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문서
  • [코뮤니스트 조직과 계급의식] 2장. 과정으로서 계급의식
  • 조회 수: 2643, 2017-08-14 21:51:07(2017-01-06)
  • 코뮤니스트 조직과 계급의식

    COMMUNIST ORGANISATIONS & CLASS CONSCIOUSNESS





    과정으로서 계급의식


    비록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평의회로 조직되어 코뮤니스트 혁명을 끝까지 수행할 과업을 가진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노동자 속에서 이러한 필요성에 대한 의식이 변하지 않고 균일한 방식으로 존재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프롤레타리아트를 평의회 안에 단일하게 조직하는 것 또한 항구적인 현상이 아니다.


    코뮤니즘에 도달하기 위해서, 평의회로 자신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식에 도달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만 한다. 심지어 투쟁하고, 파업하고, 자본주의 착취에 저항하겠다는 간단한 의지조차도, 노동자계급 안에서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소강이나 낙담 또는 환상의 시기가 투쟁의 물결을 잠식시킬 수 있고, 물러서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부르주아지가 노동자들의 운동을 유혈 진압함으로써 투쟁의 퇴조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혁명에 대한 전망은 좀 더 먼 미래로 밀려나게 된다.


    계급투쟁의 과정,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혁명적 계급으로 형성하는 과정은, 점진적으로, 평탄하지 않게, 엎치락뒤치락 전개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요한 투쟁이나 파업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불타오르는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노동자 투쟁의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위기의 세계화의 압력 아래 점차로 진행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지, 어떻게 파업을 혁명으로 이끌어야 하는지 동질적인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어떤 부문들, 어떤 노동자들은 더욱 단호하며, 더욱 전투적일 것이다. 반면 다른 이들은 계속 망설이며, 그들 스스로 끝까지 투쟁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해답은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소외가 극에 달하도록 내몰린 계급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가 그 이데올로기를 강하게 주입하고, 경쟁을 통해 분리시키는 계급인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자신을 통일되고 의식적인 계급으로 구성할 때 지향하게 되는 목표는, 하나의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산출하는 자본주의의 조건들과 모순된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 경쟁하는 개인으로 원자화되거나 경제적 요구를 위해 처음 투쟁을 시작한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는 변증법적 모순이 존재한다. 그 모순은 자발적이고 의식적이며,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계급 속에서 절정점에 이른다.


    “사회주의 혁명의 근본적인 어려움은 이러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상황에 있다. 한편으로, 혁명은 오직 노동자계급의 절대다수의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서만이 실현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계급의식의 발전은 사회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조건들에 반대하여, 즉 그들의 역사적 혁명적 과업을 생각하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방해하고 끊임없이 파괴하는 조건들에 반대하여 이루어진다.”( ‘당의 본질과 기능에 관하여’, 『국제주의』(Internationalisme), 38권, 1948년, Bulletin d'etude et de discussion, 재판, 6권, 1974년)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투쟁에서 어떤 일치단결에 이르든 간에, 마치 한 개인이 행동하듯이 그렇게 똑같이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목표를 향해서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그렇게 기계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의식을 이데올로기의 고정되고 얼어붙은 원칙이나 이미 준비된 일련의 처방에 따라서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사회적 존재의 물질적 조건과 연결된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과정에서만 그들의 상황에 대해 의식하게 된다. 근본적으로 투쟁의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무기를 연마한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들 자체의 원천은 매우 길고 복잡한 사회적 과정에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페테르부르크 사건에 크게 자극을 받아 1월에 갑작스럽게 일으킨 총궐기는 외적으로는 절대왕정에 대한 혁명전쟁을 선포하는 정치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 최초의 전면적인 직접 행동은 내적으로 훨씬 더 강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전기충격과도 같이 몇백만의 사람들에게서 계급 감정과 계급의식을 처음으로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계급 감정을 자각하면서 몇백만을 헤아리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은 자본주의의 사슬에 묶여 몇십 년 동안 끈기 있게 견뎌 왔던 사회적 경제적 존재 조건이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것을 아주 갑작스럽고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사슬을 흔들고 잡아당기려는 자생적이고 전반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

    지각없는 사람들만이 무정부주의적 계획에 따라 한 번 벌인 ‘장기간’의 총파업으로 절대왕정을 한 방에 파괴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러시아의 절대왕정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분쇄해야 한다. 그러나 절대왕정을 분쇄하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높은 수준의 정치 교육과 계급의식, 그리고 조직화가 필요하다. 이 모든 조건은 소책자나 전단으로는 충족될 수 없고 오직 살아 있는 정치 학교인 투쟁을 통해서만 그리고 투쟁 속에서, 혁명의 연속적인 과정에서만 마련될 수 있다. 더욱이 절대왕정은 단지 적절한 ‘노력’과 ‘인내’ 속에서 원하면 언제든 분쇄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절대왕정이 무너지는 것은 단지 러시아 사회 안의 사회적, 계급적 발전이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처럼 겉으로는 단순하고 순전히 기계적인 것으로 보이는 문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절대왕정의 타도는 오랫동안의 연속적인 사회과정이며, 그 해결책은 사회 지반을 완전히 침식하는 것이다. 최상층은 최하층으로 바뀌고 최하층은 최상층으로 바뀌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질서’는 혼돈으로 바뀌어야 하고 겉보기에 ‘무정부주의적인’ 혼돈은 새로운 질서로 바뀌어야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 『대대적 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


    프롤레타리아 의식은 물질적 경제적 조건의 부패와 자본주의의 공포와 모순의 노출, 사회적 긴장의 악화 때문에 발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옥한 지형이 휴경지로 남겨져 있으면 안 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그들의 정치적인 이해를 일반화시키기에 좋은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행동으로부터 충분한 교훈들을 끌어냄으로써 그 투쟁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일반화하는 것은, 심지어 투쟁의 소강상태에도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한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과거의 경험을 반성해 볼 수 있고, 그들이 경험해 왔던 승리와 패배의 대차대조표를 그려서, 미래를 준비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계급의식의 발전은 주어진 상황의 즉각적인 반영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이론적 과업을 실행하기 전에 다음 투쟁의 물결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 의식의 발전은, 계급의 다수 속에서 동질적이고 지속해서 살아있을 수는 없을지라도, 끊임없는 이론적 성찰, 과거 경험의 비판을 요구한다. 그것은 코뮤니스트 강령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이해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정련을 포함한다.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가 끊임없는 성찰과 그 정치적 성취들의 적극적인 일반화를 수행해 낼 수 있는가?


