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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9호] 레닌의 4월 테제 對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 인민전선 Ⅳ
  • 레닌의 4월 테제 對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 인민전선

    양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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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했다.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소비에트의 단독 권력이 수립됐다. “러시아 인민에게는 아직 코뮌을 도입할 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흔히 듣는 반론을 거슬러 코뮌이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주의의 도입은 아니다. 구 볼셰비키를 비롯한 많은 반대자들이 그렇게 혐의를 씌었지만, 코뮌은 정치적 틀거리,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이룩할 정치적 형태일 뿐, 그 자체로 아직 사회주의는 아니다. 코뮌을 도입하는 데는, 즉 전 국가권력을 소비에트의 수중으로 옮기는 데는 사회주의혁명가당, 치헤이제, 체레텔리, 스테클로프 등의 전술과 정책이 완전히 틀렸고 유해하다는 것을 모든 (또는 대다수의) 소비에트의 대의원 다수자가 명확히 인식하도록 참을성 있게 설명하고 조국방위주의 유행병과의 투쟁을 거치는 것으로 가능했지만,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여전히 소농이 주민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러시아에서 직접적으로 사회주의의 도입을 목표로 할 마르크스주의자는 없다.

     

    코뮌, 즉 노동자 · 농민 대표 소비에트는 경제적 현실 내에서도, 인민의 압도적 다수의 의식 내에서도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개혁은 그 어떤 것도 도입하지 않고, “도입할 의도도 없고, 또 도입해서도 안 된다.”

    소농의 나라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은 주민의 압도적 다수가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를 인식하지 못하는 한에서는 결코 사회주의의 도입을 목표로 할 수 없다.”(<페트로그라드 시 협의회>)

     

    코뮌으로의 이행요구가 사회주의의 도입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는 혐의에 맞서 레닌은 그렇지 않음을 누차 설명하고 논박해야 했다. 전쟁에서 벗어나고 토지를 농민의 손에 쥐어주고 식량 부족과 기근을 해결하고 임박한 붕괴에 맞서 싸우고 등등 실생활이 일정에 올려놓고 있는 긴박하고 사활적인 문제가 코뮌으로의 이행/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지, 사회주의의 도입을 목표로 해서가 아니다. 소농의 나라 러시아에서 직접적으로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할수 없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볼셰비키 모두가 인정해온 바다. 레닌도, 구 볼셰비키도 모두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직접적으로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없다고 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으로 권력을 옮기는 것도 할 수 없는가? ‘사회주의의 도입이라는 문제와 관계없이, “실생활이 일정에 올려놓고 있는 긴박하고 사활적인 문제들이 그것을 강제하고 모든 정세 조건이 그것을 지시하고 있는데 말이다. 더구나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미 세계적 규모로의 자본 전선돌파직전까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 끌어당겼는데 말이다.

     

    지금 세계의 교전국 중에 러시아 정도의 자유가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으며, 노동자 · 병사 · 농민 등 대표 소비에트와 같은 혁명적 대중조직이 있는 나라도 하나도 없다는 것, 따라서 인민의 진정한 다수자, 즉 노동자와 농민의 수중으로 전 국가권력의 이전을 이와 같이 용이하게, 이와 같이 평화적으로 이룩할 수 있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전쟁을 끝장내는 것은 권력을 다른 계급에게로 이전시키는 것에 의해 비로소 가능한 것인데, 러시아는 이 지점을 향해 어느 나라보다도 가까이 가 있다.”(<페트로그라드 시 협의회>)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의 수중으로 권력을 이전하는 것 (즉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직접적으로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것을 조금도 혼동할 일 없이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 위 인용문에서 레닌이 러시아가 이 지점을 향해 어느 나라보다도 가까이 가 있다고 한 이 지점은 권력을 노동자계급에게로 이전시키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구 볼셰비키는 왜 권력 장악을 한사코 직접적으로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것으로 간주하고자 하는가? 여기에 깔려 있는 가정은 이렇다. 설사 일시적으로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소농의 나라 러시아에서 그것이 유지될 수 있겠느냐, 결국은 농민을 건너뛰어 직접적으로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것은 모험주의적인 파리 코뮌처럼 패배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이것이 권력 장악 반대에 깔려 있는 예측 시나리오다. 구 볼셰비키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시나리오에 대해 확고한 만큼이나 이러한 예측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확고하다. 두 시나리오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러시아 혁명에 대한 레닌의 총괄적인 전략 규정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구 볼셰비키가 걸고 있는 혐의와는 달리, 결코 주관주의적이거나 모험주의적이지 않음을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그 전략 규정 말이다.

