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실천 복간 2호」 자본주의 쇠퇴기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2
    • 자본주의 쇠퇴기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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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의 역사는 항상적이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1인터내셔널은 상승기 자본주의의 능력 때문에, 2인터내셔널은 혁명주의의 포기와 민족주의 때문에, 그리고 코민테른은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한 스탈린주의의 반혁명 때문에 실패했다. 특히 1930년대 이후의 반혁명세력은 (국가)자본주의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사회주의를 참칭하였고, 결국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양 진영의 대립을 위장하면서 세계의 노동자 계급을 억압·착취하였다. 더구나 1989년 동구블록과 스탈린 체제의 몰락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명백한 승리’, ‘계급투쟁의 종말’, 그리고 심지어 노동계급 자체의 종말이라고 떠드는 부르주아지의 캠페인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의식과 전투성 수준에서 심각하게 후퇴하도록 만들었다.

     

    1990년대 동안 노동계급은 투쟁을 전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시기의 투쟁의 기관이었던 노동조합에 대적할 폭이나 의식, 그리고 능력은 지니지 못했다. 2003년까지는 그렇지 못했지만 1989년 이래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의 연금에 대한 공격에 대한 반대투쟁이 전기가 되었다. 노동자의 투쟁은 주로 중심국가에 영향을 주었는데 미국(2005년 보잉과 뉴욕교통), 독일(2004년 다임러와 오펠, 2006년 봄 의사, 2007년 봄 독일 텔레콤), 영국(20053월 런던공항), 프랑스(2006CPE 반대 투쟁)가 있고, 주변부 국가로는 두바이(2006년 봄 건설노동자), 방글라데시(2006년 봄 방직노동자), 이집트(2007년 봄 방직노동자)의 투쟁이 있다. 2006년 이후 2008년까지 벌어진 세계의 계급투쟁은 이집트 두바이, 알제리, 베네쥬엘라, 페루, 터키, 그리스, 핀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러시아, 이태리,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전 세계로 확대되었으며, 2009년부터 심화되는 대공황과 국가 부채, 재정악화로 인한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과 국가에 의한 공격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급의 공세적 투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미국 월가의 점령 투쟁, 아프리카의 민주화투쟁, 중국, 인도에서의 노동자 투쟁은 쇠퇴기 자본주의 체제를 분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계급투쟁의 새로운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40년의 위기와 노동계급의 생활표준에 대한 공격, 특히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는 미래가 좋아질 것이라는 환상을 날려버렸다.

    둘째, 점점 야만의 형식을 취하는 군사갈등의 영구화뿐만 아니라 환경파괴에 대한 가시적 위협은 사회혁명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킨다. ‘반자본운동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은 혁명을 벗어나게 하려는 부르주아지가 숨긴 항체이다.

    셋째, 스탈린주의와 20여 년 전 그 몰락 이후의 부르주아 캠페인이 만든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있다. 지금 노동의 삶을 시작하는 새로운 세대는 공산주의의 죽음에 대한 거대한 캠페인이 벌어졌을 때 어린이였다.

     

    그런데 40년 동안 세계자본주의는 엄청난 부채를 짊어짐으로써 재앙을 피해왔다. 자본주의에서 부채는 마약중독자에게 마약이나 다름없다. 그 마약을 소련 같은 (국가)자본주의가 사용했건 미국 같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사용했건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부채의 결과는 지불 가능한 시장을 찾지 못하고 결국 전 세계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전 세계 노동자의 가난,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생태적 재앙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150여 년 전의 전쟁인가 혁명인가의 화두를 진지하게 꺼내들고 다시 한 번 야만인가 문명인가’, ‘코뮤니즘의 물질적 필요성을 말하는 역사적, 문명적 인식과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과 실천을 준비해야 한다. 자본주의 쇠퇴의 객관적 법칙과 조건이 생산, 권력, 역사의 주체인 노동계급과 만나 서로 침투하는 계급투쟁을 전개하는데 코뮤니스트의 역사적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코뮤니스트는 맑스주의 원칙 중에서도 국제주의의 원칙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자본주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제국주의 전쟁과 파시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족해방투쟁에 왜 참여하지 말아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왜 그것을 지지해야하는가의 문제야말로 민족해방투쟁에 대해 가져야 할 관점이다. 국제주의는 공산주의 초석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1848년 이래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는 노동자 운동 속에 잘 확립되어 왔고 공산주의 선언의 마지막 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에 담겨져 있다.

