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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글씨 3호] 자본과 어용세력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 간담회 (유명자, 봉혜영)
  • 조회 수: 4172, 2015-07-22 12:39:55(2015-07-22)
  • 노동자 투쟁의 원칙과 연대에 대하여
    특집: 자본과 어용세력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 간담회




    유명자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투쟁하는 노동자)
    봉혜영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투쟁하는 노동자)
    이수지 (동국대 달려라 진보)
    정현철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사회자)



    정리|국제코뮤니스트전망


    *이 간담회는 작년 10월 말에 진행되었습니다. 장소를 빌려주신 노들센터와 참여해주신 동지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노동자운동 200여 년의 역사는 자본에 대한 투쟁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어용과 타협, 변절 세력과의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미국의 노동조합연맹(AFL)은 노동조합의 요구를 경제적 요구에 한정시켰고, 투쟁보다는 협상을 고집했고, 더 나아가 아래로부터 투쟁이 터져 나오는 경우 폭력배를 동원하여 진압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의 노동조합운동도 자본에 대한 투쟁만이 아니라, 어용노조와의 투쟁을 통해서 성장했습니다. 1930년대 자동차, 철강, 화학 등 점거파업과 대중파업을 통해 미국의 노조운동은 어용노조와의 투쟁을 통해 성장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미국만이 아니라 68혁명 이후 남미와 북미,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수천 번의 비공인파업(와일드 캣)과 점거투쟁은 자본과 타협하려는 어용과 자본협력 세력에 맞서 노동자 스스로 아래로부터 벌인 투쟁이었습니다. 자본의 도구화, 국가기구화 되어가는 노조들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은 최근에도 세계 각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새로운 주체와 새로운 운동이 탄생하는 근거지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번 기획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민주노조 운동에서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면서 가장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동지들의 이야기입니다.




    1. 노동자 투쟁의 가장 큰 장벽이자 반드시 넘어서야 할 내부의 적과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과 민주노조운동의 현실과 노동자 투쟁의 원칙에 대해 토론하고자 합니다.


    2. 가장 어렵지만 흔들림 없이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소중한 무기인 노동자연대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투쟁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노동자 단결을 공고히 하고 확장할 방안을 토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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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자 : 투쟁의 전개과정과 어용세력의 등장 배경 그리고 계속 투쟁하고 계신 이유에 대해 봉혜영, 유명자 두 동지께서 먼저 간략히 설명해주실까요.


    봉혜영 : 저희의 경우는 투쟁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어용세력이 등장했습니다. 사실 서울일반노조(상급단체는 서울본부)에 가입한 뒤 사측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 싸움에 대한 전체적 개요를 듣고 나서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이야기는 “일주일 안에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얘기한 것이 우리가 요구한 “기재된 경력을 인정받고 신규채용이 아닌 경력직으로 고용보장 받아야 하는데, 우리 여력으로는 얻을 수 없으니 겉포장은 신규채용으로 하고 실제 내용은 그것이 모두 포함된 것으로 받아 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잘 몰라서 “겉모습은 신규채용으로 하고 실제내용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믹서해서 받아 오겠다”는 말이 매우 이상하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했습니다만 노조 활동이나 투쟁을 제대로 해본 경험이 없는 탓에 조합원들에게 제 생각을 말하지 못한 상태에서 투쟁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다 나온 것이 1년짜리 신규채용을 받아오는 거였는데, 그들은 “1년이 넘으면 5만 원을 더 주는 제도가 있는데, 5만 원을 지급 받을 수 있게 했으니 경력을 인정받은 거다”라는 식으로 신규채용 안을 설명하는 거였습니다. 상급단체가 투쟁을 제대로 하지도 않은 채 이 싸움을 빨리 끝내겠다고 판단 한 것 자체를 저는 어용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자 : “신규채용으로 포장 하되 내용은 그것이 아니다”라는 건 관료적 합의의 전형적 방법인데, 문제는 그것보다도 후퇴된 1년짜리 안이라는 걸 어떻게 해명하던가요?


    봉혜영 : 그에 대한 해명으로 그들은 “우리가 갖고 있던 동력에 비해 분회장이 원하는 것은 너무 크다. 예를 들면 오천 원밖에 없는데, 자꾸 만 원짜리 신발을 달라는 격이다”라고 많이 얘기했습니다. 그나마 1년짜리 신규채용 안이라도 얻어 온 것이 우리의 내용과 외부적인 여러 조건으로 볼 때 굉장히 좋은 안을 받아 온 것처럼 얘기를 했습니다.


