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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민테른 창설 100주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1
  • [코민테른 창설 100주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1. 코민테른과 암스테르담 사무국

     

    1919년 3월 코민테른 창설에 따라 유럽 코뮤니스트 운동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판네쿡과 네덜란드, 브레멘 좌파(독일)는 코민테른의 가장 열성적 옹호자들이었지만, 러시아에서의 볼셰비키 승리로 코민테른은 러시아의 주도 아래 결성되었다. 새로운 세계혁명운동의 성격에 대한 판네쿡과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1917 레닌 저작 중) 네덜란드와 브레멘 좌파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다.

     

    코민테른의 초기 몇 달 동안, 러시아와 서유럽 간 의사소통의 혼란으로 서유럽의 의미 있는 참가는 배제되었다. 서유럽을 참가시키는 문제는 처음 실제적인 수단을 통해 접근했는데, 즉 베를린에 서유럽 서기국을, 암스테르담에 서유럽 사무국에 두도록 결정했다. 암스테르담 사무국을 조직하기 위해 레닌은 네덜란드 맑스주의자 럿거스(S. J. Rutgers)를 선택했다. 엔지니어였던 그는 1915년 미국으로 건너가 판네쿡의 사상을 미국 사회주의 운동에 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는 전후 모스크바로 와서, 코민테른 창설 시 홀란트(네덜란드) 코뮤니스트당(CHP)을 대표했다. 럿거스(Rutgers)는 레닌으로부터 세 가지를 위임받았는데. 즉, ① 서유럽/미국의 다양한 코뮤니스트 그룹과의 관계를 구축할 것, ② 코뮤니스트 선전센터를 세울 것, ③ 국제대회를 조직할 것이었다. 그리고 코민테른 집행부는 럿거스(Rutgers)에게 사무국을 판네쿡, 호르터, 홀스트(Roland Holst), 윈쿱(Wijnkoop), 라베스테즌(van Ravesteijn)으로 충원할 것을 지시했다.

     

    암스테르담 사무국은 1920년 1월 국제대회를 암스테르담에서 조직하는 것을 직접적인 목표로 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국제대회는 많은 사람에 의해 코민테른 대회와 동급으로도 비추어졌다. 1920년 2월 개최된 국제대회는 사무국 활동의 중대 사건이었으며, 사실상 최초로 서유럽 인터내셔널로 복무하고자 했다. 국제대회에서는 네덜란드 대표들이 지배적이었지만, 최소한 12개국에서 참가하여 코민테른 창설 시보다 더 많은 대표가 참여했다.

     