     

    맑스와 엥겔스에게 민족국가와 민족 이데올로기는 순수하고 단순하게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었다. 그들의 전반적인 전망은 세계시장의 분석과 미래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가 지구적 인간 공동체, 세계적인 생산자 연합이라는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본주의 상승기에 글을 썼고, 그 시기는 부르주아지가 봉건적 지배의 족쇄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진보적이고 혁명적 계급이었다. 그들의 시대에 자본주의적 상품관계는 생산력의 진보적 발전의 유일한 기반이었다. 그 당시 혁명가들의 민족해방 운동을 지지한 것은 이러한 관점 때문이다. 이 시기에 민족전쟁에 대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태도를 구별시킨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시기에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민족자결에 대한 추상적 권리를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공산주의자들은 민족해방운동의 자본주의적 본질을 이해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심지어 노동자가 절대주의에 대항하는 부르주아지의 투쟁을 지지할 때에도 부르주아지로부터 엄격한 정치적 독립을 프롤레타리아트가 유지해야 한다고 이해했다.

     

    맑스와 엥겔스와 같이 레닌도 민족해방투쟁이 부르주아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정확하게 보았다. 그러나 레닌은 러시아와 식민지 국가에서 봉건제를 전복하고, 민족독립을 성취하는 부르주아지의 임무는 완수되지 않았다는 근거로 룩셈부르크의 비판으로부터 민족자결권의 구호를 유지하는 볼셰비키의 입장을 방어했다. 반면 룩셈부르크에게 제국주의는 단순히 후진국가에 대해 선진자본이 저지른 강도적인 형식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 관계의 총체성의 표현이었다. 그 후 스탈린주의 관료주의는 세계자본에 내재적으로 적대적인 세력이 되는 것과 달리 러시아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착취에 종속되는 세력으로, 그 착취의 도구였다.

     

    2차 세계대전을 경과하면서 식민지에서 민족운동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화했다.

     

    첫째, 전쟁 후 몇 년 간 비교적 평화적인 탈식민지화의 경향이 있었다.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폭력적인 민족운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옛 식민종주국은 재빨리 민족독립에 동의했다. 대영제국의 평화적해체는 가장 적절한 보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러한 식민지 국가들이 스스로 자본주의적이며 지구적 자본의 확대재생산의 기반으로 더 이상 역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한국, 베트남, 중동 등에서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후 세력 균형의 산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인류의 가장 기본적 필요에 부응할 수 없는 무능력과 구식민지 지역의 극단적인 사회적 해체 때문이었다. 이 전쟁에서 제국주의는 직접 서로 부딪치지 않았고 지역갈등이 강대국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매개 구실을 했다. 이는 지역 부르주아지가 항상 강대국의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 부르주아지는 그들 자신의 이해를 가지고 있고 제국주의적이다. 자본주의 쇠퇴 시대에 모든 민족국가는 제국주의 권력이다.

    1960년대에는 제3세계주의와 민족해방 신화의 전성기였다. 좌파와 자유주의자는 베트남 전쟁을 미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베트남 인민의 영웅적 투쟁으로, 중국을 세계의 피억압민중의 성채로, , 카스트로, 벤 벨라 등에 대한 숭배로 나아갔고, 모든 세대의 학생과 심지어 노동계급의 전투파까지도 이러한 신화에서 자양분을 얻고 반제국주의투쟁으로 연대운동을 전개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계급은 이 신화로부터 제국주의가 준 돈을 받고 면제되었으며, 3세계 인민의 등 뒤에서 세워진 자본주의 번영의 혜택을 즐겼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이상 주요 혁명세력이 아니었다. 혁명의 주동력은 훈련된 게릴라 군대가 이끌고 도시에서의 새로운 혁명전위(노동자가 아닌 학생, 흑인, 여성)와 연대함으로써 후진국 농민과 빈민대중의 봉기로부터 나온다는 것이었다.

