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14호] 계급 투쟁 전망
  • 조회 수: 1518, 2022-02-14 10:32:15(2022-01-12)
  • 계급 투쟁 전망

    <![CDATA[photo_2021]]/><![CDATA[-]]><![CDATA[01]]><![CDATA[-]]><![CDATA[06_00]]><![CDATA[-]]><![CDATA[21]]><![CDATA[-]]><![CDATA[00.jpg]]>

    이 결의안은 22ICC 총회의 해체 보고서, 23차 총회의 국제 정세에 대한 결의, 24차 총회의 대유행 및 해체 보고서와 연속성을 갖는다.

     

     

    24.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90년대 초, 동유럽 블록의 붕괴와 결정적인 쇠퇴기 개막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점점 더 큰 어려움을 야기할 것임을 알았다. 1980년대 계급 운동에서 이미 핵심적인 문제였던, 정치적 전망의 부재,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전망을 만들어낼 수 없는 무능력함이 코뮤니즘의 죽음이라는 귀청이 터질듯한 선전으로 심각하게 악화할 것이었다. 관련하여, 이 시기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체성 인식도 심각하게 약화할 것이다. 사회적 해체가 가져올 원자화, 분리 불화 효과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 하는 지배계급의 의도적인 노력 - 이데올로기 선전(“노동계급의 종말”)과 세계화 정책(계급투쟁의 전통적인 중심을 붕괴시키고, 충분한 역사적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노동계급이 있는 지역으로 산업을 재배치하는 등)이 가져온 물질적인(유물론적인)” 변화들 모두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25.

    ICC는 계급투쟁에서 이 후퇴의 깊이와 지속 기간에 대해, 종종 이러한 퇴조는 곧 극복될 것이고,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 지나면 1968년 이후 시기처럼 새로운 국제적 투쟁의 물결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2003, 프랑스, 오스트리아 및 각지의 새로운 투쟁들에 기반하여 ICC는 반()코뮤니스트 선전의 영향을 덜 받았으며 점점 더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할 젊은 세대의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투쟁이 부활할 것임을 내다보았다. 2006~2007년의 사건들, 특히 프랑스에서 최초고용계약제(CPE)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그리고 특히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Indignados) 운동에서, 이 예견은 주요하게 확인되었다. 이 운동은 세대 간 연대, 집회를 통한 자기 조직화, 토론의 문화, 노동계급과 인류 전체가 직면한 미래에 대한 진정한 염려의 수준에 있어서 중요한 진보를 보여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계급투쟁의 경제적 정치적 차원을 통합하는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해체의 상황에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가 직면한 어려움 프롤레타리아트가 이 시기 89년 패배 이후의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 방해가 될 을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26.

    이러한 어려움에서 중요한 부분은 계급 정체성의 지속적인 침식이었다. 이는 2010-11년의 투쟁, 특히 스페인에서의 운동에서 이미 명백해졌는데, 의식과 조직 수준에서 중요한 진보가 있었음에도 인디그나도스의 다수는 자신을 계급 일부로 여기기보다 시민으로 보았으며, 이로 인해 이후에는 카탈로니아와 스페인 민족주의의 독이 된, 지금 진짜 민주주의를!(Demoratia Real Ya!)(미래 포데모스(Podemos))과 같은 것을 팔고 다니는 민주주의라는 환상에 취약하게 되었다. 이후 몇 년 동안, 이 운동의 여파에 따른 역류의 흐름은 포퓰리즘의 급격한 성장으로 심화하였고, 포퓰리즘은 국제적 노동계급의 새로운 분파를 만들었는데, 민족적, 인종적 차이를 이용하는 이 분파는 포퓰리즘 우파, 그리고 포퓰리즘과 반()포퓰리즘 사이의 정치적 분파의 인종 집단 학살을 지지하는 태도로 불에 기름을 부은 듯 강화되었다. 전 세계에서 분노와 불만이 증가하고 있었고, 심각한 물질적 부족과 미래에 대한 진정한 불안에 기초하여,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의 대응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 대부분은 프랑스의 노란 조끼와 같은 계급 간(inter-classist)의 봉기로, 기후 행진(climate march)과 같은 부르주아 영역의 단일 문제 선전으로,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주의 운동으로(홍콩, 벨라루스, 미얀마 등), 또는 인종적 성적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힌 정치로 나타났는데, 이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위기에 대한 진정한 대응을 위한 유일한 기반이 계급 정체성이라는 결정적인 이슈를 더욱 감추는 데 기여했다. 이 운동의 확산은, 그것이 계급 간의 봉기로 나타나든, 노골적인 부르주아 동원으로 나타나든, 이미 상당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던 노동계급 전체뿐만 아니라 계급 영역을 정의하고 방어해야 할 책임이 있는 조직인 코뮤니스트 좌파에게도 그 무게를 더했다. 명백한 보기는 보르디가주의자들과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20205, 경찰의 조지 플루이드(George Floyd)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분노가 그 즉시 부르주아 방식으로 우회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무능력함이다. 그러나 ICC 또한 종종 이러한 일련의 운동들에 직면하여 중요한 문제에 직면했다. 과거 20년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일환으로, ICC2011년 아랍의 봄부터 이른바 한국의 촛불집회를 거쳐 최근의 봉기와 동원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저질렀던 오류의 본질과 내용에 대해 심각하게 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27.