    국제대회는 제대로 조직되지 못했고, 경찰에 일찍 해산되었지만, 그런데도 서유럽 코뮤니즘 개념의 특수성을 최초로 확정하였던 의미가 있었다. 국제대회에서 채택된 선언은 의회주의, 조합주의에 대해 명시적으로 비판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새로운 조직화 원칙으로 노동자 평의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특히 중요했던 것은 판네쿡이 초안한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였으며, 그것은 공개적으로 코민테른 정책에 도전하는 성격이었다. 판네쿡은 - 이때, 그는 거의 즉각적으로 사무국의 “정신적 리더”로 등장 - 노조운동에 대한 테제에서도 동일하게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서구에서 노조는 단지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에게 반하여 배치된, 자본주의적 권력 시스템의 기구”라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노동자 운동은 “가능한 모든 힘”을 가지고 노조 관료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 이는 기존 노조 내에 “혁명적 반대파”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실제적 과제는 미국의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독일의 “노동자연합(workers' unions)”과 같이 “새로운 정신에 추동된 새로운 조직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의회주의, 노조운동에 대한 암스테르담 사무국의 반감, 그리고 (코민테른에 소속된) 각 당의 자율성에 대한 강조는 코민테른 지도력과 네덜란드 좌파 사이의 전망에서 주된 차이를 보여주었던 첫 공개적인 징후였다. 볼셰비키와 네덜란드 좌파 사이의 심각한 차이점은 침머발트 운동 시기까지 올라가지만, 양 당파의 차이는 혁명적 분위기 속에 얼버무려져 왔었다. 이후 몇 달 동안 판네쿡, 호르터, 홀스트 등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Communist International)」지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글들을 집필했다. 럿거스(Rutgers)가 암스테르담으로 떠날 때, 레닌은 판네쿡에게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을 위한 상근 이론가, 선전가로 일할 것을 럿거스(Rutgers)에게 주문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처음에 볼셰비키와 코민테른 모두 의회주의 전술을 거부한다고 보고 그것을 당연시했다. 이 같은 가정은 번역된 레닌의 몇몇 저작에 기인한 것이었다. (특히, 판네쿡에 대한 찬사를 담은 「국가와 혁명」, 코민테른 초기 문건 등). 하지만 볼셰비키 이론과 실천은, 혁명가들이 대중을 각성시키기 위해, 부르주아 정당을 공격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국가 자체를 허물기 위해 의회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오랜 기간 강조해 왔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그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CHP 내 분파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무국의 모든 구성원은 사무국을 서유럽의 주 혁명센터로 만들려는 희망 아래 단결했다. 사무국의 일상적 권력을 쥐고 있었던 윈쿱(Wijnkoop), 라베스테즌(van Ravesteijn) 등은 “서구 코민테른”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 따라, 그 같은 단결 분위기에 동참했다. 사무국은 그 에너지의 대부분을 유럽 전역에서 혁명적인 좌파 경향을 강고히 하려는 시도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네덜란드 좌파 활동가들은 프랑스, 잉글랜드, 스위스, 벨기에 등지의 좌파세력과 긴밀한 연대를 구축했지만 가장 긴밀한 관계는 판네쿡과 유대를 맺고 있던 ‘독일 좌익 반대파’와의 형성이었다. 독일 좌익 반대파에 대한 지원은 의회주의, 노조운동에 대한 사무국 테제에서 처음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판네쿡은 사무국 공식 출판물에서 반대파의 사례를 다루었다. 이 같은 일들로 사무국은 서유럽 서기국으로부터 지속적인 적대감을 사게 되었다.

     

    암스테르담 사무국의 공격적인 전투성, 독립적 전망은 - 자체 하위 사무국으로 - 전미(全美) 임시 사무국을 조직화하려고 했을 때, 가장 명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전미 사무국 지부는 미국 코뮤니스트 운동 내 분파적 대립으로 혼란을 거듭하여,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조직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더욱 대담한 행보는 사무국이 베를린 서기국을 격하시켰던 것인데 즉, 암스테르담 사무국은 베를린 서기국을 사무국의 한 부문으로 만들고 그 의무를 재할당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사무국은 모스크바에서 창설, 조직한 지부를 대담하게도 일격에 복속시키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보여주는 바는, 암스테르담 사무국이 자신을 - 중앙권위(코민테른)의 도구가 아니라 - 미래 유럽 혁명을 위한 주(主) 혁명 센터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무국의 독립적인 혁명적 전망은 많은 부분 서유럽에 특수한 코뮤니즘 개념화의 반영이었지만, 또한 그것은 암스테르담과 모스크바 사이의 소통 부재에 의해 크게 조장된 것이기도 했다. 사무국이 1920년 1월 활동을 시작한 이래 럿거스(Rutgers)가 정기적 소통 수단을 갖추게 되는 4월 말까지, 사무국-모스크바 간에는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없었다. 하지만, 소통수단을 갖추게 된 시점에 사무국의 정책과 활동은 모스크바에 잘 알려지게 되었고, 코민테른 지도부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곤혹스러운 것으로 간주했다. 분열 점은 사무국이 새롭게 형성된 독일 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D)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코민테른 지도부의 반응은 신속했고 단호했다. 4월 30일 모스크바 방송은 사무국을 폐쇄하고 그 기능을 베를린 서기국으로 이관한다고 발표한다. 그 결정은 협의와 호소의 기회 없이 내려진 것이었다. 이 조치로 서구 코뮤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코뮤니스트 센터를 만들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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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에서의 코뮤니스트좌파(KAPD) 대표자>


    2. 레닌 대 판네쿡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vs 「세계혁명과 코뮤니스트 전술」

     

    레닌의 「좌익 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가 출간되기 전까지, 코뮤니스트좌파(좌익공산주의자)는 코민테른에 배척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서구에서 레닌주의 성격 및 그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판네쿡과 그 밖의 사람들에게 레닌이라는 이름은 세계혁명, 비타협적 계급투쟁, 전투적 반(反)의회주의와 연결되어 있었다. 판네쿡은 (코민테른의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반대를 예견했다 할지라도) 코뮤니스트좌파가 세계혁명의 옹호자인 레닌과 확고한 제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계속 확신했다. 판네쿡은 코민테른 전술에 영향을 미치려는 희망으로 「세계혁명과 코뮤니스트 전술」로 제목을 단 소책자를 작성했다. 그 문건은 즉각 코뮤니스트좌파의 기본 텍스트가 되었다.

