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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17호] 쇠퇴기의 자본주의와 이로부터 나날이 고통받는 노동자
  • 쇠퇴기의 자본주의와 이로부터 나날이 고통받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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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생산양식 모두가 이제는 역사적으로 위기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것은 문명의 진정한 위기이며, 위기를 정의했던 사회적 관계, 그리고 변함없는 체제가 확대한 생산력 발전 사이의 모순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주요 위기들은 각 체제 내에서 정의한 성장과 인류발전 사이에 심화한 분열을 필연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생산이 전쟁에 예속화되는 경향과 특정 주요 영역에서 생산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게다가 지배계급은 사유재산의 낡은 형태들을 극단적인 형태로까지 확대 변형시키며 반동했는데, 이면에서는 패배주의적이고 종말론적인 이데올로기들을 점점 더 은근히 뿜어대고 있었다.

     

    현재의 경제위기와 전쟁 위협은 단편적인 역사적 상황이 거대하게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 이 위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이며 역사적인 위기이다. 그러나 단적으로는 이 위기로 말미암아, 기저에 내재한 징후 모두가 명명백백히 드러나는 것이다.

     

    생산력의 파괴

     

    성장(=자본축적)(인간)발전 사이의 모순이 첨예하다는 것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모순은 모든 노동자의 일상생활에서, 실질적으로는 삶의 모든 차원에서- 노동 조건에서 시작해 건강관리, 약물에 대한 접근성, 과학기술 제반, 그리고 심각해져만 가는 현 상태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매우 구체적인 방식으로 그 모습을 스스로 드러낸다.

     

    또한, 독자들은 자본주의 성장과 인류발전의 대립을 다른 차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불건전성

    · 경제 건전성이 노동자와 사회의 건강을 총체적으로 마비시킨다.

    · 코로나-19의 기원

    · 항생제와 인류의 발전

    · 인슐린의 100, 인공물의 결핍 및 사망의 한 세기

    · 원숭이 두창에 관하여 독자들이 알아야 할ㆍ 것을 미디어가 알려주지 않는 모든 것

    · 노동자와 정신건강

    · 잔혹한 혐오성 범죄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류의 욕구를 왜곡, 강제 분리한 과학기술의 발전

    · 어떤 이가 인공지능을 두려워할까?

    · 5G는 어떻게 되었는가?

    · 인터넷, 군국주의가 사유재산이 된 기막힌 경쟁

    · 양자의 혁명인가 아니면 군국주의의 거품인가?

    · 반도체 전쟁과 자본주의의 모순

    · 플라스틱은 100% 자본주의 문제

     

    도시-시골-자연의 양립 불가능한 관계

    · 도시의 위기와 자본주의의 위기

    · 스페인 인구감소 : 다섯 가지 기본적 의문

    · 우주 전쟁은 SF 영화가 아니다.

     

    인류발전의 걸림돌을 표현하는 인구통계

    · 80

    · 국경 개방은 가능한가?

    · 아동은 왜 자꾸만 감소하는가?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식품 체계

    · 코로나-19가 농업과 식품에 관해 보여준 것

    · 농부는 옳은가?

    · 다가오는 기근 (202111)

    · 식량 부족과 전시경제 (20223)

    · 육류 및 유제품 녹색 정책의 새로운 사치품

     

    예술창조가 불가능한 쇠퇴기의 문화

    · 문어(文語)의 타락

    · 더는 예술이 만들어지지 않는가?

    ·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보편적 음악과 문학의 종말

     

    그러나 이를 또 다른 관점-순전히 단순한 생산력 파괴-에서 바라보도록 하자. 전쟁을 묵도하는 것도, () 유럽과 앵글로색슨 족()의 지배계급이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하는 일상의 학살과 약탈을 직접 볼 필요도 없다. 제국주의 놀음으로 촉발된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탈산업화를 묵인할 필요도 없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현 상황을 바라보도록 하자.

     

    미국 공식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건설 노동자의 1시간 노동 생산량은 1970년보다 낮았다고 한다. 또한, 전 세계 조선소의 자료를 검토하면, 세계무역은 초대형 선박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주요 분야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작금에 축조되는 조선의 용적이 10년 전과 비교해 40퍼센트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조선의 이용량이 줄었다거나 수요의 감소로 인한 것이 아닌, 그저 리드타임-상품생산 시작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증가로 인한 것이다.

     

    흔히 주요 분야에서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이러한 현상들에 복잡스럽고 다재다능한 골난 경제학자들은 짜증을 낸다.-주택 공급과 조선소도 예외가 아니다. 마치 모든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듯.

     

    그들을 진정으로 괴롭히고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것또한 언론에도 금기시되는 것-은 그것이 장기간에 걸친 정부의 결론이라는 사실이다. 체제를 위해 이성적인 것으로 여기며 생산 및 소비 기업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상호작용 한 결과라는 사실이다.-그리고 그것은 총체적으로 특정 자본 및 국가자본의 축적 요구에 봉사하는 것이다.