     

    “191723월의 러시아 혁명은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의 출발점이었다. 이 혁명은 전쟁 종결로의 제1보를 내딛었다. 2, 즉 국가권력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인도하는 것만이 전쟁의 종결을 보장할 수 있다. 그것은 세계적 규모로의 전선 돌파”, 자본의 이익이라는 전선을 돌파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전선을 돌파함으로써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인류를 전쟁의 참화로부터 구하고 평화의 축복을 인류에게 안겨줄 수 있다.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미 이러한 자본 전선돌파직전까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를 끌어당긴 것이다.”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러시아에서 국가권력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인도하는2의 혁명, 즉 러시아의 사회주의혁명은 세계적 규모로의 자본 전선 돌파, 즉 세계 사회주의혁명의 구성부분이자 그 출발점이다. 그리고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러한 전선의 돌파 직전까지 와 있다. 러시아에서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이 이와 같이 세계적 규모로의 자본 전선 돌파의 일환이자 그 출발점, 그 촉진자라면, 구 볼셰비키의 예측 시나리오는 그 전제부터 허물어진다. 러시아의 노동자권력은 유럽에서의 승리한 사회주의혁명의 원조를 통해 단지 유지만이 아니라 성공적인 사회주의 도입의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농업 문제와 관련해서는, 농민이 자발적으로 시범 집단농장에 결합하도록 유도할 기계화된 농업 기반을, 선진 유럽의 노동자권력으로부터 제공받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미 전쟁 전부터 모든 나라 사회주의자들이 인터내셔널 대회(바젤, 슈투트가르트)를 통해 전쟁이 야기하는 경제적 · 정치적 위기를 이용하여 자본주의 전복을 앞당긴다는 결의를 거듭 반복해서 해 왔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제국주의 세계전쟁의 결과로 인한 국제적 대격변 물결의 제1()로 본 것은, 전쟁 발발 이래 줄곧 노동운동 내 조국방위주의 · 사회배외주의와의 투쟁에 전력해 온 국제주의자로서 자연스런 것이며, 또한 발전하는 정세의 총체성을 담아낸 과학적인 정세인식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보길 거부하고, 러시아 혁명을 세계적 규모로의 자본 전선 돌파와 관계없는 일국 혁명(‘특수 러시아적 혁명’)이라는 암묵적인 전제 하에 후진국러시아에서 단계를 건너뛰는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구 볼셰비키의 예측 시나리오야말로 죽은 공식에 매달려 있는, “자칭 과학적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내용이 없는, 현학적인도그마다.

     

    4월 테제로 촉발된 당내 투쟁이 최종적으로 정리되는 볼셰비키 당 7차 전국협의회(424-29)에서 레닌은 현 정세에 관한 결의내용의 일부로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사태의 전개는, 다름 아닌 바로 제국주의 전쟁과 관련하여, 1912년 바젤 선언에서 전원일치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천명한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의 예측을 명확히 확인해주고 있다. 러시아 혁명 [2월 혁명]은 전쟁의 결과로 불가피하게 된 프롤레타리아 혁명들 가운데 첫 번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최초 단계일 뿐이다. 모든 나라에서 자본계급에 대한 반란의 기운이 대중 속에서 성장하고 있고,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으로 넘기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시킴으로써만이 인류를 파멸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 가고 있다.”