     

    판네쿡은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에 걸맞은 혁명개념을 마련하기 위해 광범위한 이론적, 경제적, 사회적, 역사적인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디트젠(Dietsgen)적인 출발점에 서서 혁명을 어떠한 논리적 일관성도 거부하는 상호작용들의 복합적 과정으로 인식했다. 판네쿡은 혁명의 발전과정에서 결정적이고 선차적인 것은 혁명적인 자기-활동으로부터 나오는 정화(淨化) 행동이라고 보았다.

     

    판네쿡은 혁명적 실천의 동유럽적 형태와 서유럽적 형태를 구분했다. 동유럽에서 전술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집합적 지향의 농촌사회와 문화의 지배이며, 서유럽 노동자들과 달리 러시아, 아시아의 대중은 부르주아 문화, 전통의 (노동계급에 대한) 무력화 효과를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양 사회의 내적 성격은 완전히 다르며, 마을 공동체주의의 오랜 전통 때문에 농민은 원시적이고, 열린 태도로 코뮤니스트와 연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서구에서는 오랜 부르주아 문명화가 대중의 사고와 감성에 철저히 침투했다는 것이다. 독일 혁명에서 그것은 특히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본 판네쿡은 서유럽에서 주된 전술적 문제는 혁명적 투쟁을 통해 프롤레타리아의 정신적 미성숙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공리처럼 여겼다. 그는 서유럽의 낮은 수준의 노동계급 의식, 늦은 혁명적 발전에 따라 두 가지 갈등하는 전술적 경향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즉, 급진적 경향과 기회주의 경향. “코뮤니스트적 기회주의”로 이름 붙인 경향의 주된 구성요소를 살펴보기 위해 판네쿡은 방법론적, 사회학적 요인에 초점을 두었다. 프롤레타리아 의식에 대한 판네쿡의 강조는 그가 사회민주주의의 대중정당, 러시아 볼셰비즘의 엘리트주의적 전위 양자 모두를 거부하게 했다.

     

    판네쿡은 정당 조직화의 (코민테른이 옹호하는) 전위주의적 모델이 어떤 점에서 혁명적 발전의 주요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통일된 노동계급의 적극적 이해와 개입이 없는 권력획득 시도는 혁명에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혁명에 대한 그 같은 접근은 사회주의의 바로 핵심(대중 자신이 적극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조직화)을 부정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판네쿡은 서유럽의 전술적 선택을 개관하면서, 코뮤니스트좌파와 생디칼리즘 간의 차이를 강조하는 주력 했는데, 양자의 주된 분기점은 사회의 구조, 상부구조에 대한 태도에 있다는 것이었다. 생디칼리즘의 근본적인 목표는 노조 관료와 기존 국가기구의 급진적 분파에 기반을 둔 정부, 코뮤니스트좌파와는 달리 생디칼리스트는 사회의 지적, 문화적 영역을 부르주아에게 남겨주는 것에도 만족하고, 생디칼주의적 정부는 자본주의 질서의 물질적, 정신적 요인들을 분쇄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이후 자본가 재그룹화의 가능성을 남긴다고 보았다.

