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7호] 사랑의 급진성...
  • 「사랑의 급진성」을 읽고서...

     

     

     성? 사랑의 무엇이 어떻게 급진적이란 말인가? 얼핏 자유주의적 연애관이 떠오르기도 한다. 차가운 친밀성 시대에 만남은 종종 미리 설정된 프로그램(단순한 섹스 파트너 찾는 만남)에 따라 이뤄진다. 이렇듯 섹스 파트너 시대에 사람들은 단지 섹스하는 육체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에서 사랑이 혁명적이라고 생각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의 급진성이 아닌, 사랑 없는 섹스이며 결코 급진적이지 않은 사랑의 비급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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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레츠코 호로바트(저자)는 몇 가지 전제를 제시하며 사랑은 급진적이고 혁명적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랑이냐 혁명이냐가 아니라 사랑과 혁명의 관계에서만 사랑의 급진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넘어서 사회, 정치혁명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 과연 사랑은 급진적일 수 있을까? 사랑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등등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성생활 및 관련 제도를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사유재산제도와 계급이 발생하기 전에는 무리 단위로 생활을 하며 군혼을 하였다. 이 사회에서는 성 억압과 성 불평등이 없는 모계혈통 중심이었다. 지금처럼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사회적 제약이 없는 사회였다. 그 결과는 반사회적 성폭력, 성행동이 아니라 무리의 유대 강화와 생존으로 이어졌다.

     

    - 사랑과 섹스


     계급의 발생과 사유재산제도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형식적이고 강제적인 일부일처제와 가부장적 가족 탄생을 낳았다. 형식적 일부일처제는 혼전 순결 등의 성도덕과 성 억압, 성차별을 권위와 가부장적 권력을 통해 강제하였다. 그 결과 여러 가지 문제가 파생되었다. 특히, 빌헬름 라이히는 이러한 성 억압을 통해 복종적이고 순종적인 인간이 재생산된다고 주장한다.

     

     라이히1)는 (남성의 경우) 발기/사정 능력은 단지 오르가즘 능력의 전제조건일 뿐이며 성기 장애가 신경증의 가장 중요한 증상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보완하였다. 사랑 없는 섹스는 오르가즘 능력이 없으며 당연히 신경증을 해소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즉, 혁명과 사랑의 이분법뿐만 아니라 사랑과 섹스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부정한다.

     

     그래서 충동의 만족을 통한 오르가즘에 이르는 길이 라이히가 생각하는 성해방의 방식이다. 하지만 성해방으로 나아가는 데는 개인 내적인 장애물과 사회적인 장애물이 있다. 라이히는 사회적 장애와 관련하여 성정치, 성혁명을 통한 성해방을 강조했다. 라이히에게서 성혁명은 정치혁명과 함께이며 다른 개념이 아니었다.

     

     성혁명과 정치혁명이 다른 개념이 아닌 근거는 신경증을 극복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과 충동의 삼중 구조이다. 신경증 증상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모습은 성 억압이 존재하는 사회의 성격 구조가 아닌 단순하고 자명하고 온당한 성격을 보인다. 이에 따라 충동의 삼중 구조를 제시하였다. 자연스러운 일차적 충동(생물학적 충동), 반사회적 이차적 충동(생물학적 충동이 억압되어서 왜곡되어 나타난 반사회적 충동), 표면적 충동이다. 이를 통해 더는 충동을 억압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에 의한 왜곡을 풀어주어 자연스러운 충동이 펼쳐져 나가게 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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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정치, 파시즘의 대중심리 : 빌헬름 라이히>


    - 욕망, 다시 사랑의 급진성


     라이히의 작업은 사랑의 쟁취는 자본주의 사회의 억압을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욕망은 비사회적이고 금기시되어야만 하는 무엇이 아니다. 사랑의 급진성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욕망은 전체주의뿐만 아니라 서구의 자유방임주의부터 이슬람근본주의까지 적대시하고 있다. 왜? 욕망은 본질에서 혁명적이고 기존 사회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즉, 욕망은 현 사회체제에 위협적이고 전복적이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

     

     계급사회에서 욕망 역시 철저하게 계급화되어있다. (서구사회도 마찬가지이지만)이슬람근본주의 사회의 사례를 통해 피지배계급의 욕망은 철저하게 억압당하지만, 지배계급에는 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흥 부유층의 경우에는 상품 물신숭배와 욕망의 상품화에 따라 개인적 자유에 대한 제한에 반대하기보다는 소비의 자유를 통해 체제 위선적인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한다.

     

     1917년 10월 혁명은 욕망의 폭발이고 초반부에는 성혁명에서도 큰 변화가 생겼다. - 법적으로 열등한 여성의 지위 폐지, 이혼/ 낙태 허가, 여성들이 결혼한 후에도 재산과 수입에 대한 전적인 통제권을 가지는 것을 허용했다. 그런데 1934년에는 동성애 반대법 통과, 낙태 금지 등등으로 후퇴하였다.