     

    레닌이 4월 테제에서 러시아 현 시기의 특수성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자각과 조직화가 충분치 못해 권력을 부르주아지에게 넘겨준 혁명의 최초 단계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층의 수중으로 권력을 넘기지 않으면 안 되는 혁명의 두 번째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했을 때 여기서 혁명의 최초 단계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전쟁의 결과로 불가피하게 된 프롤레타리아 혁명들 가운데 첫 번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최초 단계를 뜻한다. 이것은 역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자각과 조직화가 충분했다면, “권력을 부르주아지에게 넘겨준” ‘단계따위는 없었을 것이고, 처음부터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코뮌 국가 수립으로) 세계적 자본 전선 돌파의 출발점이 되었을 것임을 말해준다.

     

    이 점에서 구 볼셰비키는 죽은 민주주의 독재공식을 붙들고서, 러시아 혁명을 세계적 규모로의 사회주의를 위한 내란의 일환으로 위치 짓길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교전국 각국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사회주의를 위한 내란으로 전화하라는 슬로건을 러시아에서 실행하길 처음부터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구 볼셰비키는 자본주의를 세계체제로 만들어놓은 제국주의 단계 이전의, 제국주의 세계전쟁 이전의, 말하자면 1905년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제국주의론> 이전의,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전술>>의 민주주의 독재 단계론에 고착되어 있다. 그럼으로써 러시아 혁명이 세계적 규모로의 자본 전선 돌파, 즉 세계 사회주의혁명의 첫 주자이자 출발점이 되는 것도, 러시아 혁명의 승리 자체도 모두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 “고물보관소에나 수용해야 마땅한사회주의혁명의 걸림돌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든 발전을 비약적으로 가속화시키고 계급 모순을 극도로 첨예화시킴으로써 혁명 과정의 거대한 촉진자가 된 전쟁은 단순히 외부에서 끼어든 우연적인 요인이 아니다. “전쟁은 세계 자본주의의 반세기에 걸친 발전의 산물이자, 그 무수한 끈들과 연관들의 산물이다.” 이 전쟁은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단계의 산물로서, 제국주의가 우연이 아닌 것처럼 이 제국주의 전쟁도 정세의 우연이 아니다. 제국주의 전쟁이야말로 배우들의 역할 및 위치와 무대 배치를 지휘하는, “세계사의 속도를 비상하게 높이역사의 방향을 순식간에 트는 전능한 무대감독이다.(<먼 곳에서 보낸 편지>) 임시정부가 인민의 전쟁 종결 염원을 무시하고 전쟁 계속을 감행하여 평화도, 빵도, 토지도, 인민이 요구하는 그 어느 것도 줄 수 없는 것은 따라서 제2의 혁명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임시정부 각료들이 특별히 더 배외주의적이거나 주전파라서가 아니라, 임시정부가 맺고 있는 러시아 · 영국 ·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금융자본과의 커넥션때문이며, 그러한 제국주의 자본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제국주의 정부이기 때문이다.

     

    닥쳐온 완전한 경제적 해체와 기근에 맞서 싸우기 위해 긴급히 필요한 즉각적인 혁명적 방책들”, 즉 생산과 분배에 대한 통제 도입, 은행과 자본가 신디케이트에 대한 즉각적인 통제와 국유화 같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이행기 프로그램’(넉 달 뒤에 <<임박한 파국, 그것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서 체계적으로 제시될)을 실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도,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을 강제하는 것도 모두 전능한 무대감독인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로 나온 문제들 때문이다.

     

    토지의 국유화, 모든 은행과 자본가 신디케이트의 국유화, 아니면 적어도 그것들에 대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의 즉각적인 통제 실시 등과 같은 조치는 결코 사회주의의 도입은 아니지만, 무조건적으로 주장해야 하며, 가능한 한 혁명적 방법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이들 방책은 사회주의로 가는 몇 걸음에 지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완전히 실행 가능한 것이지만, 이들 방책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전쟁으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닥쳐온 붕괴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은 다름 아닌 전쟁 덕에특히 괘씸한 방식으로 이익을 보고 있는 자본가와 은행가의 전대미문의 높은 이윤에 손대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페트로그라드 시 협의회>)

     

    전쟁은 한편으로 자본의 집적과 국제화를 가속화시키고 독점 자본주의를 국가독점 자본주의로 전화시킴으로써 사회주의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엄청난 속도로 성숙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레닌은 위에서 언급한 볼셰비키 당 7차 전국협의회에서 현 정세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현 정세에 관한 결의에서 러시아의 조건만 말하는 것은 틀렸다. 우리가 국제적 제관계의 총체를 무시한다면 크나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될 정도로 전쟁은 우리를 분리할 수 없게 한 데 묶어버렸다.