     

    판네쿡과 코민테른의 러시아 지도부 간의 차이는 깊고 실질적인 이데올로기적 분기를 말할 수 있지만, 그는 러시아 혁명이 갖는 세계변혁의 중요성을 믿었다.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 대중의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를 발화시켰고, 그들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유지 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판네쿡은 러시아 혁명이 유럽 혁명과 서구 자본에 대한 아시아의 대규모 반란을 가져오는 촉매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같은 평가는 러시아 혁명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을 덜 강조하면서, 민족해방운동으로서 그 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판네쿡이 이 같은 주장을 발전시키고 있을 때, 레닌은 코민테른 2차 대회를 준비하면서 좌익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자신의 전략적 분석을 발전시켰다. (곧, 「좌익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 “레닌 저작 중 아마도 가장 강력한 것”으로 묘사되듯, 그 저작은 거의 즉각적으로 코뮤니스트 전략, 전술의 정초를 이루었다. 레닌은 서유럽에서 늦은 혁명 진척에 따라 세계 코뮤니스트 운동을 향한 단축 시기가 필요하다고 가정했다. 장기적 싸움이라는 새로운 조건에서, 코뮤니스트는 가장 반동적 제도라 할지라도 대중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들어가서 노동자들에게 계급의식을 주입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조와 의회 속으로”는 좌익주의의 “유아적 무질서”에 대한 레닌의 처방이었다. 노조와 의회에서 활동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오직 후진 노동자를 그들의 반동적 지도자의 영향 아래 남겨두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레닌은 대중 조직에 침투하는 예외적인 수단을 요구한다. 레닌은 논쟁 전반에 걸쳐 반복해서 볼셰비키의 경험을 혁명의 보편적 모델로 일반화하고, 특히 절대적 집중화와 강력한 규율이 부르주아지를 이길 수 있는 근본적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레닌은 신랄한 언어를 동원하여 네덜란드와 독일 좌파의 전술적 책략의 부재를 비난했다. 특히 판네쿡의 이론적 작업에 대해서는 “특별히 견실한, 그리고 특별히 우둔한” 것으로 지적했다. 레닌은 당 조직화의 전위모델을 좌파가 부정하는 것은 부르주아지의 이해 앞에 프롤레타리아트를 완전히 무장해제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독일 입장은 불법이 불필요했던 국가에서 태어난 “불행”으로부터 발생한 것으로 말한 뒤, 그들은 “대중들의 정당이 아닌 써클, 즉, 지식인주의의 가장 나쁜 측면을 닮은 지식인, 소수 노동자의 그룹”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으로 결론 내렸다.

     

    판네쿡은 「세계혁명과 코뮤니스트 전술」에 실은 짧은 후기를 통해 레닌의 주장과 비난에 대응했다. 그는 레닌 정식은 독창성과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것이 레닌이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과제는 레닌의 주장에 대해 또 다른 주장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레닌 정책이 등장하게 되었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전통적인 의회주의, 노조운동 전술에 대한 레닌의 방어는 민족국가로서 소련의 역할, 그리고 제3 인터내셔널의 혁명적 사명 간의 모순에 그 기원이 있다는 것이다. 판네쿡은 그 모순을 분석하면서 경제 재개발에 대한 소련의 급박한 필요성을 지적했다. 판네쿡은 소련의 정치적 요구가 서유럽에서 코뮤니스트 전술을 결정하는 데 핵심 요소로 되고, 코민테른은 서유럽 정치에 개입하기 위한 소련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소련이 잠재적으로 “혁명에 대한 반동적 방해물”이 되고, 반혁명의 승리를 가져올 힘들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표현했다. 판네쿡은 이처럼 러시아 혁명의 정체성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한 첫 번째 코뮤니스트 이론가로 등장했다.


    후기

     

     모스크바의 상임위원회와 지도자들은 코민테른 2차 대회를 지배한 경향의 결과로 완전히 기회주의로 돌아섰다. 이러한 정책은 독일에서 처음 나타났는데 이는 라덱이 이념적, 물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의회주의 전술을 주창하고 독일 코뮤니스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였고 결국 독일 코뮤니스트 운동을 분열시키고 약화시켰다.

     

    레닌은 영국 코뮤니스트에게 의회선거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제2 인터내셔널의 성원과 반동적 노조지도자가 포함된 노동당에 참가할 것을 권고했다. 레닌 팸플릿의 중요성은 내용에 있지 않고 저자에 있다. 왜냐하면 논쟁이 독창적이지 않고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이미 사용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은 그것을 시작한 것이 레닌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오류는 서유럽의 조건, 당, 조직 그리고 의회실천을 러시아와 동일시했다는 점이며 그것이 구체적 정책의 산물로 중대한 때에 나타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기본은 소비에트연방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고 콜챡(Kolchak)과 데니킨(Denikin)의 반동적 폭동이 러시아 철강산업의 기초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기계, 기차, 공구가 경제재건설을 위해 필요했으며 자본주의 국가의 파괴되지 않은 산업이 이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세계 국가와 평화로운 교역이 필요했고 특히 협상국(영국)과 그러했다. 반대로 그들은 자본주의 붕괴를 막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원자재와 식료품이 필요했다.