     

    수면으로 드러나는 범세계적 현상에 더하자면, 핵심 국가자본으로 시장을 방어하거나 정복하려는 시도로, 세계 시장에 대한 의도적 균열이 있다. (이것이 제국주의다) 국가자본 자신을 드러내는 용어인 고비용 세계화로 자신을 어떻게 치장하든, 사실상 그것은 자본에 대한 범세계적 관점에서 나온 쓰레기이다. 자본은 범세계적으로 같은 양을 생산하기 위해, 아니면 생산을 줄이기 위해 거대 자원에 대한 착취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이 이윤을 얻을 만한 목표를 발견할 수 없는 까닭에,-적절한 자리를 차지하기를 갈망하는 자본가들은-생산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현실 속에서 그들은 결국 쓰레기에 불과하며, 생산력 파괴에 불과한 자신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반도체 산업에서 보았듯... 그럼에도 자본은 팽창 중이다.

     

    여기서 생산력의 발전과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관계의 특성 사이의 모순을 보지 않으려면 매우 근시안적이어야 한다.

     

    생산력의 핵심은 임금노동자계급이라는 점, 생산력을 충족시킬 정도로 시장을 지속해서 창출할 수 없는 체제에서 자본은 노동력의 가치하락에 꾸준히 영향을 끼치는 기계가 된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따라서 자본 팽창에서 이들 모순은, 자본과 인간 삶의 모순 그 자체가 아니라면, 자본과 인류발전 간의 모순으로 치환될 뿐이다.

     

    지난여름 가디언지의 한 독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어떻게 21세기의 강국이 공짜 음식을 요구하며 퇴보할 수 있는가?” 얼핏 보면, 그때가 좋은 때였던 것 같다. 프랑스 본토에서 영유아 사망률이 어떻게 7% 증가할 수 있는지 마리안느가 질문한다. 아니다.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느라 큰 숲을 보는 모든 관점을 잃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그다지 대단한 비극은 아니다. 그것은 체제의 심각한 쇠퇴를 반증하는 것이다.

     

    변형된 소유형식과 바로크적 소유형식

     

    쇠퇴기에 진입한 어떤 체제의 전형적 현상은 그것을 특징짓는 재산의 형태가 기괴할 정도로 격화하는 것이다. 이른바 지적재산 형식은 부르주아 재산 영역의 확장을 위해 취해진다. 또한, 우리가 위기 속에서 보았고 의약품 공업에서 일상적으로 보았듯이,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 발전과 모순될 뿐 아니라 심지어 자본으로 제 발등을 찍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mRNA 백신 개발에 대한 영향에 대해 저항할 때 스스로 이 점을 상기한다. 그러나 대대적인 AI 선전 와중에, AI 프로그래밍에 사용된 데이터의 무한한 소유주가 한 조각의 파이를 요청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달을 때, 그들은 한밤중 헤드라이트에 사로잡힌 사슴처럼 얼어붙는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AI 논쟁에 있어서 이러한 모순들은 특별한 관심사에 속한다. AI가 생산의 사회화를 향하는 (역사적으로 필수적인) 경향의 선두에 서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 및 축적의 욕망과도 고통스럽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AI가 부르주아 재산의 가장 우스꽝스럽고 추상적인 형태와 충돌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만연한 사회적 관계들이 야만적으로 쇠퇴하는 특징을 증명한다.

     

    극적 효과가 떨어지기는 해도 분명히 훨씬 일상적인, 혹은 적어도 더욱 가시적으로, 노동자에 끼치는 해악은 그 유명한 전기차로의 이행이다. 이는 유지가 더욱 쉽고, 간편하며, 값이 저렴한 데다 기술적 내구성이 더 나은 것으로 판명 낫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자본의 이윤에 대한 기대에 손해를 끼친다.

     

    자동차 업계의 주된 반응이라면? 자동차의 판매 여부를 재고 하든-혹은 불명확한 기능들, 규칙적인 자동차 업데이트(이용자가 전기차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을 그들에게 심어주기 위해)-환상을 심는 가짜 임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역시, 독점에 의한 소유권 사회화의 한 형태이다. 닷지와 메르세데스는 이미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축적과 전쟁(군국주의)에로의 기술과 과학발전의 종속

     

    과학기술이 축적과 양립할 수 있는 용도를 스스로 창출해 내는 문제에 한정적으로, 이는 체제의 난관과 모순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 그 자체에서 양자 기술에 이르는 우주 경쟁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발전, 진화, 그리고 심지어 그들이 함축하는 과학적 연구가 어떻게 목적지도 없는 거대한 대량의 자본을 투입하고자 하는 욕망에 종속되는지를 우리는 알게 된다. 그리고 점차로 미래의 전쟁으로의 욕구에 어떻게 종속되어 가는지를 알게 된다(=군국주의).

