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6호] 노동조합주의 - 안톤 판네쿡
  • 조회 수: 4069, 2018-01-30 17:45:49(2018-01-30)
  • 안톤 판네쿡

    노동조합주의

     

     

    생산을 수중에 장악하고 생산을 조직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임무가 먼저 다루어져야 한다. 투쟁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분명하게 보고, 우리 앞에 놓인 노선을 뚜렷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생산에 대한 권력의 장악하기 위한 투쟁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노동자 평의회는 이러한 투쟁을 거치며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해방을 위한 노동자 투쟁의 미래 형태들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사회적 조건들에 달려있고 노동계급의 힘이 증대함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증대시키기 위해 어떻게 투쟁해왔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항하여 어떤 행동 양식을 적응시켰었는지를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오로지 우리의 선행자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헤아려봄으로써만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 시대의 요구에 맞는 방식으로 전유할 수 있다.

     

    지배계급에 의한 노동계급 착취에 의존하고 있는 모든 사회에서는 전체 노동 생산물의 분배, 다른 말로 하면, 착취의 정도를 둘러싼 지속적인 투쟁이 존재한다. 따라서 중세시대뿐만 아니라 그 후의 세기는 지주들과 농민들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과 격렬한 투쟁으로 가득 찼다. 동시에 우리는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얻기 위해 신흥 시민계급이 귀족과 군주에 대항해 투쟁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기술, 산업, 상업의 발전으로부터 인한 새로운 생산체제의 발흥과 연관된 다른 계급투쟁이었다. 이는 토지의 주인들과 자본의 주인들, 즉 몰락하는 봉건체제와 부상하는 자본주의 체제 사이에서 수행되었다. 일련의 사회변동, 정치혁명과 전쟁 속에서 영국, 프랑스 및 여타의 나라들에서 자본가 계급은 지속해서 사회에 대한 완벽한 지배를 획득했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계급은 자본에 대항하여 두 가지 종류의 투쟁을 수행해야 했다. 노동계급은 가혹한 착취와 억압을 완화하고, 임금을 인상하고, 전체 생산량 중에서 그들의 몫을 확대하려는 지속적인 투쟁을 유지해야 한다. 그 외에 노동계급의 힘이 증가함에 따라 노동계급은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새로운 생산 체제를 세우기 위한 사회적 주도권을 획득해야 했다.

     

    처음으로 방적기계, 나중에 직조기계들이 도입된 영국에서의 산업혁명 초기에, 우리는 기계들을 파괴하기 위해 봉기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현대적 의미에서의 노동자, 즉 임금취득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전에는 독립적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저가로 상품을 생산하는 기계의 경쟁 때문에 굶주리게 되자, 자신들의 궁핍의 원인을 제거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던 영세 장인들이었다. 훗날 그들이나 그들의 자녀들이 임금노동자가 되어 그들 스스로 기계를 다루게 되었을 때, 그들의 위치는 그전과는 다른 것이 되었다. 산업의 성장이 이루어졌던 19세기 내내 좋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유혹에 도시에 몰려든 많은 시골 출신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현대에는 더욱 많은 노동자의 후손들이 공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들 모두에게 더욱 좋은 노동조건을 위한 투쟁이 가장 시급한 것이었다. 고용주들은 경쟁의 압박 하에서 그들의 이윤을 늘리기 위해 임금은 내리고, 가능한 한 노동시간은 늘리려 했다. 처음에 노동자들은 굶주림의 압박에 무력하게 묵묵히 순응해야만 했다. 그 후 유일하게 가능한 저항 형태인 노동 거부 즉, 파업의 형태로 저항이 폭발했다. 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은 처음으로 그들의 힘을 발견했고, 파업에서 그들의 투쟁력을 높여갈 수 있었다. 파업으로부터 공장, 해당 산업 부문, 나라 전체의 모든 노동자의 결속이 발생하였다. 파업으로부터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연대와 협동심, 전체 계급의 통일성의 꽃이 활짝 피어났다. 벽두의 여명이 새로운 사회를 밝게 비추는 태양으로 발전한 것이다. 처음에는 자생적이고 우연적인 모금 활동의 상호 협조는 곧 노동조합의 지속적인 형태를 취하였다.

     

    노동조합의 순조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들이 필요했다. 대부분 자본주의 이전 시기에서 물려받은 거친 무법, 경찰들의 독단과 금지의 토대들은 견고한 건축물이 세워지기 이전에 제거해야 했다. 보통은 노동자들 스스로 이러한 조건들을 확보해내야 했다. 영국에서 이는 차티즘의 혁명적인 캠페인이었다. 반면 반세기 후에 독일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 승인을 얻어내기 위한 사회민주주의 투쟁이 노동조합의 성장을 위한 기초를 닦았다.