    사회자 : 애시 당초 빠르게 승리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한 건 상급단체 아니었나요? 서울본부가.


    봉혜영 : 서울일반노조가 얘기한 것이죠. “일주일 안에 승리할 수 있다. 자기들은 한 번도 진 싸움이 없다”고 했는데 그제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런 안을 받아와서 합의해 왔으니 질 수가 없겠구나. 신규채용 안 같은 걸 가져와서 승리라고 얘기하는데 어떻게 지겠습니까?


    사회자 : 그 안은 정확히 서울일반노조가 가지고 온 건가요, 서울본부가 가지고 온 건가요?
     
    봉혜영 : 서울본부가 가지고 온 것인데, 저희가 서울본부 “직가입”인데도 아니라고 주장하며 서울일반노조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 서울본부는 자기네들이 가서 안을 가져왔지만, 지금 공식적인 입장은 그것은 서울일반노조가 한 것이다. 이렇게 발을 뺀다는 것이죠? 전임 집행부 이재웅 씨.


    봉혜영 : 네. 전임 집행부.


    사회자 : 그러면 그 안이 나왔을 때 조합원들 반응은 어땠나요?


    봉혜영 : 조합원들은 그전 5월에 이미 실업급여가 끊어지는 시점이라 생계문제도 투쟁도 너무 힘들다고 접고 집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8명 중의 5명이 집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는데, 서울본부가 뒤늦게 조합원들이 투쟁을 중단했다는 것을 알고 다 불러서 모아놓고 “좋은 안을 받아올 테니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조금만 더 참고 일상으로 돌아가라.”라고 했습니다.


    사회자 : 제명 건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봉혜영 : 제명을 철회하거나 아니면 어떻게 한다고 결정된 바가 없습니다. (서울일반노조는 분회와 갈등을 빚자 분회장을 제명하겠다고 위협해왔다. 결국 서울일반노조는 간담회가 있은 지 한 달여 지난 12월 4일 일방적으로 분회 해산을 통고했다 – 편집자)


    사회자 : 필요하면 언제든지 꺼낼 수 있다는 거군요. 지금 정확한 소속은 서울일반노조 개발원 분회이고, 두 분이 해고상태로 있는 것이고, 나머지 여섯 분은 탈퇴한 상태인가요?


    봉혜영 : 나머지 여섯 분은 탈퇴했습니다. 신규채용 안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했던 것이 노조 탈퇴였습니다. 노조 탈퇴서를 정식적으로 쓰지 않고 자동이체를 해지하는 방식이었으니까, 3개월 동안 자동이체가 끊어지면 조합원 자격의 유무를 결정하게 되는데, 그 3개월 유예 때문에 당시 투쟁의 지속 여부에 대한 투표가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사회자 : 투표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봉혜영 : 당연히 5:3이죠.


    사회자 : 그래서 서울일반노조는 그 투표결과를 근거로 해서 정보개발원분회 투쟁은 종료된 것이라고 선언한 거죠?


    봉혜영 : 네. 대의원 대회에 와서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찬반 투표가 합의안에 대한 찬반 투표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서로 하나씩 나눠 가진 서류에도 “투쟁 지속에 관련된 찬반투표”였는데, 대의원 대회 같은데 와서는 “합의안 찬반투표 ”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상반기, 하반기 결산 보고서에도 열심히 투쟁했고, 그래서 합의안을 이끌어냈고, 합의안에 찬성한 5명은 들어갔고 합의안에 불만을 가진 나머지 3명은 싸우고 있다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 현재에도 투쟁하고 있는데, 서울일반노조의 지원은 받고 있나요? 조합비는 내고 있나요?


    봉혜영 : 전혀 못 받고 있어요. 당연히 조합비를 내고 있었는데도 투쟁 관련해서 도움을 못 받는 건 둘째 치고 오히려 방해하는 수준이었죠. 지금은 아닌데 전에는 연대하는 동지들이나 아는 동지들에게 집회 관련 단체문자를 보냈을 때 “왜 접은 투쟁에 문자를 보내고 연대를 요청하느냐, 그런 얘기들을 왜 하느냐?” 라고.