    유행병 사태는 특히 노동계급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했다:

     

    - 대다수 노동자는 이 질환의 실상과 다수가 모였을 때, 대중 집회와 노동자 시위의 가능성을 금지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진정한 위험을 알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뿐만 아니라 더 시급한 의미에서 바이러스에 맞서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연재해가 가장 주요한 문제가 되는 상황은 계급투쟁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스본 지진으로 인한 볼테르의 자연에 대한 분노는 일반화되지 않았다. 1905년 러시아 대중파업과 같은 사회적 지진과는 달리,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1923년 도쿄 지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늘 그렇듯이,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에 적대하는 데 있어 해체의 효과를 이용하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질병의 확산을 막을 다른 방법이 없다는 부르주아지의 이해에 따라 봉쇄는 이루어졌지만, 특히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형태로 노동계급의 원자화와 착취를 강제하기 위해 이 상황이 이용될 것도 확실했다. 노동 인구를 원자화하는 이 새로운 단계는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심한 경우 자살에 이르는 심리적 고통의 원천이 되었다:

     

    - 같은 이유로, 지배계급은 유행병 상황을 이용하여 대규모 감시 시스템을 확대하고 저항과 시위를 제한하는 억압적인 새 법률을 도입하는 한편, 모든 사회적 불만의 표현에 맞서는 보다 노골적인 경찰 폭력도 가져왔다:

     

    - 봉쇄로부터 비롯된 실업의 대규모 증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노동자 투쟁을 통합하는 요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원자화를 가속하려 할 것이다:

     

    - 봉쇄가 많은 사회적 불만을 자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월의 스페인, 20214월의 독일에서처럼 이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났을 때 취한 형태가 압도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위한저항인 것은 노동계급으로서는 완전히 막다른 길에 도달한 것이었다:

     

    -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정체성 정치가 보다 심화하는 유행병 사태 동안, 현 체제 아래에서의 삶에 대한 불만족이 인종, 성별, 문화 등에 기반을 둔 정체성의 충돌 소용돌이로 분열했고, 이는 전체 인류를 통합하고 해방할 역량이 있는 유일한 정체성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체성 - 의 회복에 주요한 위협을 조성했다. 더욱이, 정체성의 경쟁이 전체 인류에 침윤해 들어가는 이러한 혼란 뒤에는 노동계급을 새로운 형태의 반동적 문화 전쟁”, 심지어 폭력적인 내전으로 끌고 들어갈 위험이 있는 부르주아의 좌우파 간의 경쟁이 있었다.

     

    28.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계급이 전 세계 규모에서 이미 패배했다거나, ()혁명 시기처럼 그와 비견될 만한 패배, 프롤레타리아트가 이제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패배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생각은 거부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피착취 계급으로 패배의 학교를 통과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나, 핵심적인 문제는 혁명적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손상하는 가차 없는 해체의 진행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미 압도했는지이다. 해체의 단계에서 그런 패배를 측정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에 공개적으로 맞서 일어나 일련의 패배로 박살 난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시기, 또는 패배를 경험하지 않았던 프롤레타리아트 새로운 세대의 투쟁 부활이 새로운 세계 전쟁을 향한 부르주아 추동력의 주요한 걸림돌이었던 1968년 이후 시기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작업이다. 우리가 이미 언급했듯이, 해체의 시기는 진실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완전히 대응에 실패하고 오랜 기간 분쇄되어 회복하지 못할 위험 - 계급 적대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무자비한 난도질에 쓰러지는 것 - 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의심할 수 없는 해체의 진행에도, 시간이 더는 노동계급의 편이 아님에도, 완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부활 - 계급투쟁의 경제적 정치적 차원을 통합으로 이끄는 잠재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 목격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 해체 시기 등장한 중요한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2006-7, 2010-11년 등):

