를 공산주의자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전쟁, 빈곤, 생태계 파괴 극복을 위해서는 공산주의 사회가 절대적인 필요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90여 년 전 로자 룩셈부르크가 갈파했던 것처럼, “사회주의는 지구전체 차원에서 생산력의 발전을 통한 노동하는 인류 자신의 삶의 욕구의 충족을 지향한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보편적이고 조화로운 세계차원의 경제 형태이다.”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입니다. 저는 노동자 혁명 운동이 다시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혁명을 꿈꾸고 시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닌, 이제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에 이제 나서야 합니다.

     

    자본주의 쇠퇴가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 한국에서 다시 국가보안법이 날뛰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를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20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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