    사회자 : 소속노조의 동의도 없이 분회가 왜 일방적으로 투쟁계획을 세우느냐? 지금도 그런 말을 하나요?


    봉혜영 : 지금은 모르쇠로 외면하고 있고, 실제로 서울일반노조 운영위에서 각 투쟁 사업장을 소개하는 회의 자료에 저희는 빠져 있어요. 


    사회자 : 사고 분회로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봉혜영 : 운영위 참여하라는 문자는 옵니다. 운영위 참여 독려 문자가 없어서 조합원이 있는데 참여를 독려하는 문자가 왜 없느냐고 항의하자 문자는 보내주는 데, 운영위 보고 자료에 저희 투쟁이 빠져서 다른 투쟁하는 사업장들과 상황 공유가 안 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대화가 안 됩니다. 운영위에 처음에는 계속 들어갔는데, 우리의 입장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다른 분회장들이 저에게 “상급자는 스승님이고 하늘이다, 제자인 너희가 스승이 하는 일에 어떻게 반기를 드느냐”고 합니다. 서울일반노조 위원장이라는 분은 안건 상정 요구도 무시하고 “시끄러우니 나가라”고 합니다.


    유명자 : 재능의 경우는 지금까지의 7년 투쟁에서 최근 어용세력으로 등장한 사람들만을 어용세력이라 볼 수는 없고, 애초에는 2007년 5월 17일 개악된 단협을 체결한 이현숙 집행부부터 어용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2007년 12월 21일 저와 함께 첫날부터 투쟁했던 사람들이 그들과 손을 잡으면서 다수파가 된 거죠. 당시 이현숙 집행부가 투쟁 중이었는데 회사가 2008년 10월에 단협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탈퇴공작을 들어갑니다. 2008년 10월 단협 파기 직전에 투쟁하고 있던 조합원들을 차례로 해고를 했는데, 거기에 유득규, 강경식, 박경선, 여민희, 고(故) 이지현 조합원 등이 있었던 거였죠. 2010년 11월부터 전임 이현숙 집행부에서 임원을 했던 사람들은 2010년 11월부터 현장에 복귀해 있는 상태였는데, 12월에 회사가 결국 마지막까지 현장에 있던 조합원들의 색출에 나섭니다. 관리자들이 면대면 면담을 하면서 각서를 앞에 놓고 “지금 계속 투쟁을 하고 있는 조합원이라 주장하는 불법 임의 단체 구성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을 하고, 불매운동을 불법적으로 주도 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에 대해 회사가 책임을 묻고 있다. 너희가 그 활동을 같이하지 않아도 그 단체의 구성원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연대책임을 묻을 수 있다.” 이렇게 협박하면서 눈앞에 탈퇴서를 놓았던 거죠.
    그 앞에서 양심에 걸려 차마 노조를 탈퇴하지 못한 조합원들은 아예 퇴사해 버립니다. 현장에서 생계나 경제 사정 때문에 계약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은 탈퇴서를 내게 되는데, 그때 이현숙 집행부에 있던 사람들은 단협 개악하고 집행부를 사퇴하고 나서도 노조에 있으면서 현장에 남아있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사퇴서를 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현숙과 지방에 있는 조합원 3명까지 총 4명이 2010년 12월까지 추가로 해고됩니다. 따라서 2010년 12월부터는 해고자가 11명이 되었고 여기에 2001년 해고된 황창훈까지 포함해서 총 12명이 해고자로 남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때부터 서비스연맹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1월부터 한 두 달간 계속 회사와 계속 접촉을 했어요.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고. 갑자기 2월쯤에 와서 회사와 만나고 있는데, 회사와 만난다고 하지 않고 한남동의 무슨 라인을 통한다는데, 나중에 보니 경찰청 정보국인가 뭔가가 있다고 하더군요. 장기투쟁 사업장 1,000일을 넘어서면서 투쟁사업장 중에 경찰들이 집중하는 사업장이 되었죠.