    전 세계 운동이 사회혁명의 문제를 제기할 시에는 어떠한 과제들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 앞에 놓이게 될 것인가, 이것이 결의에서 다루어진 주된 질문이다.

    보다 발달한 선진국들에서는 이미 전쟁 전에도 의심할 바 없이 존재한 사회주의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전쟁의 결과로 엄청난 속도로 성숙해졌다. 중소기업들은 어느 때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밀려나서 파산하고 있다. 자본의 집적과 국제화가 거대하게 진전되고 있다. 독점 자본주의는 국가독점 자본주의로 발전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에서 사회에 의한 생산 · 분배 통제가 도입되고 있다. 몇몇 나라는 보편적 노동 징집제를 도입하고 있다. 전쟁 전에는 트러스트와 신디케이트의 독점이었는데, 전쟁 이후 국가독점이 형성되었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7(4) 전국협의회>)

     

    전쟁의 결과로 형성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이러한 조건이 소농의 나라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걸음들을 내딛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또한 내딛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리고 러시아가 사회주의에 한 발을 걸칠수 있게 해주는 물질적 전제다. 또 러시아에서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이 세계적 규모로의 자본 전선 돌파의 출발점으로 되게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조건이다. 세계사회주의혁명 전략을 전제하지 않는, 한 나라의 조건만을 논하는 그 어떤 일국혁명 전략도 구체성과 현실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다. 제국주의 세계체제와 제국주의 세계전쟁이 후진국 러시아에서도 혁명을 민주주의적 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전진하여 사회주의혁명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후퇴하여 제국주의 전쟁 계속과 반혁명으로 학살되어버릴 것인가.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볼 때, 제국주의에 대해 말하면서 한 나라의 조건만을 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 나라들이 상호 아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전시 하에서 이 결합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어 있다. 전 인류는 한 줄의 피투성이로 된 실구슬로 엮여 있기 때문에 어떤 민족도 단독으로 빠져나올 수는 없다. 선진국이 있으면 후진국이 있듯이, 현 전쟁은 그들 모든 국가들을 많은 실로 엮어버렸기 때문에 일국 단독으로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지금 다른 모든 국가들과 결합되어 있으므로 그 실구슬로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다..... 즉 프롤레타리아트 전체가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오든가 그렇지 않으면 학살되어 버리든가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7(4) 전국협의회>)

     

    독일과 러시아, 이 양국에서 국가의 전 권력이 완전히, 남김없이 노동자 · 병사 대표 소비에트의 수중으로 이양된다면, 전 인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인데, 왜냐하면 그 때는 전쟁의 가장 신속한 종결이, 모든 나라 국민들 간의 가장 영속적인, 진정으로 민주주의적인 평화가 실제로 보장될 것이고, 그와 함께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로의 이행도 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7(4) 전국협의회>)

     

    마지막으로 레닌은 권고한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라는 죽은 공식에 매달려 민주주의 혁명을 최후까지 수행한다는 구 볼셰비즘의 집착을 떨쳐버리자.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첫 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세계를 개조하고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수억 명의 사람을 끌어들인, 그리고 수천억, 수조 규모의 자본의 이익이 얽혀 있는 제국주의 세계전쟁을 끝장내고자 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하지 않고는.... 끝날 수 없는 이 전쟁에, 우리는 종지부를 찍고자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익숙하고 그리운”, 더러워진 셔츠에 집착하고 있다. 더러워진 셔츠는 이제 벗어던지고, 깨끗한 속옷을 입어야 할 때다.”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 * *