    오늘날에는 전국의 같은 직종을 가진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다른 직종과 연계를 이루며, 전 세계의 노동조합들을 아우르는 국제적인 노동조합이 될 정도로 강력한 조직들이 설립되었다. 정기적으로 납부되는 높은 조합비는 파업 시, 파업을 꺼리는 자본가들이 노동조건을 크게 낮췄을 때, 이로부터 파업자들을 버텨줄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양의 자금을 제공하였다. 때때로 이전 투쟁에 대한 적의 분노의 희생물이 되었던 동료 중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대변자들로서 자본가 고용주들과 협상할 수 있는 봉급을 받는 관료들로 임명되었다. 파업의 적절한 시기에, 노동조합의 모든 힘의 지원을 받은 협상은 더 향상된 획일화된 임금을 얻어내고 또한 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닌 한 더욱 공정한 노동시간을 얻어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더는 굶주림 때문에 어떤 가격으로든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무력한 개인들이 아니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노동조합, 자신들의 연대와 협력 때문에 보호받고 있다. 모든 구성원은 동료를 위해 자신 수입의 일부를 내놓을 뿐만 아니라 조직과 공동체를 방어하기 위해 직업을 잃을 각오도 되어있다. 그 때문에 고용자들의 권력과 노동자들의 권력 사이에 어느 정도의 균형상태가 이루어졌다. 노동조건은 이제는 전능한 자본가들의 이해에 따라 규제되지 않는다. 노동조합들은 점차 노동자들의 이해 대표들로서 인정받아갔다. 비록 계속 투쟁을 해야 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권력이 되어갔다. 물론 모든 곳에 노동조합이 존재했던 것도 아니고, 단번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보통은 숙련공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노동조합을 설립하였다. 더욱 강력한 고용주들에게 대항하여야 했던 대공장에 있는 비숙련 대중은 대체로 뒤늦게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대공장에서 비숙련 노동자 노동조합들은 종종 갑작스러운 커다란 투쟁을 거치면서 출범하곤 했다. 그리고 거대 기업의 독점적 소유자에 대항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러한 막강한 자본가들은 절대적인 주인이 되기를 원했고, 비굴한 어용노조 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과는 별도로, 심지어 노동조합주의가 완벽하게 발전하여 모든 산업을 통제하더라도 이는 착취가 폐지되었음을, 즉 자본주의가 억압받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억압받은 것은 다만 개별 자본가들의 독단성일 뿐이고, 폐지된 것은 최악의 착취의 남용일 뿐이다. 그리고 불공정 경쟁에 대항해 그들을 보호했던 것은 동료 자본가의 이해,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의 이해 안에서였다. 노동조합의 권력에 의해 자본주의는 정상화되었다. 즉 특정한 착취의 규준이 보편적으로 제정되었다.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굶주림으로 인한 봉기를 일으키지 않도록 가장 적당한 생활을 허용하는 임금 수준이 방해받지 않는 생산을 위하여 필요하였다. 비록 노동시간의 감축은 대체로 노동 속도의 가속화와 노동 강도의 강화를 통해 중화되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미래의 착취 토대로서 이용 가능한 노동계급의 보전하기 위하여, 노동계급의 생동성을 완전히 고갈시키지 않도록 노동시간의 규준을 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그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그들의 탐욕의 편협성에 대항해 표준적인 자본주의의 조건들을 제정하도록 싸운 것은 노동계급이었다. 그리고 노동계급은 이 불확실한 균형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이러한 투쟁에서 노동조합은 그 수단이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에 필수불가결한 기능을 했다. 편협한 고용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더 멀리 볼 수 있는 그들의 정치 지도자들은 노동조합이 자본주의를 위한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을, 즉 정상화하는 기능을 하는 권력으로써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완벽해질 수 없을 것을 잘 알았다. 비록 노동자들의 고통과 노력으로 유지된 투쟁의 산물인 노동조합은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의 기관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상황들은 점차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어갔다. 대자본은 성장했고, 권력을 느끼고, 편안한 주인이 되기를 원했다. 자본가는 단결력을 이해하고 배웠다. 즉 그들은 고용주 연합을 조직하였다. 그래서 힘의 균형 대신에 자본의 새로운 우세가 발흥하였다. 파업은 노동조합의 기금이 고갈되도록 봉쇄되었다. 노동자들의 자금력은 자본가들의 자금력에 맞설 수 없었다. 임금 및 노동조건에 대한 협상에서 노동조합은 그들의 적립금을 고갈시키고, 이로 인해 조직 및 그 관료들의 존재 보장을 위협할 수 있는 대투쟁들을 두려워했고 그것들을 회피하려고 노력해야 했기에, 이전보다 더욱 연약한 협상 당사자가 되었다. 협상 과정에서 노동조합 관료들은 종종 투쟁을 피하고자 노동조건이 하락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에게 이는 불가피했고 자명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변화된 조건들에 따라 그들 조직의 투쟁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자신들이 더 어려운 노동 조건과 생활 조건을 말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투쟁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관점의 충돌이 발생했다. 관료들은 공통된 감각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즉 그들은 조합이 불리한 상황이며, 투쟁은 패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대투쟁의 저력들은 아직 사용할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아직도 대중들 속에 숨어 있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 양보한다면 그들의 처지는 더 나빠질 것이며, 오로지 투쟁을 통해서만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올바르게 깨닫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 내부의 관료들과 조합원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조합원들은 고용주들에게만 이로울 뿐인 새로운 임금(배상금)에 대해 저항했다. 반면 조합 관료들은 오랜 시간이 걸려 어렵게 타협에 이른 이 협상안을 옹호했고, 비준하려 했다. 이렇듯 그들은 종종 노동자들의 이익에 대항해 자본의 이익의 대변자처럼 행동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노동조합들의 영향력 있는 지배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노동조합 역시 모든 권력과 권위를 내던지고 자본의 기관으로 변해갔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성장, 노동자들의 수적인 증가, 연합의 시급한 필요성은 노동조합을 더욱 많은 관료과 지도자들을 필요로 하는 거대한 조직들로 만들었다. 모든 권력 요소가 관료들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모든 사업을 관리하고 모든 조합원을 지배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전문가로서 관료들은 모든 일을 준비하고 관리했다. 예컨대 그들은 재정 및 다양한 목적을 위한 자금 지출을 관리했고, 노동조합 신문의 편집자였기 때문에 조합원들에게 자신들의 관점과 생각을 주입할 수 있었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널리 유포되었다. 마치 국민이 의회와 국가에서 정치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합원들은 회합을 통해 의회에 나가 의사를 결정해야 할 대표자들을 선출했다. 하지만 오히려 의회와 정부가 국민의 주인이 되었듯이, 이와 똑같은 일이 노동자 의회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그들은 전문 관료들로 이루어진 관료제를 일종의 노동조합 정부로 변형시켰고, 조합원들은 그들의 일상적 활동과 보살핌에 의해 흡수되었다. 프롤레타리아의 덕목인 연대가 아니라, 규율, 결정에 대한 복종이 그들에게 요구되었다. 따라서 관점의 차이,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대립하는 의견들이 발생했다. 이는 생활조건의 차이에 의해 강화되었다. 즉, 노동조합 일들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관료들에게는 안전이 보장되었던 반면 노동자들의 직업의 불안정은 실업과 경기침체로 항상 위협받았다.