    혜화경찰서에서도 112 신고가 1년 넘게 전국 1위를 기록할 정도였고요. 서울지방경찰청이나 경찰청에서도 핵심 주요 노사 분쟁 사업장이었고, 계속 그쪽에서 어떤 안을 내면 끝날지를 서비스연맹이 비선을 통해서 조율했던 거였죠. 거기를 통해 회사로부터 건너 건너서 나오는 안을 2011년 2~3월부터 계속 던졌습니다. 그때 초반에 나온 안이 “단협 불가, 해고자 12명 중에서 지부장, 사무장이었던 유명자, 오수영은 3년, 나머지는 18개월, 6개월 유예기간을 두고 단계별 복직, 황창훈은 복직이 불가하고 36개월×50만 원 지급할 테니 퇴사해라.” 이런 안까지도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 안을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초반부터 계속 강종숙, 유명자, 유득규를 만나면서 흘리고 타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장기투쟁에 지쳐가고 빨리 끝내고 싶어 했던 조합원들과의 갈등이 불거지게 됩니다. 이 안이 던져지면서 갈라치기가 시작되었던 거죠. 서비스연맹에서 중재한답시고 2012년 4월에 최종적으로 우리한테 던진 안은 “해고자들은 모두 복직 시키겠다. 황창훈을 포함해서 유예기간 6개월인가 얘기를 했고, 그 다음에 단협은 복귀 후 일정을 잡아서 추후 논의한다.” 그때도 말 그대로 ‘선 복귀 후 단협’이었습니다.


    일단 그것을 당시 학습지노조 중앙위원의 역할을 했던 유득규, 강종숙, 유명자 3인과 재능지부 임원인 오수영에게 던졌고, 거기에서 2:1:1로 갈렸습니다. 강종숙, 유명자는 반대, 오수영은 세모, 유득규는 그 안으로 교섭하자는 거였죠. 그렇게 해서 그 안을 거부 했더니 서비스연맹이 공식적으로 앞으로 재능지부 투쟁에 관여하는 일 없을 것이고, 지원하는 일도 없을 거다, 그리고 서울본부, 학습지 노조, 서비스 연맹 3 주체가 하고 있던 공투본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2012년 4월부터 손 털고 나갔습니다. 그전에도 대단하게 연대하거나 지원한 것도 없었지만요. 그렇게 공식적으로 입장 밝혔고, 그러고 나니 회사도 연맹을 통해서 안 된다는 것을 결국 알기는 알았습니다. 결국 사측에서 공식적으로 5월에 학습지노조에 교섭 요청을 해왔고 5월 중순부터 교섭이 시작됐습니다. 투쟁하고 나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교섭이 시작되었고, 5월 17일부터 7월 11일까지 11차례의 교섭을 했는데, 결국은 마지막까지 선 단협, 복직과 동시에 단협 체결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7월11일 최종적으로 교섭이 결렬됐고, 이후 사측에서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문구만 바뀐 최종안을 8월 27일에 던졌어요. 우리는 본사 앞에서 하는 결의대회를 통해 8월 29일  “회사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회사와 더 이상 대화는 없다”고 최종안에 대한 최후통첩을 사측에 합니다.