     

    모든 나라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준비하는 코뮤니스트당의 연합으로서 코민테른은 러시아 정부의 정책에 의해 공식적으로 묶여있지 않아야 하고, 러시아와 독립적으로 자신의 과업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분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당면한 경제적 욕구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더 깊은 경제적 적대감이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미래의 혁명을 준비하는 급진적 코뮤니스트당이 아니라 러시아 편을 들고 정부에 의무를 다하는 조직화된 프롤레타리아트 세력이었다. 또한 모스크바는 그 영향력이 결정적인 대규모 노동조직의 전통적 관점과 방법에서 크게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서유럽의 코뮤니스트 전술을 강조해야만 했다. 그들은 KAPD(독일 코뮤니스트노동자당)의 급진적 전술을 바라지 않았고 독립파(카우츠키)와 KPD(독일 코뮤니스트당), 그리고 노동조합에 의한 정부를 필요로 했다.

     

    구별 점은,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를 파괴하고 자본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외적 혁명과, 대중을 내부적으로 혁명화시키고 그 안에서 노동계급이 그 굴레로부터 해방되는 코뮤니즘 가설을 굳건히 손에 움켜쥐는 코뮤니스트 혁명 사이에 있다. 진정한 투쟁은 지도자 영향을 억제하고 지도자의 힘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기회주의는 지도자들과 동맹을 맺고 새로운 헤게모니를 갖게 된다. 코민테른은 옛날 조직과 그 지도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그 헤게모니를 강화하여 혁명의 진전을 가로막는 “코뮤니스트 혁명”의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러시아와 비슷한 정치 체계가 소비에트 체제에 기반을 둔 노동자 관료주의에 의해 통제되면서 다른 유럽국가에 존재한다면 세계 제국주의의 권력은 유럽에서 깨어지지만, 보존될 것이다. 러시아의 정책에 반대하는 비판적 문제 제기는 진정한 코뮤니즘 관점에서 비롯된다. 러시아가 서유럽 노동자관료주의와 연대하고, 대중에 대한 적대와 부르주아 세계에 대한 적응을 한다면 러시아는 코뮤니즘의 길로 가는 순간을 없어지게 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노동자 정부”는 코뮤니스트 재건의 힘을 해방시킬 수 없으며, 10월 혁명 이후의 러시아와 달리,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 대중이 농민과 함께 막강한 힘을 형성하기 때문에 코뮤니스트 재건의 실패는 반동을 쉽게 불러일으킬 것이고 프롤레타리아 대중은 그 체제를 폐절시키는 힘을 새롭게 키워야 할 것이다. (「세계혁명과 코뮤니스트 전술」 후기. 안톤 판네쿡. 1920)

     

     

    3. 제3 인터내셔널 내부의 기회주의 : 호르터

     

    레닌에 답변하는 주된 과업은 호르터(Gorter)에게 남겨졌다. (그의 글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호르터는 네덜란드 맑스주의자 중 레닌과 가장 긴밀한 관계에 있었고, 논쟁에 끼어들 것 같지 않았던 인물이다. (호르터는 「국가와 혁명」 등 레닌 저작을 번역했으며, 그의 책 「세계혁명」을 레닌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판네쿡과 마찬가지로 호르터도 서유럽, 동유럽 코뮤니스트의 차이점을 축으로 주장 전개했다. (“당신의 전술은 러시아에서 뛰어난 것이었고, 그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승리했다. 그러나 그것이 서유럽엔 무엇을 입증했는가?”). 그는 두 지역의 농업 부분의 차별성을 추적한다. 동유럽 농민은 공동체적인 지향을 하지만, 서유럽 농민은 노동자를 계급의 적으로 인식하는 개별화된 소부르주아 기업인이라는 것이다. 서구 노동자들은 참호에 둘러싸인 부르주아를 홀로 맞서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호르터는 서유럽 전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3 인터내셔널은 제2 인터내셔널을 특징 지웠던 같은 종류의 기회주의를 범하고 있다고 격하게 주장했다. 의회와 노조 참여를 통해 계급의식을 주입해야 한다는 레닌의 강조에 반대하여, 호르터는 노동자평의회, 공장조직을 기반으로 하고 자본주의 국가와의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 의식을 형성하는 코뮤니스트좌파 전술을 거듭 주장했다. 호르터의 분석은 판네쿡과 유사하지만, 다른 몇 가지 점도 존재한다. 판네쿡은 서유럽 혁명의 늦은 진척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 때문이라고 보았지만, 호르터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요 걸림돌은 자본주의의 거대한 물리적 힘이라고 보았다. 이 같은 관점에 따라 호르터는 (레닌, 코민테른 주장과는 다른 것이지만) 확고한 맑스주의 원칙, 당 집권화, “철의 규율”의 중요성 강조했다.