     

    - 유행병 사태 직전, 우리는 계급투쟁의 몇몇 태동적, 매우 연약한 신호들을 관찰할 수 있었고, 특히 2019년 프랑스에서 그러했다. 이러한 역동성이 대부분 유행병과 봉쇄로 중단되었을지라도, 심지어 유행병 사태 동안 몇몇 국가들에서 노동자의 저항 - 특히 노동 현장에서의 의료와 안전 문제를 둘러싼 - 은 존재했다.:

     

    - 의식의 보이지 않는 성숙을 가리키는 작지만 유의미한 신호들, 자본주의의 실패와 (특히 2011년 인디그나도스와 같은) 일부 운동에서 다른 사회의 필요를 국제적 수준에서 고려하는 노력에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계급 입장을 찾고 코뮤니스트 좌파의 유산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젊은 세대의 등장을 통해서도 그러했다:

     

    - 더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동유럽 블록의 붕괴 이후와 1989년 해체 시기가 시작하던 때와는 다르다. 그 시기에는 이러한 사건들이 코뮤니즘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승리, 그리고 인류의 밝은 미래가 열리는 증거로 제시될 수 있었다. 해체기 30년은 밝은 미래라는 이데올로기적 기만의 근거를 심각하게 훼손시켰고, 유행병 사태는 특히 자본주의 정부의 무책임함과 태만, 그리고 심각한 경제적 분리로 산산조각이 난 사회의 현실, 그래서 우리가 그 속에서 모두 함께가 절대 아니라는 현실을 드러냈다. 반대로, 유행병과 봉쇄는 노동계급의 상태를 보여주었는데, 의료 위기의 주 희생자라는 측면에서, 그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적 생산, 특히 기본적인 생필품의 생산과 필수적인노동의 원천이라는 측면에서 모두 그러했다.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생산양식이라는 이해가 확산하면서, 인류가 직면한 극적인 상황을 무엇보다 어쨌든 이해하고자 하는 정치화한 소수가 등장하는 요인이 되었다.

     

    - 마지막으로, 더 넓은 역사적 수준에서 해체의 진행은 자본주의 아래 연합한 노동의 특징들을 제거하지 않았다. 해체로 사회적 원자화가 발생했으며, “긱 경제(gig economy)”와 같은 전략들을 통해 계획적으로 노동력을 분리하려고 했고, 프롤레타리아트 중에 교육을 더 받은 이들을 중간계급이라고 보여주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선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러했다. 자본은 세계적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을 동원한다. 프롤레타리아트화 진행과, 그에 따른 살아있는 노동에 대한 착취는 멈추지 않는다. 오늘날 노동계급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더 상호 연결되어있으나, 그러나 사회적 원자화와 고립, 해체의 진행 또한 강화되었다. 이것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계급 정체성을 경험하는데 직면한 어려움에서도 표현되었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계급 영역에서의 투쟁을 통해서만 코뮤니즘의 연합된 노동에 대한 기대를 표현할 수 있는, “연합된권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노동자들은 생산과정에서 자본에 의해 모이는데, 여기서는 강제로 노동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성격은 집단적 투쟁으로 이러한 조건을 변증법적으로 뒤집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 노동의 착취는 착취에 저항하고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해방하는 투쟁 속에서 바뀌어, 연합된 노동의 잠재력을 어떻게 완전히 의식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아는 사회로 향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방어적 투쟁은 계급투쟁의 마지막 목표 맑스가 자유로운 생산자 연합이라고 부른 인 질적으로 더 나은 사회적 관계의 씨앗을 품고 있다. 이 연합을 통해, 그 모든 구성요소, 역량, 그리고 경험들을 모아, 프롤레타리아트는 강력해지고, 해방된 인류를 위한 훨씬 더 의식적이고 연합된 투사가, 그리고 선구자가 될 수 있다.

     

    29.