    그 이후 이현숙 집행부에 있다가 해고되었던 자들과 타협을 통해 이 투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했던 세력이 확실하게 손을 잡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회의석상에서 투쟁계획이나 실천에 관한 논의는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런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강종숙과 유명자의 폭언 폭행에 대한 사과와 해명요구를 계속하면서 지부 회의, 학습지 노조 중앙위가 계속 파행을 겪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번도 회사 안을 받자고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두 사람의 도덕성만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들의 의도를 완전히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2012년 12월 공식적으로 전체 학습지 노조 임원들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임시대대를 요구하면서 대대에 연판장을 들고 옵니다. 한 번도 선거를 보류나 연기하거나 임원의 임기를 연장하겠다는 의도가 어느 의결기구에도 결정된 바가 없고 언급한 바도 없는데도 나머지 재능지부 해고자들의 서명을 받아서 먼저 선수를 쳤던 거죠. 내용상으로도 앞뒤도 맞지 않은 연판장이었는데, 이미 8월에 교섭이 결렬되자 유득규와 오수영이 사퇴합니다. 가장 중요한 교섭이 결렬되어 더 적극적으로 공세적인 투쟁을 펼쳐야 할 시기에 임원 두 명이 사퇴한 거죠. 그 의도야 어떠하든 당시 강종숙 위원장은 유득규를 설득했습니다. 아무 일도 시키지 않을 테니, 사측도 보고 있는데 그냥 직책만 유지해 달라고 했는데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스스로 사퇴했기 때문에 중앙회의 체제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결국은 12월 선거를 해야 한다고 했던 겁니다. 어찌 되었든 선관위를 꾸렸는데 현실적으로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빼고 나면 사람이 없어서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이들은 선거연기나 임기연장을 막기 위한 선수를 쳤고, 선관위 통해서 대대에 연판장을 제출했습니다. 이에 의장인 강종숙위원장은 물론 대의원 모두 이의제기 없이 선거가 대의원 대회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그 사안이 굉장한 논쟁이 될 줄 알았겠지만 막상 이렇게 되자 그들은 선관위를 꾸릴 수도 없었습니다. 이들이 그렇게 투쟁에 대한 고민보다 선거에 집착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는 이후의 행보들에서 다 드러납니다. 투쟁을 마무리 할 정세였는데도 불구하고 조직내부 분열을 가시화시키며 종탑농성을 한 목적이 무엇이었는가는 이후 비대위 구성, 농성행태, 8·26합의 등으로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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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2월 11일이 설날이었고, 앞뒤로 5일간 연휴였습니다. 2월 2일 유득규가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만났더니 강종숙, 황창훈, 유명자 세 사람에게 고공농성을 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누가 올라가는지를 알고  일단은 세 명 모두 반대했고, 사측과의 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굳이 그런 투쟁방식을 선택 할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어찌 되었든 회사의 안이 나올 상황이었고, 강종숙 동지 같은 경우 마지막에나 어쩔 수 없을 때 선택을 고민해야 하는 고공농성이란 자학적인 투쟁을 싫어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도 엄청나게 싸웠습니다. 반대했는데도 결국 당사자들이 결의한다고 해서 그렇게 됐고, 날짜를 왜 굳이 설 연휴 전에 올라가느냐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올라가자마자 회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날 교섭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어요. 구두로는 2월 6일 저녁에 교섭요청이 왔고 다음날인 7일에 바로 교섭공문이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고공농성 시작하고 곧바로 비대위를 띄웠어요. 회사에서도 빠르게 대응하는데 강종숙이 대표자로 있는 학습지노조에 공문을 보낼 수 없으니까요. 비대위에서는 2월 9일에 연휴가 끝난 다음 2월 13일 날 공문을 보내고 13일 이후에 교섭하는 것으로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회사는 설 연휴 때도 교섭하자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시기에 회사에 보내기로 한 공문도 안 보내고 총회를 열어서 비대위부터  추인했더라고요. 비대위를 띄우는 데서부터 다시 노조권력을 잡고자 했던 이현숙 전(前) 집행부 어용세력과 이 투쟁을 빨리 끝내고자 타협하고 싶어했던 유득규, 여민희, 오수영 세력의 이해관계가 맞으면서 손을 잡고 다수파를 만들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사회자 : 한남동 라인이라는 건 경찰청 정보국 경제분실을 말하는 건가요?


    유명자 : 네. 맞아요.


    사회자 : 2010년에 네 명이 추가로 해고된 다음에 서비스연맹이 개입하기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그전에는 개입 안 하고 방관만 하고 있었던 건가요?