     

    구 볼셰비즘의 문제는 단순한 일시적인전술 차이가 아니라 이와 같인 근본적인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위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레닌이 지금의 관건적인 임무라고 말한, 노동자 · 병사 대표 소비에트로 실현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 내부의 분립은 혁명의 발전과 승리에 있어 말 그대로 관건이었다. “프롤레타리아적 분자 (조국방위주의에 반대하고 코뮌으로의 이행에 찬성하는 국제주의적, ‘공산주의적분자)와 소부르주아적 분자 (코뮌으로 나아가는 것에 반대하고 부르주아지와 부르주아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치헤이제, 체레텔리, 스테클로프, 사회주의혁명가당, 그리고 그 밖의 혁명적 조국방위주의자들)를 분리시키는 임무없이는, 관건적인 임무가 선결되지 않고서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10월 사회주의혁명으로 나아가는 것도 다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 볼셰비키는 어떻게 했는가? “지금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만을 말하며 코뮌으로 나아가는 것에 반대하는 구 볼셰비키는 마찬가지로 이 관건적 임무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생활에 뒤쳐진노선, 그 죽은 공식으로부터 나오는 논리적 귀결이었다. 이것은 적어도 해당 국면에서는, 위의 소부르주아적 분자와 다를 바 없는 위치, 코뮌으로 나아가는 것에 반대하고 부르주아지와 부르주아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치헤이제, 체레텔리, 스테클로프, 사회주의혁명가당, 그리고 그 밖의 혁명적 조국방위주의자들과 같은 인민전선에 서 있는 것이었다. 레닌이 규정한 것처럼,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반대하여 소부르주아지 쪽으로 넘어간 사람이다.

     

    이와 같이 레닌의 4월 테제 대() “구 볼셰비즘간의 이 시기 당내 투쟁은 러시아 혁명의 진로와 명운을 가르는 투쟁이었다. 10월 사회주의혁명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이 길을 가로막고 제국주의 전쟁으로 계속 나아가 결국 반혁명에 길을 내줄 것인가. 다행히 4월 테제가 당의 노선으로 정리되면서 구 볼셰비즘은 고물보관소로 영구 수용되고 마침내 10월 혁명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반대하여 소부르주아지 쪽으로 넘어가 부르주아지와 함께 공동의전선에 서는 인민전선 노선은 18년 뒤 스탈린이 당과 코민테른 내 좌익반대파 숙청을 완성한 직후 화려한 부활을 맞는다. 1935년 코민테른 7차 대회에서 인민전선이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총노선으로 등극한 것이다. 파시즘을 금융자본의 가장 배외주의적이고 가장 군국주의적인 분파의 테러 독재라고 규정하여, ‘그 이외의금융자본 분파들, 그 이외의 부르주아와는 히틀러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에 함께 해야 한다며, · 불 연합국의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와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미국 등 각국에서 반파쇼 인민전선이름으로 공산당이 국의 제국주의 지배계급을 지지하고, 부르주아지 · 소부르주아지와의 인민전선 협정을 지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을 억제하는 데 앞장섰다. 실제로 1936년 프랑스 공장점거 파업물결에서, 그리고 스페인 혁명에서 인민전선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반대하는 계급협조 체제를 통해 노동자 투쟁과 나아가 노동자권력의 맹아를 파괴하는 반혁명적 노선으로서의 면모를 실물적으로 보여주었다. (이후 그리스에서, 한반도에서, 나아가 인도네시아에서, 칠레에서, 오늘날 남아공에 이르기까지 인민전선은 민주주의혁명 단계론과 한 세트를 이뤄 계급투쟁과 노동자혁명에 재앙적인 노선이 되어 왔다는 것은 여기서 다 상술할 수 없다.)

     

    임시정부와 전쟁에 대한 태도, “혁명적 조국방위주의에 대한 태도, 소비에트에 대한 방침,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파와 농민에 대한 태도 등 모든 전술 문제에서의 차이는 인민전선 노선의 이러한 역사적 궤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혁명의 성격, 전략 목표, 세계 사회주의혁명과의 연관 등 근본적인 전략 규정의 차이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었다.