     

    최근의 보기로 3D 프린팅이 있다. 당연하다시피 본래는 전파력, 다목적성, ()환경오염적 생산이라는 즉각적 실현 가능성을 많은 이들이 이 기술에서 보았다. 물론 이것은 초기부터 지식재산권에 뭉개지는 운명을 맞이했다. 반대로 산업계는 규모 확장의 대가로 더욱 많은 재료를 가지고 노동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과학기술 자체가 진화하도록 압력을 가했는데, 원칙상 그것은 긍정적이었다. 그리하여 규모 확장은 자본의 욕망에 도약하여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은 초() 전문화된 영역을 생산하는 거대한 플랜트 건설이었다. 문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되었는데, 현재 3D는 자본이 이윤을 얻는 한에서만 사용될 뿐이고, 거대 자본의 이윤 창출 착수에만 그 역할을 할 뿐이다.

     

    오늘날 3D 인쇄술은 실질적으로 항공우주 산업이 독점하고 있는 기술이며, 따라서 어떠한 식으로든 전쟁에 집중하고 있다. 소규모의 청정 생산을 위한 개발을 사실상 중단되었으며, 한때 번성했던 자유로운 지식과 개발 공동체에는 몇 안 되는 개발자들과 해커들이 남았으며.... 소규모의 권총 광신자들이 남아있다.

     

    종말론적, 반계몽주의적, 그리고 미신적인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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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가 멜서스식 사이비 과학연구에 자금을 대는 일은 보다 덜 충격적인 일이 되고 있다. 비단 지금까지 지배계급이 자신의 이윤 창출에 있어서 성장 축소의 유용성을 깨달아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매일 그들은 더 반()계몽적이며, 미신적으로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기생하는 고유한 본성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기반을 가공할 만큼 흉측한 괴물의 모습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생존하는 쇠퇴기의 반()인륜적 자본주의의 선봉에 서 있는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종족의 본성에 혼란을 느낀다. 보기로 생태 복원을 들 수 있다. 인간 배제,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환경으로부터의 완전한 소외 및 인구감소 포용으로서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매우 일관성 있게 자신을 디지털화함으로써 신체를 초월하고, 그리고 자신을 영속화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하는 것을 상상한다. 이것은 더는 과학의 세계에서만 논의되지 않는다. 선구적인 사회학자들은 지배계급 자신의 취향이 트랜스 휴머니즘과 같은 사이비 과학적 종교의 위험을 경고한다. 그러나 소용없다. 지배계급은 표류 중이다. 또한, 그들은 심지어 비활성 물질에서조차 영혼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그리하여 심지어 자신들 미신의 관점에서 물리학을 겉으로만 재해석하는 그 무엇보다 망상적인 신()애니미스트 이론까지도 의견 산업에 기꺼이 내어준다.

     

    이와 동시에 과학 저널 및 권위 있는 일간지의 문학면은 전쟁을 인간 사회 및 사회 발전의 기반으로 제시함으로써, 전쟁을 찬양하는 학계의 저작들로 가득 채워져 간다.

     

    이 모든 것이 일관적이다.

     

    결론

     

    · 자본주의의 위기는 맑스주의자의 관념이나 피로에 찌든 고집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우리를 둘러싼 모든 차원에서 각자의 일상생활을 왜곡하고 조건 짓는 현실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 이 진정한 문명의 위기의 기저에는 자신의 가치와 인간 발달을 재평가하기 위한 그만의 규칙에 따라 자본이 요구하는 것 사이의 양립 불가능, 적대감의 증가가 있다.

     

    · 연중 궁핍한 시장의 세계에서 자본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유일한 방법이 노동, 궁극적으로는 노동자의 삶의 가치 절하라는 것이라는 점에 그 근본적 원인이 있다. 우리는 팬데믹을 통해 이것을 보았다. 건강관리와 연금체계의 보편적 해체에서 이것을 본다. 등등...

     

    ·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체제가 초래한 발전 속에서 그 원인을 발견한다. 정신건강에서부터 시작해 체제가 스스로 가능하게 만들었던 과학기술들이 사용된 방식에 이르기까지... 또 체제가 군사적 목적을 위해 변형시키고 낭비하며 탈선시킨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체제는 과학기술을 사용할 수 없으며, 과학기술이 초래한 사회화의 증가로부터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 그 결과 사회는 가장 중요한 것에서 시작하여, 기존의 생산능력과 잠재적 생산능력 모두를 파괴한다.-노동계급까지도.

     

    ·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시도는 없다. 자본주의의 쇠퇴에 있어서 생산 시스템의 주요 모순들은 방향을 바꿀 수도, 달랠 수도 없다. 오직 체제의 유지에 기득권이 없는 계급이 일으킨 전 사회의 방향이 변화하는 것만이, 점점 더 종()에 역행하는 체제를 극복할 수 있다.

     

    · 그것은 마법처럼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어느 순간 그것이 가능하도록, 우리는 자신을 노동자로서 조직해야만 하며, 우리의 진영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방법과 모든 자리에서 그러해야 한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202327

    코뮤니아(Communia)

     

     

    <출처> https://en.communia.blog/deca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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