    유명자 : 2007년 12월 21일 천막 농성 투쟁하면서 맨 날 두드려 맞으니까, 어쩔 수 없이 서비스연맹 부위원장이 상근자 한두 명 데리고 몇 번 오긴 했었는데, 그 뒤로는 전혀 오지 않았어요. 지대위가 꾸려지면서 참가조직 동지들이 어떻게 되던지 연맹의 발목을 잡아야 한다고 계속 얘기했습니다. 결국 2008년 7월경에 그 당시 수석 부본부장인 박승희 동지가 더 이상 이렇게 가면 안 되지 않느냐, 2009년에는 공투본을 띄우자며 서비스연맹, 서울본부, 학습지 주체가 뭐든지 해보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공투본이 아니었고 3자가 만나자 그래서 2008년 9월경 서울본부가 계속 얘기하니까 서비스연맹 위원장도 나왔던 거였고요. 그래서 세 주체가 공투본을 띄우자고 합의하고 8월경에 띄웠는데 9월 추석 가까이 와서 서비스연맹 위원장 강규혁이 추석 안에 끝내자고 하면서 자기가 이런 안을 짜봤다면서 얘기하는 게, 단협은 당장 풀지 못하겠다, 대신 복직 이후 단협을 체결하겠다는 각서가 담긴 공증을 회사한테 받자고.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면서 단협을 뒤로 뺏어요. 해고자들 얘기하면서 황창훈은 복직이 힘들다고 했고. 해고자마다 해고형태가 달라서 계속 강규혁이 갈라치기를 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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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자 : 수지 동지는 많은 투쟁사업장 중에서도 유독 이 두 군데 다 연대를 하시고 계신데요, 재능과 개발원, 일종의 사고 사업장에 가까운 이런 곳에 특별히 연대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수지 : 학교에서 ‘달려라 진보’라고 이름은 되게 거창한데 PD 계열 운동을 하고 있던 선배들이 너무 제각기 따로따로 하다가 잘 안 되니까 한 번 모여서 해보자고 만든 거예요. 저는 학생회 운동을 하다가 그런 게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어서 2012년부터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연대도 다니고 쌍용차 투쟁 등에 가기 시작했어요. 학교 청소노동자 분들이 일반노조에 소속되어 계신데 거기 연대를 하는 와중에 학교에서 5분이면 보건복지정보개발원 건물에 갈 수 있는데 어떻게 안 가고 있냐 그런 얘기가 나와서 사실 처음에는 그분들과 같이 갔던 거였어요. 아마 정보개발원 투쟁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을 거예요. 솔직히 개발원은 거리가 가까워서 시작한 거고, 재능투쟁은 쌍용차랑 현대차 투쟁이 크게 이슈화되고 유명해지면서 시청에서 집회를 많이 했잖아요. 거기를 학생들끼리 모여서 재미있으니까 자주 가고 하다 보니 바로 맞은편에 재능이 있는 거예요. 횡단보도만 건너면 재능이 있는데, 상황이 많이 달랐죠. 쌍용차는 항상 사람 많고 북적거리고 카페도 있는데, 재능은 지금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사람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고. 농성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데 파라솔 하나 달랑 있고, 농성하는 건지 무슨 시위를 하는 건지 잘 모르는 와중에 거기도 가봐야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가게 되었죠. 처음에는 집회만 참여하다가 집회에서 갑자기 저한테 발언을 시키고 노래를 시키고 점점 적극적으로 하게 되면서 처음 본격적으로 한 것이 저희끼리 날 정해서 파라솔에서 농성하실 때 일주일에 한 번씩 몇 시간 농성 지키는 것부터 했고, 나중에 혜화로 농성장을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연대하게 되었죠.


    사회자 : 재능교육 투쟁이나 정보개발원 투쟁보다 앞서서 먼저 가야 한다고 했던 곳은?


    수지 : 쌍용차와 같이 큰 집회, 그런 곳을 가고 싶어 했고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소수인 사업장에 지속해서 연대하는 것은 우리도 힘들지 않느냐, 우리도 소수인데 어떻게 우리가 소수를 연대하느냐, 그런 논쟁이 있었죠. 근게 결국 그게 논쟁이 흐지부지 될 수밖에 없는 게, 어쨌든 연대를 하는 사람만 계속하게 된다는 거죠. 연대는 그냥 하면 되는 거예요. 저희 입장에서는 집회 가면 되는 것이고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는 것이고.



