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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천 복간2호」 “스포츠 미투” - 도구화된 스포츠가 만든 현실, 도구화된 인간의 상처
  • 스포츠 미투” - 도구화된 스포츠가 만든 현실, 도구화된 인간의 상처

     

     

    함은주(사회체육학 박사, 문화연대 집행위원)

     

     

      서지현 검사의 미투 폭로가 있은 지 한 달 정도 지난 후였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그 방송사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그를 처음 보았습니다.

     

      빨개진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주먹 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때립니다. 지난 일을 떠올리며 진저리치는 그 모습에 내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살은 말랑말랑한 것도 있고 딱딱한 살도 있는데 선생님 살은 어때요?’라며 손이 훅 들어왔다던 손길. 그 손길이 내 몸도 훑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 미투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 미투라고 했습니다.

      그는 리듬체조에서 보기 드문 동아시아의 스타였고 북한 최고의 리듬체조 선수였습니다. 1991년 영국 셰필드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 리듬체조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했고 유럽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도 3관왕을 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20076, 탈북하여 남한으로 오게 됐고 남한에 정착한지 5개월 만에 대한체조협회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한체조협회의 리듬체조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입니다.

      체조협회의 고위 임원은 그의 급여 인상 문의에 그런 말은 모텔 가서 쉬면서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년여 간 지속적인 성추행을 했습니다. 대한체조협회의 임원은 국가대표선수 선발, 코치 선발 등 중요한 일을 도맡아 했던 사람으로 그 임원에게 꼬이면 대표 선수를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용기를 냈습니다. 대한체육회에 탄원서를 냈고, 대한체육회는 내부감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감사가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그 임원은 사직을 했고 대한체육회는 감사를 중단하고 사건을 마무리하였습니다.

      2년 후, 그 임원은 대한체조협회의 더 높은 고위직 후보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대한체육회는 그의 성추행 탄원 건을 이유로 고위직 인준을 거부했고 그 임원은 대한체육회를 상대로 법정소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상대와는 연인사이로 애정표현을 한 것일 뿐 성추행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방송에서 이 사건을 접했을 때,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포츠 미투가 줄줄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이제 스포츠계도 각성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습니다.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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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시설의 이경희 리듬체조 코치>


    스포츠계의 만연한 폭력과 성폭력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정용철1)(2018)은 지난 여름 체육계 성폭력 문제의 원인분석과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체육계만큼 이 방면에서 독보적(?)인 분야가 있을까라며 성폭력과 폭력의 전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체육계가 미투운동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조용한 것인지 물었습니다.


      ‘침묵의 카르텔’. 그 어느 분야보다 이 침묵의 카르텔이 공고한 곳. 바로 스포츠계입니다.

      미투운동의 본질은 어떤 이의 아픈 외침에 나도 같은 아픔이 있다고 외치며 연대하는 것입니다.

      정용철은 스포츠계에 이런 연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MeToo 사이에 너무나 거대한 쉼표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이 쉼표가 침묵을 강요한다고 말합니다. 침묵을 강요하는 이 쉼표에는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적폐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국위선양으로 대표되는 국가주의적이고 성과중심의 체육정책과 목표, 이를 위해선 훈련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인식과 이의 실천을 위한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훈련방식, 이 과정에 길들여지는 선수들과 쌓여가는 아픔과 침묵들.

     

     

      국가대표 선수의 스포츠 미투; 침묵의 카르텔에 금을 긋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숏트랙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세계 최고의 선수가 오랜 시간동안 코치로부터 폭력과 성폭력에 시달려왔음을 폭로했습니다. 대중은 경악했습니다. 그리고 즉각적이고 집단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선수에게는 위로와 지지를 보여줬습니다. 폭력과 성폭력을 행사한 코치, 이를 관리하지 못한 종목단체와 대한체육회, 그리고 관련 정부부처에는 비난과 규탄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지난번 스포츠 미투와 다릅니다. MeToo 사이의 쉼표가 조금 작아진 듯합니다. 금메달리스트의 폭로 이후 유도, 태권도, 정구, 양궁 등 스포츠 미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침묵의 카르텔에 금이 그어졌습니다. 그 금 사이로 스포츠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국회에서도, 정부의 여러 기관에서도 이제 스포츠계의 폭력과 성폭력 문제를 다룹니다. 그 어느 때보다 스포츠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태의 구조적 원인 진단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제 스포츠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한 선수가 그어 준 금이 스포츠가 탈피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듯한 기적 같은 기회. 그런데 이 기적 같은 기회는 아프고, 불편한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픈 스포츠, 불편한 우연