    나아가 이러한 전략 규정의 차이를 가져온 근저에는, 전쟁 발발 이후 레닌이 발전시켜온 제국주의 이론과 코뮌국가론 (파리 코뮌의 경험에 기초해 새롭게 정립된 마르크스 · 엥겔스 국가 이론의 재발견이라고 그가 말한)을 구 볼셰비키가 수용, 공유하는 데 실패한 문제가 또한 놓여 있었다. “세계적 규모로의 자본 전선 돌파”, 즉 제국주의 세계 사슬 돌파와 분리된 일국혁명 전략과, 새로운 국가 유형으로서의 소비에트의 의의를 부인하고 코뮌으로의 이행을 가로막은 민주주의독재 단계론에 대한 집착은 명백히 이러한 실패와 관련이 있다. (레닌이 4월 테제 속에서 제국주의 문제와 코뮌국가 문제를 당 강령 개정안에 포함할 것을 제안한 이유도 이러한 중대한 차이를 감지하여, 낡고 생활에 뒤쳐져걸림돌이 된 공식과의 단절 · 쇄신을 명문화하고 당의 강령 · 전술적 재무장을 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망명지 스위스에서 레닌은 2월 혁명이 제기하게 될 문제들과 이론적 고투를 벌이고 있었고, 그에 대한 강령 · 전술적 답을 정식화하고 있었다. 특히 코뮌국가론의 경우, 그의 <<국가론 노트>>에서 보듯이 레닌이 2월 혁명 직전까지도 붙들고 씨름하고 있던 주제로서 자신의 이전 규정과의 명시적인 단절을 보여준다. 1905년의 <<민주주의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전술>>에서 레닌은 파리 코뮌을 당시에 민주주의 혁명의 요소와 사회주의 혁명의 요소를 구별하지 못했고, 또 구별할 수 없었던 정부, 공화제를 위해 투쟁하는 임무와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임무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한 정부라고 평가하며, “‘혁명적 코뮌슬로건은 틀렸는데, 왜냐하면 역사에 알려진, 코뮌이 범한 바로 그 과오라는 것이 다름 아니라 민주주의 혁명을 사회주의 혁명과 혼동한 점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었다. 이러한 평가는, 위에서 우리가 본 1917년의 평가, 새로운 국가 유형으로서의 코뮌의 의의에 대한 레닌의 적극적인 평가와는 명백히 다른 것이다. 4월 테제 논쟁 석 달 뒤에 발표되는 <<국가와 혁명>>(미처 완성 못한 <<국가론 노트>>를 이 때 완성한 것)에서는 이러한 적극적인 평가가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파리] 코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하고자 한 첫 시도다. 또한 분쇄된 국가기구를 대체할 수 있고, 또 대체해야만 하는 마침내 발견된정치적 형태다.” 그리고,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파리 코뮌의 사업을 다른 상황에서, 다른 조건 하에서 계속하고 있고, 마르크스의 빛나는 역사적 분석을 확증해주고 있다.” 1917년뿐만 아니라 1905년에 대해서도 코뮌을 말하고 있다. 이제 레닌은 거슬러 올라가, 이러한 코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1905년 혁명에 투영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현재 혁명의 성과를 지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평화, , 자유를 쟁취하고자 한다면,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기존의국가기구를 분쇄하고, 그것을 새로운 국가기구로 대체해야 경찰력, 군대, 관료를 무장한 전체 인민에 융합시킴으로써 한다. 1871년 파리 코뮌과 1905년 러시아 혁명의 경험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프롤레타리아트는 주민 가운데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모든 층을 조직하고 무장시켜야 한다. 이들 자신이 국가권력 기관을 직접 자기 손에 장악하도록, 이 국가권력 기관을 이들 자신이 구성하도록 말이다.” (<먼 곳에서 보낸 편지> 세 번째 편지’)