    경제적 위기에 해체의 진행이 반응하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경제적 위기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으로 남아있다. 해체에 대한 테제는 아래와 같이 쓴다:

     

    자본주의 위기의 가차 없는 악화는 사회적 부패가 주입한 독에 저항하는 자신의 능력을 갖추기 위한 전제조건, 계급투쟁과 의식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각성제이다. 해체의 효과에 저항하는 부분적인 투쟁 속에서 계급의 통일을 위한 기반은 한동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위기의 직접적인 효과에 저항하는 계급의 투쟁은 계급의 힘과 통일의 발전을 위한 기반을 구성한다. 이것은 왜냐하면:

     

    - 해체의 효과(오염, 마약, 불안정)가 사회의 서로 다른 계층들을 공격하고 비()계급적 선전과 신화(생태, 반핵 운동, 반인종주의 동원 등)를 위한 비옥한 토양을 형성하는 동안, 위기의 직접적 결과인 경제적 공격(실질 임금 하락, 해고, 생산성 증가 등)은 프롤레타리아트(이 영역에서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자본주의에 맞서는)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덮친다.

     

    - 본질적으로 상부구조의 효과인 사회적 해체와는 다르게, 경제적 위기는 이 상부구조가 기반을 두고 있는 기초를 직접적으로 공격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를 살찌우는 모든 야만을 까발리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체제의 특정 부분을 개선하려 하기보다, 급진적으로 체제를 변화시킬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준다.”(테제 17)

     

    30.

    결론적으로, 계급을 착취 받는 범주로만 보고, 영웅적, 혁명적 세력으로는 취급하지 않는 전형적인 현대적 견해가 있으나, 우리는 계급의 경제적 투쟁, “방어”, 중요성을 경시하려는 풍조를 거부해야 한다. 경제적 투쟁이 그 홀로 해체의 파도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진실이다: 해체에 대한 테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듯이, “위기의 효과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은 더는 충분하지 않다: 오직 코뮤니스트혁명만이 해체의 위협을 끝장낼 수 있다.” 그러나 로자 룩셈부르크가 1905대대적 파업이라는 그의 글에서 강조했듯이, 그리고 다시, 1918-19년 독일혁명의 열기 속에서 - “정치적관점이 개방되어 있었을 때 -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을 계급으로 조직하고 통일시킬 유일한 기반으로서 경제적 투쟁을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여전히 있다고 주장한 것처럼, 투쟁의 경제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 사이의 지속적인,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놓치는 것 또한 심각한 실수가 아닐 수 없다. 혁명적 전망을 회복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인류를 해체하는 자본주의의 악몽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해체되는 부르주아 사회의 객관적인 한계에 저항하기 위해 등장한 계급 영역에서의 새로운 방어적 투쟁과, 노동계급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완전한 정치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주는 혁명적 소수의 개입으로 자양분을 얻은 투쟁의 결합일 것이다.

     

    31.

    초기에 계급의 정체성과 전투성을 재발견하는 것은 자본주의 해체의 부식 효과에 대한 저항의 형태 - 노동계급이 더 파편화되고 내부에서 적대하는 이들로 분열되는 것을 막는 보루-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환경 파괴, 만연한 군사적 무질서와 같은 현상은 계급투쟁의 발전 없이는 무력감을 강화하고 생태주의나 평화주의와 같은 거짓 해결방안에 의존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투쟁의 보다 발전된 단계에서, 혁명적 상황의 맥락에서는, 이러한 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은 자본주의가 진실로 그 몰락의 최종적 단계에 도달했음을 이해하고, 혁명이 이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이해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자본주의의 전쟁 추동은 무엇보다 강대국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있을 때 매우 구체적인 착취와 물리적 위험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사회가 사회주의와 야만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더욱 확인해 준다는 점에서, 계급투쟁의 정치화에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동원의 해체와 절망의 요인들로부터, 이러한 위협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이 죽어가는 체제를 폐지하려는 결단을 강화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곧 다가올 시기,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 내부에서 해체가 촉발시킨 약화로부터 이득을 취할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이 기간 동안, 일반인들에게 가하는 해체의 해로운 효과에 저항해야만 하는데, 이는 착취 받는 계급으로서의 이해를 방어하기 위해 그 자신의 힘과, 집단적으로, 그리고 연대하여 투쟁하는 능력에 의존해야 한다(그런데도 혁명적 선전은 지속적으로 사회적 해체의 위험을 강조해야 한다). 오직 혁명적 시기, 프롤레타리아트가 공격으로 전환한 시기, 직접적이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영웅적 전망으로 무장할 때, 해체의 특정한 효과들, 특히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강대국 세력, 그 영향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자본에 저항하도록 방향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해체에 대한 테제)

     

    - 24ICC 총회에서 채택한 국제 정세에 대한 결의안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옮긴이 YW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062/resolution-international-situation-adopted-24th-icc-con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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