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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의 쇠퇴 (The decadence of capitalism) - 6장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생산력 성장의 둔화
  • 자본주의의 쇠퇴
        The decadence of capitalism

    6장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생산력 성장의 둔화

    2차 대전 이후 생산력 발전의 리듬의 가속화는 1952년 ‘제4 인터내셔널’내의 균열을 촉발시킨 요인 중 하나였다. <AJS-OCI(Organization Communiste Internationaliste)>는 램버트를 우두머리로 한 프랑스 트로츠키주의 그룹으로, 이전에는 영국의 <Healyite Socialist Labor League(지금의 노동자혁명당)>와 미국의 <Wolforthite Workers League>와 연결되어 있었고, <AJS(Alliance de Jeunesse Socialiste) OCI> (청년부)의 ‘램버트주의’ 분파에 따르면,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과 가능성의 기반이 되는 경제적 전제는 생산력 성장의 총체적 정지이다. 이러한 점에서 램버트주의자는 트로츠키의 이행강령에 글자 그대로 충실하다. 우리는 이미 이 글의 서문에서 이 이론의 비일관성을 맑스주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재건기의 성장통계는 이 이론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의 견해에 통계를 짜맞추려고 램버트주의자들은 무기생산의 비생산적 본질을 주장한다. 그러나 무기생산이 실질생산의 제동역할을 하는 것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1945년 이후 생산력의 성장을 마비시키고 ‘무력화’시켰다고 하는 것은 통계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입장의 고집스럽고 근시안적 교조주의는, 그것이 <AJS-OCI>에게는 그렇게 소중한 또 다른 교조(이행강령)와 격렬하게 충돌한다는 점에서 더욱 우스꽝스럽다. 즉 “소련은 자본주의국가가 아니라 타락한 노동자국가이다.” 따라서 그곳에서 생산력은 미국보다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서구 강대국보다 무기생산에 더 많은 부분을 바쳤다. 공식 제4 인터내셔널의 트로츠키주의자들(Ligue Communiste – Mandel(고인이 된))에게 쇠퇴는 생산관계의 하중 아래에서 생산력 성장의 ‘막힘’이 아니라 성장의 둔화로 정의되고 있다. 이점에서 그들은 맑스에 ‘글자 그대로’ 충실하다. 그러나 표면 밑을 한치만 긁어보면 <AJS>입장과 마찬가지로 모순적인 교조덩어리가 발견된다. 

    “AJS는 무엇인가”라는 팸플릿에서 제4 인터내셔널의 이론가인 웨버(Weber)는 이 문제에 대한 “램버트주의자의 불합리한 이론과 기괴한 왜곡”을 비판하고 있다.1) ‘타락한 노동자국가’(만델과 그 집단도 세계에 비자본주의국들이 많다고 믿었다)의 교조에 내재한 명백한 모순을 풀기 위하여 웨버는 군비생산에 생산적 성격을 부여한다. 사회주의의 전제가 생산력의 정지된 성장에 달려있다는 트로츠키의 표현의 문제에 답하기 위하여 웨버는 트로츠키가 ‘1938년 그의 눈앞에 보인 현실을 기술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쇠퇴의 시기를 규정짓는 둔화의 특성과 내용을 규명하는 문제에 있어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매우 구체적인 것을 더 이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2차 대전 직후 시작됐다는 그리고 ‘전례 없는 경제 확장’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본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위기가 1차 대전에 의해 초래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또한, 맑스가 자본주의 생산을 생산력 발전의 족쇄로 비난했던 것은 120년 전인 1848년이라고, 그리고 그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퇴행적이고 반동적”이라고 선언한 것도 1848년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2) 그리고 그들은 「코뮤니스트 선언」의 문장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지난 수십 년 이래의 공업 및 상업의 역사는 현대의 생산 관계에 대한,… 현대 생산력의 반역의 역사일 뿐이다…
    이로써 부르주아지가 더 이상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으며, 사회에 그들의 생존조건을 규제적 법칙으로서 강요할 능력이 없음이 명백해진다.
    (「코뮤니스트 선언」,「맑스엥겔스선집」 1권 박종철출판사, 405쪽 및 411쪽)” 

    이 발췌문은 웨버가 “이것은 맑스와 엥겔스가 오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기 위하여 인용한 것이다. 웨버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모든 램버트주의자가 자신들의 테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머뭇거리지 않고 동의하게 될 대답을 다음과 같다고 주장한다. 

