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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뮤니스트 9호] 쿠바 : 국가자본주의 개혁
  • 쿠바 : 국가자본주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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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7월 쿠바 국회에 사유재산 존중, 토지 상속권 유지, 외국인 투자 인정 등이 포함된 새로운 헌법 개정안이 제출되었고 같은 해 12월 통과 되었다. 처음 개정안에는 공산주의가 삭제되었지만 마지막에 공산주의를 향해 전진한다는 목표가 추가되었다.

     

    개헌 국민투표는 2019224일에 실시되었으며, 투표 참가자 784만여 명 중 681만여 명에 해당하는 86.85%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물론 이 개헌은 쿠바 혁명이 결코 사회주의가 아니었고, 쿠바가 초국적 투자의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헌법적 표현에 불과하다. 그동안 쿠바의 고립은 미국이 유지하는 경제 블록의 지정학적 전략으로 증폭되어 왔다.

     

    쿠바는 최근 주요 고객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 정부 위기로 보건, 서비스 및 문맹 퇴치 활동 수출이 영향을 받고 있다. 80년대 소련 위기와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도 쿠바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에 쿠바 정부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쿠바 헌법 개정은 새로운 걸 가져오지 않는다. 자본 투자자 집단 모집과 국제 시장 진출을 위한 과정 또는 조치만을 조정할 뿐이다. 호메로 아코스타 국가평의회 서기는 기회주의자나 거짓 사회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주의를 확립하는 원칙의 틀 안에서 전면적인 개혁에 직면해 있다"라면서 쿠바가 "사회주의국가"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며, 헌법 개정에 따라 앞으로 예정된 변화를 의원들에게 먼저 보여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들이 "시장 법칙의 객관적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쿠바의 국가 자본주의는 민간 기업가에 대한 과세로 재정 수입을 늘릴 필요가 있다. 그것은 민간 기업(국가 또는 초국가적) 투자 상품 수요를 활성화하고 외국인 투자 유입을 증가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이는 상품 및 서비스 가격에 대한 보조금 삭감과 화폐 재통일 및 통화 평가 절하를 위한 배급 카드를 제거하는 경로를 설명해준다. 쿠바 경제에 숨겨져 있거나 묻혀있는 민간 상업 활동은 점점 더 강력하게 번창하고 있다. 이것은 쿠바의 일부 기회주의자들이 "더 새롭고 기능적인 유형의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부르던 것이다. 국가는 수십 년 동안 "애물단지(white elephants)"였던 기술적으로 뒤떨어지고 국제 시장 모든 경쟁력에서 벗어난 제품으로 인해 파산한 성장가능성 없는 회사들을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이른바 "좌파"의 일부 기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두고 "쿠바의 자본주의로 복귀"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자본주의가 결코 쿠바를 떠난 적이 없다. 자본 축적은 국가에 의해 중앙 집중화되었고 그 이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국제무대에서 쿠바가 그렇게 많이 선전한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늘날 쿠바 부르주아 정부는 국가자본주의를 개혁할 뿐이며, 경제 정책은 자본주의 세계 위기 영향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달러, 10달러의 연금에 맞닥뜨린 봉급생활자들의 요구는 구체화되고, 머지않아 정치 투쟁으로 변할 것이다. 쿠바에서도 세계의 다른 나라들처럼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적 혁명 목표를 재발견하고 계급투쟁을 재개해야 한다.

     

    코뮤니스트당(The Communist Party)12호,  국제코뮤니스트당(international communist party)

     

     

     

    <참고자료>

     

    쿠바, 카스트로, 체 게바라, 그리고 억압

     

    1931-33년 임시 대통령 쎄스페데스에 쿠데타를 일으킨 바티스타는 1940년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1952년 다시 쿠데타로 집권한 뒤, 지방 인민사회당의 지지를 받았다. 쿠바 경제는 급성장했으나 도시와 농촌 사이에 빈부 격차가 벌어졌다. 1958년 하바나에는 성매매 여성이 11,500명에 달했으며 부패가 극심했다.

     

    멕시코에서 726일 운동(M-26)이라는 게릴라를 결성한 카스트로는 1958117일 체 게바라와 함께 하바나로 진군하여 195918일 수도에 입성한다. 5개월 동안 바티스타 지지자 6백여 명이 처형되었는데, 광장에서 로마식 공개 처형으로 이루어져 전체주의적 테러의 양상을 띠었다. 혁명 직후 카스트로는 뉴욕 타임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권력에 관심이 없다. 승리 후에 고향 마을로 가서 변호사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1976년까지 대통령령으로 지배했으며 정적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었고, 혁명 동지들을 교체했고, 1976년 소련 모델의 헌법을 제정했다.

     

    노동자는 억압받는 또 다른 대상이었다. 19628월 설탕 노조 지도자인 살바도르가 체포되고, 12년 동안 수감되었다. 교육과 예술 분야의 민주인사들에 대한 탄압도 지속되었는데, 1961917131명의 신부가 국외로 추방되었다. 산업부 장관과 중앙은행장을 역임한 체 게바라는 쿠바에 소련 모델을 이식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화 혁명의 숭앙자였다. 1960년 쿠바에 노동수용소를 창설한 사람은 카스트로가 아니라 체 게바라였으며 새로운 인간의 숭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쿠바 청년을 군사화한 기술자였다.