     

    구 볼셰비키가 이미 죽은 민주주의 독재라는 1905년 공식을 1917년에 투영하여 코뮌국가를 단계를 건너뛰는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레닌은 “1905년 혁명의 경험이 가리키는코뮌국가의 길이야말로 1917년 혁명이 따라야 할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코뮌국가 대 민주주의 독재의 대립구도는 레닌의 4월 테제와 구 볼셰비즘 간의 차이가 일시적인전술 차이의 문제가 아님을 확인해주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레닌은 코뮌의 재발견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도 코뮌의 시각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일 형태다. 그런데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는 모든 종류의 국가에 반대한다. [궁극적으로 국가 사멸론의 입장에서 반대’]... 마르크스주의가 아나키즘과 다른 것은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데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통상적인 의회제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 유형의 국가가 아니라, 1871년의 파리 코뮌 같은, 1905년과 1917년의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같은 국가가 필요하다.

    실생활은, 혁명은 이미 실제로 우리나라에 허약하고 맹아적인 형태로지만 바로 이 새로운 유형의, 본래 의미에서의 국가가 아닌 국가를 만들어냈다....

    본래의 의미에서의 국가란 인민으로부터 분리한 무장한 인간 부대가 대중을 지배하는 것이다.

    태어나려 하고 있는 우리의 새로운 국가 역시 하나의 국가인데, 왜냐하면 우리에게도 무장한 인간 부대가 필요하며, 가장 엄격한 질서가 필요하며, 차리즘 반혁명이든, 구치코프-부르주아 반혁명이든 모든 반혁명 기도를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어나려 하고 있는 우리의 새로운 국가는 더 이상 본래의 의미에서의 국가가 아닌데, 왜냐하면 러시아의 많은 지점에서 이 무장한 인간 부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대중 자신, 인민 전체이지, 인민 위에 서 있는, 인민으로부터 분리한, 실제상 소환 불가능한 특권적 인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을 내다봐야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 즉 낡은 군주제적 통치기관 경찰, 군대, 관료 에 의해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강화시킨 통상적인 부르주아 형()의 민주주의 쪽이 아니라, 앞을, 전방을 보아야 한다.

    태어나려 하고 있는, 이미 민주주의이기를 그치고 있는 민주주의란 인민의 지배인데, 무장한 인민 자신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민주주의 쪽을 보아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19173월을 거친 오늘에는, 혁명적 인민의 눈을 가려, 그들이 새로운 것 국가내의 유일 권력이자, 국가 일체사멸을 예고하는 전령으로서의 노동자 · 농민 등 대표 소비에트 을 자유롭게, 대담하게, 자신의 주도로 건설하는 것을 방해하는 눈가리개가 되고 있다.”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레닌이 당명 개정을 제안하면서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코뮌이즘)우리 이름을 대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한 배경에도 국가 일체의 사멸을 예고하는 전령으로서의코뮌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러한 눈가리개로서의 민주주의라는 인식이 깊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레닌 사후, 특히 인민전선이 총노선으로 등극한 코민테른 7차 대회 이후 공산당들의 전략·전술 어휘에서 코뮌은 사라지고 민주주의 인민전선’, ‘반파쇼 민주주의’, ‘인민 민주주의’, ‘반독점 민주주의’, ‘민주대연합등 온통 민주주의판이 된다. 레닌이 경고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반대하여 소부르주아지 쪽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새 옷으로 위장하고 변신 부활에 성공했다. 19174월에 레닌의 투쟁은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혁명의 승리를 위해 레닌이 당내로부터 비타협적인 투쟁으로 극복해야 했던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 인민전선주의는 오늘도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진정한 공산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데서 마주하는 최악의 내부 걸림돌이다.


    <편집자 주>

    이 글은 본지의 요청으로 싣게 된 소중한 기고 글로 국제코뮤니스전망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전 글>

    레닌의 4월 테제 對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 인민전선 Ⅰ, Ⅱ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7760


    레닌의 4월 테제 對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 인민전선 Ⅲ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7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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