     

      20181,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한 달여 남은 상황에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함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결성이 결정되었습니다. 갑작스런 단일팀 구성 결정으로 논란과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불식시키고 선수들도 격려할 겸 국가대표 훈련장인 진천 선수촌을 방문하기로 결정합니다.

      진천 선수촌에서 여러 선수들을 만나던 대통령이 이전 올림픽에서 큰 활약을 보여준 금메달리스트 선수를 찾습니다. 그러나 이 선수는 선수촌에 없었습니다. 전날 코치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한 선수가 선수촌을 이탈했기 때문이죠. 관계자들은 이 선수가 심한 감기몸살에 걸려 잠시 선수촌에서 나가 있다고 했지만 거짓이었습니다. 곧 선수가 코치로부터 폭행당한 사실이 밝혀졌고 코치는 고발당해 법적 조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 년여의 시간이 지난 20191, 코치의 판결 선고를 앞두고 성폭행과 관련한 추가 폭로가 이루어졌습니다. 용기 있는 이 선수의 폭로는 또 다른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스포츠계를 각성시키고 스포츠계의 구조와 대한민국의 체육정책의 패러다임의 변화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결성의 우연, 논란과 대통령의 선수촌 방문, 대통령 방문 전 날 폭행당한 선수, 그리고 그 선수의 선수촌 이탈. 이렇게 불편한 우연들이 겹쳐서 만들어진 스포츠 혁신의 기회는 정상적이지 않은, 그래서 아픈 우리 스포츠 현실을 조명합니다.

    평화를 내세우며 정치·외교적 도구로 사용된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국위선양을 궁극의 목표로 성과를 위해 훈련에만 몰입하도록 하는 집단적 합숙훈련 방식, 폭력까지 사용하는 훈련 환경과 선수의 관리 및 통제 등. 이 하나의 사례만으로도 국가를 위한 도구로서의 스포츠, 국가적 목표달성을 위해 도구화된 인간으로서 선수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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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를 위해 도구화된 스포츠가 만들어낸 현실: 구화된 인간의 상처

     

      “이 법은 국민체육을 진흥하여 국민의 체력을 증진하고, 건전한 정신을 함양하여 명랑한 국민 생활을 영위하게 하며, 나아가 체육을 통하여 국위 선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국민체육진흥법 제1조입니다.

      우리나라의 스포츠 정책은 국민체육진흥법을 근간으로 합니다. 국민체육진흥법의 취지와 범위에 벗어난 것은 정책화되거나 사업이 되지 않습니다. 국민체육진흥법이 바로 대한민국 체육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르면 우리나라 체육진흥의 궁극의 목적은 국위 선양입니다. 국가에서 체육의 역할은 국위선양을 하는 것입니다. “체육운동을 범국민화하여 학교체육 및 생활체육 진흥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체력증진, 여가선용과 복지향상에 이바지하며 우수한 경기자 양성으로 국위선양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대한체육회의 정관 및 각 종목 협회의 정관에도 국위선양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훈련 관리 지침을 비롯한 여러 규정에 투철한 국가관을 가지고 훈련에 정진하도록 교육한다는 규정이나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국위를 선양’, 스포츠를 통해 민족의 영광을 새롭게 창출과 같은 문구들이 존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스포츠는 국위선양을 위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선수들, 특히 대표선수들은 이를 위해 모든 노력과 희생을 강요받습니다.