    제3 인터내셔널 내부의 기회주의


     우리 대열 내에 기회주의의 문제는 매우 큰 무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 이야기해야 합니다.

     

    동지! 제3 인터내셔널의 등장으로 우리 대열 내에 기회주의가 청산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국가의 모든 코뮤니스트당 내부에서 기회주의를 목격합니다. 제2 인터내셔널을 살해했던 것이 제3 인터내셔널에서 남지 있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며, 모든 발전의 법칙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와 달리 기회주의와 혁명적 맑스주의 사이의 투쟁이 제3 인터내셔널에서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제2 인터내셔널에서 아나키즘과 사회민주주의 사이의 투쟁이 벌어진 것과 똑같이 말입니다.

     

    다시 코뮤니스트들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의회로 들어갈 것입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은 선거에서의 투표를 위해 옹호될 것입니다. 코뮤니즘을 위해 건설하는 당 대신, 관성적으로 정당을 조직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애국주의자 및 부르주아 분자들과의 의회주의적 타협이 다시금 등장할 것이며, 그로 인해 결국 서유럽에서 모든 혁명은 점진적인 과정이 될 것입니다. 연설의 자유는 억압당할 것이고, 훌륭한 코뮤니스트들은 모두 추방당하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제2 인터내셔널에서 발생했던 모든 관행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좌익은 여기에 반대해야 합니다. 제2 인터내셔널에서 그랬던 것처럼 거기 있으면서 그런 투쟁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비록 좌익에게 세부적으로 오류가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더라도 모든 맑스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은 좌익을 지지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기회주의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 대열 외부에서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신과 힘을 황폐화시키는 기회주의가 다시 섞여 들어오는 것은 좌익이 너무 급진적으로 되는 것보다 수천 배 더 나쁠 것입니다.

     

    비록 때때로 지나칠 경우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좌익은 항상 혁명적입니다. 좌익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전술을 변경할 것입니다. 우익 기회주의자들은 점점 더 기회주의적이 될 것이며, 더 깊은 늪에 빠져들게 될 것이고, 더욱 큰 범위에서 노동자를 타락시킬 것입니다. 25년의 투쟁을 통해 우리가 배웠던 것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기회주의는 노동운동에 있어 역병이자 혁명의 죽음입니다. 기회주의는 모든 해악을 가져왔습니다. 헝가리와 독일에서 개량주의, 전쟁, 그리고 혁명의 패배와 죽음. 기회주의는 재앙의 원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3 인터내셔널 내부에 존재합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동지. 자기 자신과 집행위원회 내부를 바라보십시오! 유럽의 모든 나라를 들여다보십시오.

     

    미약한 비판


    이제 코뮤니스트당이 된, 영국 사회당의 신문을 읽어보십시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이 신문을 읽어 보십시오. 노동조합과 노동당, 그리고 의원들에 대한 미약한 비판을 읽어보신 다음 그것을 좌익의 신문과 비교해보십시오. 양자를 비교하면 기회주의가 거대한 규모로 제3 인터내셔널에 다가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반혁명적 노동자의 지지를 통해) 의회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제2 인터내셔널의 길을 따라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머지않아 옆에 무수한 다른 중도주의 정당을 거느리고 USP(독일 독립사민당)가 제3 인터내셔널에 들어올 것이라는 사실 또한 상기하십시오! 이런 정당들에게 카우츠키를 쫓아내게 한다고 해서 수만 무리의 다른 기회주의자들이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배제의 기준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기회주의자들의 엄청난 물결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동지의 소책자(「좌익공산주의 : 유아적 무질서」)가 나온 이후에 특히 더 그렇습니다.