     

    1970년대는 이러한 모든 신화가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라는 빛에 의해 무자비하게 노출되었다. 역사적으로 파산된 세계질서의 위기는 두 개의 주요계급으로부터 두 가지 기본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경쟁하는 민족국가와 제국주의의 블록으로 나누어진 부르주아지는 세계 전쟁으로 내몰린다. 사회적 부의 생산자인 노동계급은 자신의 생활표준을 방어하는 투쟁, 즉 전쟁을 향한 움직임을 막고 공산주의 혁명의 가능성을 향한 투쟁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두 계급의 분리되는 경향은 70년대에 이른바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허위와 환상을 흔들어 놓았다.

     

    세계자본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어떠한 새로운 독립적 자본주의도 나타날 수 없다. 또한 민족해방은 불가능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환상은 거의 사라졌지만 두 가지 다른 형태로 국제주의로부터 이탈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는 이른바 반세계화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주의의 복원을 통한 미제국주의 반대운동이다. 반세계화운동은 부르주아지의 이념적 선전과 같은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유일한 가능한 체제이고 그 개혁이 유일한 대안이다.

    Attac과 같은 조직의 운동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잘 규제된 자본주의가 사악한 금융자본을 몰아내면 인간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기는 신자유주의 탈규제화와 산업자본으로부터의 투자수익률 15% 요구하는 금융자본의 독재의 결과이다.

    내핍, 금융 불안, 불경기는 부르주아지 내의 새로운 힘의 균형의 결과에 불과하다

     

    모든 반세계화 운동 세력의 중심 기조는 세계자본주의에 근본적 대안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흐름은 반미의 민족주의적 정서와 빈곤화되는 농민, 도시 빈민, 노동자의 밑으로부터 혁명적 분출을 기반으로 한 남미의 민중주의적 경향이다. 한 국가 내에서의 미국 자본과 민족 자본의 대립에 근거한 국유화 등의 조치는 세계자본 내에 경쟁하는 자본의 분파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세계자본주의의 운동과 위기, 모순, 쇠퇴를 이해한다면 100년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경험한 오류를 다시 되풀이하는 엄청난 장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열어갈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 비타협적인 자발적 계급투쟁을 전개하는 일이다.

    계급의 투쟁을 엇나가게 하고 자본의 분파와 연결시키는 모든 세력 (노동조합이건, 좌파당이건, 민족해방전선이건)으로부터 독립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세력들과 치열하게 투쟁해야 한다. 오늘날 노동계급에게 열린 유일한 전선은 자본에 대항하는 국제 프롤레타리아 전선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본주의에서 차악은 없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국제적인 것처럼 노동계급의 투쟁도 국제적이다.

     

    둘째, 세계적 내전으로 길을 여는 일이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중심 자본주의의 쇠사슬을 끊을 때까지, 무기력하게 기다리도록 제3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저주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민족해방전선에 대한 지지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견해는 지구적 사회관계로서의 자본을, 그리고 하나의세계 계급으로서의 노동계급을 이해하지 못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선진국에서 일어나든, 3세계에서 일어나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느 곳에서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확립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세계적 내전의 시기를 연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전은 권력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제기되자마자 프롤레타리아트는 죽을 때까지 자본과의 투쟁을 시작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권력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 세계 계급에게도 마찬가지다. “정치적고려라는 전반적 틀 내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의 군사적확장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무장된 프롤레타리아트는 다른 나라 노동자들에게 혁명 투쟁을 촉구하지만 테러를 사용하지 않는다. 어떠한 경우라도 핵과 세균전쟁을 사용할 수 없다.

     

    셋째, 세계의 인류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이다.

    옛 노동자운동에서는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어느 정도 민족 선구자 뒤에서 실현될 수 있고 세계 공동체는 사회주의 경제의 점진적 융합 과정으로 창조될 수 있다는 혼란스런 생각이 가능했다. 그러나 러시아 경험은 일국 사회주의 건설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산주의가 결정적으로 만들어지기 전에 자본주의는 모든 곳에서 결정적으로 파괴되어야만 한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내에서건설될 수 없다.