      스포츠에서는 신체의 움직임, 즉 스포츠 기술에 기계화와 테일러리즘을 적용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고통스런 노력을 쏟는 일을 도덕으로 간주합니다. 경쟁은 스포츠의 본질적 요소 중 하나인데 국위선양을 위해서는 성과가 있어야 하고, 그 성과란 경쟁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것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기는 것, 상대방을 패배시키는 것, 혹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기록을 갱신하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엘리트 스포츠 선수는 극단적인 스포츠 전문화 추세를 피할 수 없게 되고 신체를 경쟁을 위해 최적화 된 상태로 구성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마르크 페렐망2)(2014)은 선수들 간의 경쟁을 만족할만한 방식으로 치러내기 위해서는 이성적 능력이나 개념 혹은 논리 등의 동원보다는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한신체활동만이 요구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기계적으로 도구화된 신체 능력을 더욱 중요시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그 과정에서 선수들을 효율적으로 도구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스포츠 기술 향상을 위한 체벌의 정당화나 학습된 폭력과 위계구조의 재생산이 이런 과정에서 나타납니다. 한때 지도자들은 선수들을 장악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성관계가 선수들을 장악하는 주요한 방법이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선수들이 도구화되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사라집니다. 당연히 가져야 하는 보편적 권리를 침해받습니다. 그리고 매우 큰 상처를 받습니다. 이는 국가를 위한 것이며, 금메달 획득과 같은 성과가 나타나면 보상받는 희생이라고 믿었습니다. 운동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알지 못했기에 아픔과 상처를 드러낼 수도 없었습니다.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독이 든 성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승리’, ‘금메달이라는 결과를 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이를 위해 인권마저도 유보할 수 있다는 이런 신념은 버려야 합니다. 이제 국가도, 국민도 스포츠계 구성원의 인권을 유린하며 얻은 승리나 금메달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동안 스포츠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국가발전과 함께 스포츠도 발전했습니다. 사회 발전의 이면에는 그 발전이 만들어 내는 위험을 고스란히 떠맡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익은 위로 가고 위험은 아래로 분배되는 것이 현대사회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스포츠 발전이 만들어 낸 이익이 선수들에게 돌아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스포츠 발전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고 올림픽에 메달 집계 종합순위가 세계 10위권 언저리에 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위험요소들은 고스란히 선수의 몫이었습니다.

      엄기호3)는 세상이란 게 누구의 희생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인간은 남의 생명을 뜯어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일말의 괴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야차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만드는 것은 위험과 안전으로 양극화하여 통치하는 국가라고 말합니다. 스포츠도 그랬습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에 환호하여 선수들의 아픔과 슬픔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의 주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경쟁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목적인 신체활동입니다. 경쟁의 최상위 형태가 국가대항 스포츠 경기이고 따라서 스포츠를 즐기는 최상의 행위가 올림픽과 같은 국가대항 스포츠 경기일 것입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는 스포츠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는 것이고 국위선양은 이에 따르는 부수적 효과일 뿐입니다. 즐거움의 추구는 인간의 본능이고 최상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하는 인간이 스포츠에서 최상의 위치에 오르고자 하는 것, 즉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욕구, 목표일 것입니다.

      스포츠 경쟁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것, 최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선수 개인의 목표이지 국가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는 개인들이 스포츠를 통해 최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국위선양이나 사회통합, 건강과 같은 것은 스포츠 활동을 하며 얻게 되는 부수적 효과입니다. 그런 부수적 효과의 유용성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포츠의 본질과 원칙을 충실히 지키려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이번 스포츠 미투를 계기로 상처 입은 선수들은 잘 보듬고, 더 이상 상처주지 않는 스포츠 정책이 계획되고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주>

    1. 정용철(2018). MeToo사이에서 체육계 미투는 왜 번지지 않을까를 묻다. 체육계 성폭력문제의 원인분석과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토론회 자료집.

    2. 마르크 페렐망(2014). 야만의 스포츠. 서울: 도서출판 삼화. Marc Perelman(2008). Le Sport Barbare. Michalon.

    3. 엄기호(2014). 단속사회. 서울: 창비.



    *이 글은 '국가주의 엘리트 스포츠'에 반대하는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의 입장과는 다르지만, '스포츠 미투'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로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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