     

    여기서 우리는 쿠바 혁명의 주력부대인 게릴라와 그 지도자인 카스트로와 게바라의 신화를 벗겨볼 필요가 있다. 게릴라 부대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이며 그들이 내건 맑스주의는 그들이 스스로 맑스주의자라고 부른다고 하더라도 반()양키저항의 편리한 덮개에 불과하다. 이 게릴라 그룹은 결코 농민 봉기의 표현이 아니었고, 노동계급의 봉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부르주아지의 한 분파가 다른 분파를 전복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군사적 표현이었다. 카스트로의 게릴라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어떤 민중봉기도 없었다. 피착취계급과 빈민은 권력을 쥔 새로운 주인에게 환호할 뿐 주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바티스타 군대의 약한 저항에 대항하여 게바라는 결단력과 카리스마로 카스트로를 무색하게 할 만큼의 용맹스러운 게릴라처럼 보였다. ‘혁명 법정을 통해 이른바 민중적 정의를 실현하면서 체는 우리는 총살했고, 아직도 총살시키고 있으며 필요한 한 계속해서 총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무력에 의해 다른 분파를 제압하는 부르주아지 분파의 전형적인 방법일 뿐이다.


    카스트로 민족주의 정권은 재빨리 자격을 갖춘 공산주의로 치장했다. 다른 말로 하면 카스트로 정권은 소련이 이끄는 제국주의 진영으로 나아갔다. 주요 군사요원과 민간인이 있고 동구 블록 국가의 비밀 활동이 있는 섬 쿠바의 스탈린주의화는 1962년 미사일 위기로 그 정점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 진영과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 국가를 방문하는데 여기서 그는 아낌없이 소련을 찬양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 “사상의 자유가 지배하는 곳”, “자유의 모국이라고. 그는 또한 모든 사람이 열정에 차 있고 모든 사람이 근무시간을 넘어 일하는특별한북한과 마오의 중국을 찬양하고 이어서 동구의 모든 나라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국가의 성취가 특별하다. 그들의 삶의 체제, 발전의 체제와 자본주의 국가의 삶과 발전 체제를 비교할 수가 없다라고 추켜세웠다.

     

    체 게바라에게서 소련과 그 블록은 사회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진영이었고, ‘하나, , 여러 개의 베트남을 만들자는 슬로건은 국제주의적표어가 아니라 러시아 블록에 우호적인 민족주의적 슬로건일 뿐이었으며, 미국에 대한 증오였다. “민족해방은 인민의 군사적 동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이념적 신비화였다. 노동계급이나 다른 피착취계급 어느 것도 이러한 전쟁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었다. 워싱턴의 비밀활동과 각종 마피아가 통제하는 부패한 바티스타 독재로부터 스탈린주의 블록으로 넘어간 쿠바는 민족해방투쟁의 비극적인 축약되었다. ‘사회주의 조국을 방어하는 국제주의 정도를 벗어난 쿠바의 길은 부르주아 방법인 테러와 국가 자본주의, 다시 말해 자본주의 착취의 가장 잔인하고 전체주의적인 표현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스탈린주의와 다른 변동(마오주의로부터 카스트로주의까지)의 공통적 특징 중의 하나는 대중의 뇌 속에 의식을 주입하는 지식인이 이끄는 혁명의 주체를 신화적 빈농으로 만들면서 노동계급을 불신하고 경멸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이비 혁명가들의 저술 속에서 누구도 계급 권력기관인 소비에트를 스스로 조직하는 노동계급에 대한 어떠한 참조도 발견할 수 없다.

     

    체 게바라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대중은 주장하는 것처럼 양떼처럼 행동하는 같은 유형의 요소의 합이 아니다. 지도자들, 기본적으로 피델 카스트로를 주저하지 않고 따르는 것은 옳다.피상적으로 보면 국가에 대한 개인의 복종을 말하는 사람이 옳은 것 같다. 대중은 비길 데 없는 열정과 규율로 정부가 정한 과업을, 경제, 문화, 국방, 스포츠 분야에서 수행한다 일반적으로는 주도권은 피델로부터, 혁명적 지도부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인민에게 설명된다. (쿠바에서의 사회주의와 인간, 1965)

     

    쿠바에서 노동계급을 통제하는 주요기관 중의 하나는 놀랍게도 노동조합이다. 쿠바노동조합총연맹(CTC)은 이미 미국식의 노동조합이었으며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그 부패로 완전히 통합되어 있었다. 쿠바 지도부는 이들은 1960년에 관료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 모형에 기반을 둔 스탈린주의 노동조합으로 재빨리 전환시켰다. 카스트로 정권의 첫 번째 결정은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에게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게 하는 책임을 지게하고 회사에서 파업 금지를 강제하는 것이었다. 노동계급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미제국주의 반대와 쿠바 인민의 방어로 정당화되었다. 쿠바에 있는 미국회사에서 임금 삭감에 대항하는 파업 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카스트로 정권의 지도자들은 파업 노동자를 파괴자로 낙인찍었다.

     

    게바라는 다른 누구보다 더 과감한 민족주의적이고 스탈린주의적인 지도자 중 하나일 뿐이지만, 아직도 카스트로주의라는 스탈린주의 반혁명의 열대지역 변종의 대표이기도 하다.

     

    볼리바르 혁명의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 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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