     

    4. 결론에 대신하여

     

    ICC는 최근 기관지 국제평론161(20186)제국주의 긴장에 관한 보고서를 게재하면서 현 자본주의의 쇠퇴기 해체의 특성을 제국주의 긴장의 진화과정으로 진단하고 있다. 첫째,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세계 경찰에서 자신만을 위한 주요 선전자로 변화하는 점. 둘째, 중국은 지나치게 직접적인 대결을 회피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는 점. 셋째,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지도자와 호전적인 수사가 부상하고 있는 점. 넷째, 유럽연합이 분열화를 향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본주의 해체국면의 특성을 1930년대의 파시즘의 재등장으로 보거나 신파시즘(Neo-Fascism)으로 부르는 일부 입장과 견해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이미 1930년대에 파시즘과 민주주의를 대립적 본질로 보고 반파시즘 투쟁을 민주주의 투쟁으로 동일시했던 오류를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193412월 오토리노 페론(Ottorino Perrone)파시즘? 민주주의? 코뮤니즘에서 민주주의는 국가에 의해 지배되고 통제되는 다른 기관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보면서 이론적 관점과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민주주의와 노동계급 사이에는 환원할 수 없고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가 있다고 규정한다. (비타협2018. 72. 23) 또한 그는 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당과 조직을 자본주의 편에 서서 프롤레타리아트를 반대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파시스트의 승리로 이끄는 노선이었지 프롤레타리아트의 방어와 승리로 이끄는 노선이 아니었다고 결론지었다. (윗글 28)

     

    코뮤니스트 좌파는 부르주아 좌파가 분석했던 방식으로 파시즘을 분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에서 파시스트 국가권력의 침략을 혁명적 계급투쟁의 패배 결과와 완결로 설명했다. 이 시기 부르주아는 파시즘을 정부의 한 형식으로 수용했으며 파시즘, 스탈린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자본주의, 테러 그리고 제국주의 블록에 의한 대량파괴의 현실을 완벽하게 숨기려는 깃발 아래 있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였다. 파시즘은 1917 23년 혁명적 물결 이후 반혁명에 한정되어 있는 현상이다. 오늘날 정부 형식으로 파시즘은 의제에 올라 있지 않다. 트럼프주의 같은 경향을 신파시즘으로 부른다면 이는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억압하는 국가의 부속물로 설명할 수 있다. (코뮤니스트 좌파와 맑스주의 인본주의Fredo Corro 2017. 9월 참조)

     

    그러나 포퓰리즘은 쇠퇴기 자본주의를 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의제에 올라있다. ICC22회 대회의 국제계급투쟁에 대한 결의 (20174)에서 포퓰리즘의 등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코뮤니스트2018 7. 157 -8)

     

    최근의 포퓰리스트의 등장은 이 모든 요인들 - 2008년의 경제적 붕괴, 전쟁의 충격, 테러리즘 그리고 난민 위기 - 에 의해 성장했고 체제 해체와 사회의 두 주요한 계급들 모두 인류에게 미래를 위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농축된 표현으로 나타났다. 지배계급의 관점에서는 70년대 개방경제위기의 출발에서부터 자본주의가 유지되고 특히 전후 호황을 지배했던 케인즈주의 정책이 소진됨을 의미했다. (중략) 포퓰리스트 정책의 본질은 부르주아 사회의 불평등의 정치적 행정적 그리고 법적 공식화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 해결책 (계급 없는 사회)을 내놓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 포퓰리스트의 반동적 정책은 존재하는 위선적인 가짜 평등을 노골적이고 솔직한불법적 차별체제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뮤니스트의 확실한 전망을 하기란 쉽지 않다. 자본주의 쇠퇴기의 마지막 국면으로 보이는 해체의 국면에서 코뮤니스트의 자세를 다음 문항으로 대신한다.

     

    시간은 더 이상 노동계급의 편이 아니다. 그러나 그 그림자를 뛰어넘을 수도 없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1917년 이후뿐만 아니라 1918 - 19년의 투쟁에서 잃어버렸던 많은 것을 되찾아야만 한다. 이 작업을 혁명가들에게 계급의 실제 운동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위기로 드러난 전망을 분석하고 이러한 이론적 노력의 바탕 위에 코뮤니스트로서 입장의 첨단에 설 사람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에 대답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오랜 시간의 끈질긴 작업이 필요하다”(윗글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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