    “만일 생산력 발전과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지속 사이의 모순이 생산력의 차단으로 순수하고 단순하게 표현된다면, 맑스와 엥겔스는 1848년뿐만 아니라 그의 일생에서 오류를 범했다. 왜냐하면 램버트주의자 견해에 따르면 생산력 정체는 1914년대에 시작됐기 때문이다.” 더욱 혼란은 이어진다. “그러나 생산력의 ‘막힘’이라는 램버트주의자들의 이론은 맑스주의에게는 낯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웨버와 맑스와 엥겔스가 틀리지 않다고 믿는다면, 트로츠키의 무오류성에 뒤이어, 맑스 엥겔스의 무오류성도 적어도 웨버의 머릿속에서는 구제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이한 무오류성들의 교조가 존중된다. 그러나 갑자기 다음과 같은 견해에서 뒤엉키게 된다. 즉, 자본주의 쇠퇴는 1848년에 완전히 지배적이었고, ‘자본주의 전반적인 위기’는 단지 1914년에 시작되었으며, ‘신자본주의’의 의기양양한 확장의 최절정은 1960년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발전의 결렬은 ‘1848년 이전 수십 년’에 있는가, 아니면 ‘120년 전’ 1848년에, 아니면 1914년에, 그것도 아니면 이른바 ‘신자본주의’의 시작이라는 1945년인가? 도대체  맑스가 말한 이 유명한 “사회혁명의 시대”는 언제 시작하는가?

    어쨌든 몇몇 공식적 트로츠키주의의 교조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제3세계 모든 관료주의적 운동의 ‘진보적 성격’과 북경과 모스크바의 ‘반제국주의적 본질’ 그리고 노동조합(‘비판적’ 지지), 선거(‘교육적’ 이득), 그리고 개혁(‘사회주의를 향한 이행운동’)등을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기회주의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러한 빈약한 이론적인 조각짜깁기 안에 어떤 일관된 결과들을 종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최종 분석에 있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의 레닌주의자들에게는 역사적 시기를 특징짓는 이러한 경제적 문제들… 등등은 중요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이들 ‘과학자들’은 유일한 진정한 문제는 혁명적 지도력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인류문화에서 현위기는 프롤레타리아 지도력에서의 위기이다.” (트로츠키, 1938)

    이 이론적 짜깁기(다양한 유형의 트로츠키주의적 기회주의를 은폐하는 구실로서만 사실상 봉사하는)로부터 배울 것이라고는, 생산력 성장의 둔화로 표현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정의를 발전시킬 필요성을 깨닫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이 글의 서두에서 말했듯이 쇠퇴의 시기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생산력 성장의 둔화로 표현된다. 

    ① 이러한 성장의 부족이 특히 생산관계에 의해 부과된 제약들로부터 결과되고, 
    ② 그 과정이 불가피하고 돌이킬 수 없으며, 
    ③ 생산력의 실재적 발전과 지배적 생산관계의 족쇄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가능한 생산력 사이에 간극이 계속 벌어진다. 