     

    한때 유럽의 볼셰비키라고 불리던 네덜란드 코뮤니스트당을 보십시오. 상황을 고려해서 올바르게 보십시오.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 세력에 의해 벌써 얼마나 완벽하게 타락해버렸는가 그에 대한 소책자를 읽어보십시오. 전쟁 동안, 전쟁이 끝난 후, 심지어 지금까지도 협상국들(프랑스, 영국, 러시아)에 자신을 갖다 바치고 있습니다. 한때 뛰어났던 이 당은 모호함과 기만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동지, 혁명이 시작된 땅인 독일을 보십시오. 거기에도 기회주의는 살아있고 번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지가 3월의 시기 동안 KPD(독일 코뮤니스트당)의 태도를 두둔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동지의 소책자를 통해서 동지가 실제 사태의 전개 양상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지는 에베르트, 샤이데만, 힐퍼딩, 그리고 크리스피엔을 충실하게 반대한 독일 코뮤니스트당 중앙위원회의 태도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동지가 그 소책자를 쓰고 있을 때, 에베르트는 독일 프롤레타리아트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조직했고, 총파업은 여전히 독일 전역을 뒤덮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코뮤니스트 대중의 압도적 다수는 비록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아마 아직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더 높은 힘으로 혁명을 밀어붙이고자 분투했다는 사실을 동지는 분명 몰랐습니다. 파업과 무장봉기로 대중이 혁명을 더 진전된 단계로 이끄는 동안 (총파업과, 루르 지방에서 일어난 봉기만큼 희망적이고 거대한 것은 지금껏 없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의회주의적 타협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루르에서 일어난 혁명에 반대하여 에베르트를 지지했습니다. 혁명에서 의회주의를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짓인지를 입증하는 예가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동지, 이는 의회주의적 기회주의이며, 우리가 반대하고 동지가 조장하려 하는 사회애국주의자들과 독립사민당원들과의 타협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지, 독일의 산업위원회들은 이미 어떻게 되었습니까? 동지와 제3 인터내셔널 집행위원회는 코뮤니스트들에게 노동조합에서 지도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경향과 연합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반대의 결과였습니다. 산업중앙위원회는 거의 노동조합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노동조합은 그것이 손닿는 곳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목 졸라 죽이는 문어 같은 존재입니다.

     

    동지, 동지가 독일과 서유럽에서 진행되어오던 모든 상황을 판단하고 조사한다면 우리 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저는 완전히 확신합니다. 똑같이 제3 인터내셔널에서 동지의 경험이 동지를 우리의 전술로 바꾸게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기회주의가 독일에서 이렇게 진행됐다면 프랑스와 영국은 어떻겠습니까!

     

    아시다시피, 동지, 우리는 그런 지도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지도자와 대중이 결합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철의 규율, 군대적인 복종, 순종과 비굴함을 우리는 원하지 않습니다.

     

    집행위원회, 특히 라덱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집행위원회는 KAPD(독일 코뮤니스트 노동자당) 스스로 볼프하임과 라우펜베르크를 처리하게 하는 대신, 무례하게도 그들을 제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집행위원회는 KAPD를 윽박지르고, USP(독일 독립사민당)와 같은 중도주의 당에 영합했습니다. 그러나 집행위는 자신의 제안 때문에 부분적으로 루르 지역에서 코뮤니스트의 살해에 책임이 있는 이탈리아 당에게 중앙위원회를 제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집행위는 전쟁 시기 연합국에게 네덜란드 선박을 제공한 빙코프와 반 라베스타인을 네덜란드 당에서 제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동지들의 제명을 바라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저는 그들이 좋은 동지가 되도록 붙잡았습니다. 그들이 잘못된 것은 오직 서유럽 혁명의 시작과 발전이 지독하게 험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여기 우리 모두는 아직 큰 실수를 많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인터내셔널에서 지금 시기 축출은 별다른 효용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단지, 이미 우리 대열 내에서 기회주의가 얼마나 사납게 날뛰고 있는지 또 다른 예를 통해서 증명하려고 합니다. 모스크바의 중앙 위원회는 유독 KAPD에 대해서만 부당함을 저지르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기회주의적 세계전술로 말미암아 진정한 혁명가들이 아니라 기회주의적인 독립사민당 따위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위원회는 KAPD가 볼프하임과 라우펜베르크의 전술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장 비참한 기회주의적 이유로 인해 KAPD를 반대하는데 그들의 전술을 고의적으로 악용해 왔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노동조합이나 정당 주위에 대중을 모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 대중들이 코뮤니스트냐 아니냐는 아무 상관없이 말입니다.