     

     구소련에서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경직된 속류 맑스주의자들의) 주된 불만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개인의 사회 기여를 막는다는 것이다. 레닌에게서도 성적인 문제가 지나치게 널리 퍼지면 사람들이 혁명을 위해 애쓰는 대신 기분 좋은 것들을 말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위험한 일로 여겨졌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이네사 아르망은 코뮤니스트(공산주의) 혁명은 성/사랑 혁명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혁명가는 혁명을 먼저 이루어야 사랑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월 혁명 직후 진보적 성해방 조치가 1930년대 접어들면서 퇴보한 상황 및 1960 -70년대 독일 등지에서의 코뮌에서 성해방 실험의 실패로 저자는 사랑과 성의 이분법적 사고를 원인으로 주목했다. 하지만 사랑의 급진성의 주제인 ‘사랑과 혁명’ 모두에 어떻게 헌신해야 하는지 등의 구체적 분석과 방법을 제시하지 않은 한계도 있다. 그런데도 사랑의 급진성은 혁명의 급진성에서 발견되고 혁명의 급진성은 진정한 사랑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저자는 사랑에 빠져 사회와 혁명에 무관심한 경우와 정치혁명이 우선이며 그 이후에 성혁명을 하자라는 주장에 모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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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인생의 원천은 사랑과 노동과 지식이다.

    인생은 그 세 가지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

    - 빌헬름 라이히


    - 사랑의 급진성, 오늘날의 의미


     노동해방 없이 성해방, 여성해방은 요원할 뿐이다. 왜냐하면, 성적 불평등과 성 억압은 어느 날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계급 발생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평등, 성해방을 포함하는 성혁명은 계급타파로 가기 위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따로 일수가 없다. 이에 성적 자유와 성평등은 남녀 사이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며 계급 타파와 인간해방의 주제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이슈인 미투는 남녀 사이 문제에서 더 나아가 권력 문제로까지 제기되었다. 하지만 좀 더 본질을 보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일반적 성억압(혼전 순결, 낙태 금지, 부르주아 도덕 교육, 종교 교리 등등)과 그 파생적 결과로 성적으로 파편화된 지배계급의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부르주아 도덕과 혼전 순결, 낙태 금지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폭로해야 한다. 그러면서 성적 자유가 무엇인지, 실질적 일부일처제 실현을 위한 사회적 전제조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 불거진 특정 조직의 내부 민주주의 문제 제기와 더불어 혼전 순결과 낙태 반대를 내부 규정으로 삼아왔던 것이 폭로되었다.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부르주아도 내팽개친 부르주아 도덕을 내부 규정으로 무장한 그들은 노동계급의 적일 뿐이다. 


     욕망과 도덕은 그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욕망과 도덕은 사회적이며 시대와 계급에 따라 다르다. 대중의 계급의식은 그들의 구체적인 생활과 연계되었다. 대중의 다양한 구체적 관심들을 끌어내고 해결해 가면서 어떻게 커다란 문제와 연결해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대중에게 향하는 것을 넘어서 대중의 욕망에 귀 기울여 갈 것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과도 담을 쌓고 대중과도 담을 쌓고 깃발만 꽂으면 대중이 따라나선다는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찬 이들에게는 허위와 기만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조덕연



    <주>


    1)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87-1957) :

     1897년 갈리시아(폴란드 남부 지방)의 도브르치니카에서 태어났다. 1918년 비엔나대학 의과대학에 입학했으며, 1920년에 비엔나 정신 분석학 협회에 들어갔다.

     이후 1930년 베를린으로 가서 정신분석상담소와 맑스주의 노동자 대학에서 강의했다. 라이히는 한편으로 코민테른, 오스트리아 맑스주의, 독일 공산당과,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이트 학파와 대결한 뒤에 1934년 공산당에서, 그리고 국제 정신 분석 협회에서 추방당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1939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오르곤 에너지'를 발견하였고, 1957년에 죽을 때까지 오르곤 에너지 연구에 몰두하였다. 라이히는 뉴욕주와 메인주에 연구소를 설립했고, 1947년 식품의약 관리부의 조사대상이 되었고, 1954년 법정의 금지명령을 요청하는 고소장이 발부되었다. 라이히는 기초자연 연구에 관해 '피고'로 재판받는 것을 거부했는데, 법정모욕죄로 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57년 11월 3일 한 연방교도소 안에서 사망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강제적 성 도덕의 출현』(1932), 『문화적 투쟁에서의 성』(1936), 『성 혁명』(1966), 『파시즘의 대중 심리』(1933), 『성격 분석』(1933)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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