    맑스와 엥겔스가 「코뮤니스트 선언」을 썼을 때 순환적 위기에 의한 주기적 성장둔화가 있었다. 이러한 위기동안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은 명확히 드러났다. 그러나 ‘근대 생산관계에 대항하는 근대 생산력의 반항’은 청년기 자본주의의 반항이었다. 이러한 정기적 폭발의 결과로 자본주의 체제는 그 극적 상승의 과정동안 그 앞을 가로막는 마지막 봉건적 제약과 함께 유아적 습관을 벗어던지고 더욱 강화될 뿐이었다. 1850년에 세계인구의 10%만이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통합되었다. 임금체제는 그 앞에 전적인 미래를 지니고 있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상승의 위기로부터 앞으로 나올 모든 위기의 본질을 천재적으로 추출해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자본주의의 가장 심오한 격변의 기초를 미래 세대에게 드러낼 수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시작부터 한 사회적 형식은 그 자체를 죽음에 이르게 할 모든 모순의 씨앗을 내부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은 경제성장을 영구적으로 방해하는 시점까지 발전하지 않는 한, 이러한 성장의 동력을 이룬다. 19세기 자본주의 경제가 충격적으로 경험한 둔화는 영구적이고 증대하는 족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반대로 이러한 위기의 강도는 그 반복에 의해 부드러워 졌다. 맑스와 엥겔스는 1848년 분석에서 완전한 오류를 범했다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의 맑스 뿐만 아니라 그 서문을 쓴 엥겔스도 이를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1898년 로자 룩셈부르크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더욱이 명쾌했다: 

    “이전의 모든 거대한 국제위기의 상이한 원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노년의 허약함의 표현이 아니라 유아기의 것임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노년기 자본주의의 실제적인 위기인 시장의 제약의 생산력과의 숙명적, 주기적 충돌을 빚어낼 정도의 발전과 소진까지 아직 진행하지 않았다…. 만약 세계시장이 지금 다소간 채워졌고 더 이상 갑작스런 확장에 의해 증가될 수 없다면, 그리고 만약 동시에 노동생산성이 가차 없이 발전해 간다면, 조만간 생산력과 교환의 한계 사이의 주기적 갈등이 시작될 것이며, 이는 더욱 날카롭고 거세게 반복될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개량이냐 혁명이냐』)

    2차 세계대전 후 재건 시기가 열렸을 때 자본주의는 그 이전에 이미 오랫동안 ‘갑작스러운 확장에 의해 더는 확대될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노동생산성은 자본주의 생산관계 내에 포함되기에는 너무 빨리 상승했다. 이미 30년 동안,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에 대항하는 생산력의 반복적이고 점점 더 격렬한 공격은 사회 전체를 잔인하게 유린했다. 

    오직 이러한 증대하는 경제침체 시기의 참상과 야만만이 재건과 더불어 시작된 경제발전이 촉발한 일반적인 당황스러움을 설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이든 간에 이러한 ‘발전’은 사실상 생산력 성장에 있어서 인류가 이제까지 알았던 가장 큰 둔화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결코 가능한 것과 실제로 성취된 것 사이의 대조가 그러한 비율에 다다른 적이 없었다. 결코 “발전의 지속이 그처럼 쇠퇴같이 나타나지”(맑스) 않았다.

    이러한 쇠퇴의 정도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생산력 발전을 결정하기 위해서, 무기생산은 실제로 실현된 생산량에 포함되어야 하는가 아닌가? ‘가능했을’ 생산수준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실제로 실현된 수준을 경제성장이 체제의 상승기 동안 성취한 성장률을 계속 따랐다고 가정했을 때 도달되었을 수준과 비교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경우라면 우리는 1913년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1945년으로부터 시작해야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당시 현존하던 기술을 전제로 하여 가능했을 성장률을 결정해야하는가? ‘방해받지 않도록 그냥 내버려 둔’ 생산력의 발전 비율이 점증하는 것이었을지 고정된 것이었을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1913~1959년 사이 발전한 세계 산업생산(무기생산 포함)을 산업성장이 1880~1890년 사이에 달성된 것과 동일한 율로 계속되었다면 결과되었을 생산과 비교 해보려 한다.3) (우리는 발전의 불변율을 가정하겠지만, 실제로 이러한 발전율은 생산성 향상의 영향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띨 것이다.) 우리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직후 시작된 시기에 관심이 있다. 