     

    제3 인터내셔널이 보여준 두 개의 다른 행동은 그것이 표류하고 있음을 명확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서유럽에서 혁명적 맑스주의자와 이론가의 유일한 그룹이었으며 결코 동요한 적이 없던 암스테르담 사무국을 제명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인데, 조직 전체로서, 시초부터, 혁명이 마땅히 나가야 할 방향으로 그것을 지도해 온 서유럽 유일의 당인 KAPD에 대한 처우 문제입니다. 혁명을 항상 배신했던 중도주의 당과 독립사민당, 그리고 프랑스와 영국 당의 중앙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해 끌어들이려 하지만, 진정한 혁명가인 KAPD는 적으로 대접받았습니다. 이것은 나쁜 징조입니다, 동지.

     

    한마디로, 제2 인터내셔널은 우리 사이에 여전히 살아있거나,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기회주의는 패망으로 이끕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내부에 기회주의가 매우 강력하고, 제가 지금껏 추측해온 것보다도 훨씬 완강하기 때문에, 좌익은 그곳에 있어야만 합니다. 혹시 좌익의 다른 훌륭한 존재 이유가 없다 해도, 기회주의에 대해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반대파로서라도 그것은 존재해야만 할 것입니다.

     

    아아, 동지, 동지가 제3 인터내셔널에서 좌익의 전술을 따르기만 했었더라면. 그 전술이야말로 “순수한” 러시아 볼셰비키의 전술이 서유럽(그리고 북아메리카)의 조건에 적용된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동지들이 제3 인터내셔널의 규정과 규칙으로 산업조직과 노동자 조직 속에 (필요가 된다면 현장을 기초로 한 산별노조도 포함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경제조직을, 그리고 정당 속에 의회주의를 거부하는 정치조직을 제안하고 통과시켰다면!

     

    그럼 동지는 첫째로 모든 나라에서 완전히 확고한 중핵, 외부의 압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나라에서, 자신의 모범을 통해 진정으로 혁명을 수행하는 당을, 점진적으로 자기 주위에 대중을 끌어모으는 당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다음에 동지는 경제조직을 통해 (자유로운 만큼 생디칼리즘적인) 반혁명적인 노동조합을 절멸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한 칼에 기회주의자들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통로를 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회주의자들은 반혁명적인 곳에서만 번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라면, 마찬가지로 - 이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인데 - 동지는 지금 단계에서 가능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노동자들을 자주적인 투사로 교육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레닌 동지와 부하린 그리고 라덱 동지가, 동지들의 권위와 경험, 동지들의 힘과 천재성으로 그렇게 하고, 그 전술을 택했더라면, 동지들이 아직까지 우리와 우리의 전술에 들러붙어 있는 오류를 근절시키도록 도와주었다면, 우리는 내적으로 완전히 견고하고, 외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제3 인터내셔널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모범의 힘으로 주위에 전체 프롤레타리아트를 점진적으로 결집시키고, 코뮤니즘을 건설할 그런 인터내셔널을 말입니다.

     

    패배 없는 전술은 없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술은 패배를 최소화했을 것이고, 패배하더라도 매우 쉽게 회복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가장 빠른 길을 갔을 것이고,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승리를 쟁취했을 것입니다. 동지들의 전술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되풀이되는 패배로 인도할 뿐입니다.

     

    하지만 동지들이 계급의식적이고 확고부동한 투사들 대신 계급의식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대중들을 원했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제3 인터내셔널 내부의 기회주의. 헤르만 호르터. 1920)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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