    그들의 결합하고 통합된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을 무력한 비참함에서 나아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위를 얻어내는 것이 노동조합주의 임무이자 기능이었다. 그것은 자본의 더욱 증가한 착취에 대항해서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했다. 이제 대자본은 은행과 산업 콘체른(재벌)의 독점력으로 이전보다 더욱 통합되어가고 있으므로, 노동조합주의의 이러한 이전의 기능은 끝이 났다. 자본의 엄청난 권력에 비할 때, 노동조합의 힘은 불충분하게 되었다. 노동조합은 이제 사회에서 그 지위가 인정되는 거대 조직이 되었다. 그것들의 위상은 법에 따라서 규제되며, 그들의 임금협정은 전체 산업에 구속력을 가진다.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은 산업 조건을 지배하는 권력의 한 부분이 되고자 열망하고 있다. 그들은 독점 자본이 그들을 통해 전체 노동계급에 자신들의 조건을 부과하는 하나의 장치이다. 이처럼 막강한 자본은 독재의 발가벗은 야만성을 다 드러내기보다는 보통은 자신들의 지배를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형태들로 위장하기를 더욱 선호한다. 노동자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조건은 거만하게 부과된 명령의 형태보다는, 노동조합과 합의한 형태를 취할 때보다 쉽게 받아들이고 굴복시킬 수 있다. 첫째, 노동자에게는 자신이 자신 이해의 주인이라는 환상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 스스로가 투쟁하고, 희생해가면서 만들어낸 것이 노동조합이라는 사실이 오늘날에는 그 주인들에게 굽실대는 노동조합에 대해 애정을 갖도록 하고, 노동조합이 자신들을 위한 조직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의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이 전 어느 때보다 노동계급을 지배하기 위한 독점 자본의 기관으로 변했다.

    wr.JPG

    <편집자 주> 판네쿡의 저서 <<노동자평의회>> 중 오늘날 더욱 중요해진‘ 노동조합주의’를 소개한다.


     <출처> https://www.marxists.org/archive/pannekoe/1947/workers-councils.htm#h13

              <<노동자평의회>>, 빛나는 전망, 2005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notice communistleft 276 2023-01-11
notice communistleft 280 2023-01-06
notice communistleft 326 2023-01-04
notice communistleft 370 2022-12-28
notice communistleft 459 2022-12-19
notice communistleft 485 2022-12-12
notice communistleft 657 2022-11-16
431 communistleft 25824 2012-12-14
430 communistleft 16251 2012-12-14
429 communistleft 16664 2012-12-22
428 communistleft 17782 2013-01-07
427 communistleft 14632 2013-01-09
426 communistleft 14469 2013-01-17
425 communistleft 21393 2013-01-27
424 communistleft 17590 2013-02-05
423 communistleft 12360 2013-02-12
422 communistleft 17482 2013-02-21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