    첫 번째 보기(위의 예)에서 정의된 가설적 성장과의 비교는 2차 세계대전시 기술발전에 의해 가능해진 새로운 성장률에 기초한 가설적 성장의 다른 보기와의 두 번째 비교에 의해 완성될 것이다. 쇠퇴의 정도에 대해 보다 정확히 사고하기 위하여 우리는 전쟁이 끝난 1946에서부터 이러한 가설적 성장을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비교를 위하여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획득가능 했을 성장률(만일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발전을 방해 하지 않았다면)로서, 1939년과 1944년 사이에 미국 산업생산으로 달성된 성장률을 선택했다. 전쟁은 미국경제를 위한 중요한 출구를 열어주었고 생산기구가 최대의 강도로 작동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 성장률은 생산에서의 거대한 성장이 다시 더 많은 성장을 가속하기 위해 생산에 재통합될 수 없는 유형의 생산 즉, 무기생산을  포함한다는 사실에 의해 제한된다. 더구나 이 비율은 다른 강대국이 전장으로 찢겨진 동일한 시기에 미국에서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미국의 경제성장은 국제협력이 제공하는 기술발전의 덕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성장율을 유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어진 시점에서 실제로 획득된 것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그래서 사회의 실제 기술역량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산업생산지수는 1939년과 1944년(100=1938)사이에 109에서 235로 높아졌는데 이는 5년간 110%의 성장률에 해당된다. (도표를 참조)

    도표> 세계 산업생산 (1913~59) 
    그리고 두개의 가설적 성장 추정치, 
    (index 100=1938)
      111.jpg  

    산업생산성장의 둔화 
    (index 100=1938) 
    112.jpg
    도표에서 우리는 두 경우 모두에서 점점 더 빠르게 격차가 벌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그들의 진행을 개별적인 도표에 기록함으로써 그 둔화의 크기를 훨씬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첫 번째 도표는 반(semi) 로가리즘으로 측정되어서 격차의 진행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 도표들은 단지 추정적인 것으로서, 성장률에서의 제동의 실제적인 정도를 과소평가한 것일 수 있는 그림을 제공한다. 그런데 그것들은 부단한 증가뿐만 아니라 이러한 제동의 전례 없는 효과와 그 돌이킬 수 없고 불가피한 성격을 명확히 보여준다. 간격이 줄어드는 시기는 재무장과 재건의 시기에 상응한다. 여기서 그것들의 잠정적 완화제로서의 기능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생산력 성장의 둔화 이후에, 1914년 이후 특히 1945년 이후 자본주의가 더욱 깊고 더 확산된 위기(한 사회의 경제적 쇠퇴의 두 번째 특징)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무기생산의 본질과 그 한계를 검토하게 만든다. 우리는 1914~46년 시기를 먼저 검토하고 그 후 2차 세계대전 말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시기를 검토할 것이다.


    <주>
    1. “AJS는 무엇인가(Qu’est-ce-quel‘AJS)”, 적색노트, ‘맑스냐 죽음이냐(Marx ou creve)’시리즈,(원문), 13-35쪽
    2.  윗글 30쪽 
    3.  1880년대부터 1890년까지 1.6배 더해진 산업생산지수 Sternberg, 21쪽.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작성
    오세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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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글>

    자본주의의 쇠퇴 (The decadence of capitalism) 


    서론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5&document_srl=335922


    1장 계급사회의 번영과 몰락 <경제적 조건의 물질적 변환>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5&document_srl=335968


    1장 계급사회의 번영과 몰락 <상부구조의 전복>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5&document_srl=336209


    2장 위기와 쇠퇴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5&document_srl=336224


    3장 자본주의에서의 쇠퇴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5&document_srl=336273


    4장 쇠퇴: 생산력의 총체적 정지?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5&document_srl=336792


    5장 1914년 전쟁이라는 전환점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5&document_srl=337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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