    한 가지는 명확하다. 모순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러한 일들을 전체 구성원들에게 맡길 수 없다. 사회적 안정기에,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 이데올로기의 압력에 종속되어 있다. 정치적 성취들을 일반화하고 계급의식을 균질화하는 과업은 계급의 가장 결정적이고 가장 전투적인 인자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분파들 덕분에, 즉 그 자체의 이러한 일부(정치적인 관점으로 정의된) 덕분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의식에 있어서 즉각적인 우연성과 부분적인 경험을 극복함으로써 의식에서의 성취들을 집단화할 수 있다. 이러한 분파가 운동의 목적을 더 일찍 이해했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노동자계급은 그 경향을 강화하여, 자신들의 투쟁을 파편화하고 약화하는 고립과 분열을 분쇄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강력하고 의식적인 계급은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이러한 계급의 요소들은 그들의 책무를 만족스럽게 처리하기 위해, 그들 자신을 혁명적인 코뮤니스트 조직으로 재편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의 계급투쟁 속에서 본질적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혁명가들은, 이러한 이질적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진로와 조건들과 전반적인 결과들’ (공산주의자 선언)을 최초로 분명하게 이해한, 계급의 구성인자들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기’ 때문에, 혁명가들은 어쩔 수 없이 계급의 소수를 이룬다. 계급에서 유래하며, 의식화 과정의 표현으로서 혁명가들은 이러한 의식화 과정에 능동적인 요소가 됨으로써만 그렇게 존재할 수 있다. (ICC 강령. ICC의 강령과 선언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은 영어로 각각 출판됨)


    그러므로 혁명적 조직들이 노동자계급 속에서 생겨날 때, 그것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평의회 속에서 조직하게 하는 그것과 같은 토대 위에서 그리고 같은 필요성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래서 혁명가들은 자신들 계급의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산물이다. 자생적인 이유는, 그들의 존재가 투쟁의 산물이고 그들 계급의 실천적인 경험에 의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이유는, 그들은 단순하고 제한적이며 기계적인 경제적 요소들로부터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역사적 필요성으로부터 출현하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승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자계급이 국제적으로 이해하는 것, 그것뿐이다. 이러한 필요 때문에 <국제 노동자 협회>가 탄생했다. 이것은 하나의 종파나 이론의 자식이 아니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자생적인 산물이며, 근대 사회의 자연적이고 억제할 수 없는 경향들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 노동자계급의 열망들과 일반적인 경향들은 그들이 위치한 현실의 조건들로부터 나온다.” (맑스,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에게 보낸 서한』, 1870년, 우리들의 강조)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생적이며 역사적인 운동들이, 진정으로 혁명가들의 존재를 위한 유일한 기반을 이룬다. 혁명가들은 마키아벨리적 목표나 독재의 꿈을 추구함으로써 자신들의 열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들은 계급의 단위조직 그 자체로는 노동자들의 다수에 의해 제기되는 의식적인 자기 조직화의 복잡한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등장한다. 혁명가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또한,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최종목표를 마침내 깨달았을 때마저도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 안에 존재하며 그 모순과 굴욕, 타락한 분위기와 유혹적인 거짓말 속에서 계속 고통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수천 년 노예 상태의 유산과 매일 매일의 몽매주의로부터 자신을 그렇게 간단히 해방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코뮤니스트 사회가 존재할 때까지, 계급의 의식 발전 과정은 비록 일반화되고 점점 더 발전하는 경향을 띨지라도 이질적인 현상들로 남아있을 것이다.


    만약, 계급 전체가 각각의 파업 뒤에, 투쟁에서의 부분적 패배와 승리 이후에 만들어지는 이론적 정치적 성취에 대한 ‘기억’들을 집단적으로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계급의식의 일반화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만약, 프롤레타리아트가, 각각의 전투 이후에, 리용 직공들의 투쟁부터 1917년 러시아 노동자들의 투쟁들을 거쳐, 오늘날 1982년의 노동자들의 투쟁에 이르는 역사적 길을 다시 걸어야만 한다면, 어떻게 계급의식의 동질화가 가능하겠는가?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투쟁의 교훈들을 어디에서 얻을 것인가? 이러한 교훈들이 뜬구름 속에서나 집단적인 무의식 속에서 발견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만약 이러한 교훈들이 존재한다면(그리고 그것들이 혁명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 중의 하나라면), 그것들은 물질적 인간의 형식으로 존재해야 한다. 코뮤니스트 의식은 신비스런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매우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코뮤니스트 의식과 행동은 혁명 강령과 혁명 조직 없이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필요성은 코뮤니즘과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본질에 의해 부과된다. 만약 코뮤니스트 혁명과 사회의 변혁을 이뤄내려 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역사적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방법에 있어서 질적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다.


    코뮤니스트 조직과 계급의식』은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의 팸플릿 『COMMUNIST ORGANISATIONS & CLASS CONSCIOUSNESS』를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 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pamphlets/classconc/2_cconc/or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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