    사회자 : 투쟁사업장에서 내부투쟁(대립)이 발생하면서 연대 세력의 지형도 변화했습니다. 예를 들어 2~3년 전엔 재능교육 투쟁에 저와 같이 연대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반대쪽에 가 있고, 연대하는 입장에서는 단순히 의견차이일 수도 있는 데 다른 집회에서 만나도 서먹서먹해지고, 어떤 경우는 아예 아는 체 하지 않는 경우도 있더군요. 연대하는 사람이 이 정도인데,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훨씬 더 노골적으로 많이 보일 것 같은데,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그리고 장기투쟁과 내부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소수가 되면서 연대세력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볼 수도 있는데, 연대의 확장에 대한 고민이나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봉혜영 : 저희 같은 경우는 처음에는 상급단체(서울일반노조)에서 집중을 해주는 척했는데, 그래서 일반노조 조합원들이 많이 왔었어요.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이 제일 많이 오셨고, 학생들도 같이 와서 숫자상으로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내부문제가 발생하니까 청소노동자들은 상급단체인 서울일반노조의 손을 들어주고 저희를 외면했습니다. 결국 학생들만 남게 되면서 연대 인원은 지금처럼 줄어들게 되었죠. 하지만 훨씬 더 많이 투쟁하는 동지들을 만날 수 있었고, 저희는 오히려 상급단체를 뛰어넘는 투쟁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투쟁을 시작했을 때부터 재능교육 동지들 포함 그런 동지들을 만나서 같이 투쟁을 하고 싶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투쟁은 그런 투쟁이었는데, 상급단체를 통해 투쟁하다 보니 거의 7~8개월이 다 되도록 그런 관계를 전혀 만들지 못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것을 깨고 새로운 연대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의가 있고, 재능교육 투쟁 관련해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제 입장이 분명해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모호한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동지들의 모습도 되게 많이 보게 되었고요. 자신들의 연대가 끊길까 봐 자기가 명확하게 누굴 지지하고 왜 지지하는지 구분하지 않고 그런 태도를 보였을 때 답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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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하는 동지들이 현장에서 가장 첨예하게 느끼는 부분들을 상급단체 상근자들은 한 치 건너 두 치라서 잘 모를 수도 있지만, 함께 투쟁하고 연대하는 동지들은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기 때문에, 어용 문제이든, 운동의 방향에 대해서든, 정말 뼈저리게 보고 느끼면서도 오랫동안 투쟁했던 동지들이 자기 입장이 없다는 것에 어느 순간 몹시 화가 났어요. 그래서 목소리를 좀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재능투쟁 관련해서 아주 가볍게 페이스북에 글 한 번 올리고 저희 집회에서 제 입장을 아주 살짝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게 일파만파 커져서, 제가 그런 발언 한마디 할 때마다 연대단위가 떨어져 나간다는 이야기가 공대위에서 나왔어요.


    사회자 : 공식적으로 연대를 안 하겠다고 나간 단위도 있나요?


    봉혜영 : 아니 없지요. 하지만 이야기가 다시 들려오죠. 저의 발언이 연대 온 동지들을 배려하지 않은 불편한 발언이라면서 그것은 곧 우리 집회에 연대 오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고. 그리고 실제 연대가 줄었어요.


    사회자 : 장기 투쟁 사업장에서 손 하나라도 아쉬운 시점이 돼버리면 분회장님처럼 그런 얘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게 딜레마일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도 분회장님은 그런 발언을 거침없이 하셨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봉혜영 : 저는 어차피 상급단체 외면을 받고, 새롭게 시작되는 투쟁이었기 때문에 더는 고립되어도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명이 남든 두 명이 남든 투쟁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기도 했고. 사측과 맞서 싸우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끊임없이 싸워나가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한 명의 연대 숫자가 중요하긴 하죠. 왜냐하면, 맨 날 사측이 머릿수 세고 있으니까. 열 명 오는 것, 이십 명 오는 것, 분명히 중요해요. 맨 날 오십 명 오다가 상급단체 떨어지니까 이십 명을 못 채우네. 그런 파악 다 되고 있지만, 내 투쟁이 정리돼서 끝나는 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파급효과가 있잖아요. 이렇게 내 투쟁이 어정쩡하게 상급단체 의도대로 하면, 상급단체 말 안 들으면 원하는 투쟁 못 한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셈이죠. 그래서 나만의 투쟁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잘못된 부분들 인정하고 하나씩 고쳐 나가자는 거예요. 한 명의 손이라도 아쉽지만, 그 손이 어떤 손인지 명확하게 진단하고 손을 잡자, 상급단체 관료들이 못 하는 것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사회자 : 답변 잘 들었습니다. 사실 유명자 동지가 제일 가슴앓이를 많이 하셨을 거로 생각하는데, 당장 작년만 해도 같이했던 사람들 상당수가 안 보이기도 하고,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와 관련해서도 한 차례 논란이 있었고, 서부비정규센터와 종탑세력이 연대하는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도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네요.


    유명자 : 운동이 점점 상층에서는 관료화를 넘어 어용화로 아니 우경화로 가는 게 있고, 현장단위에서는 이게 친소관계로 가요. 점점 더 심해지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모 진보정당은 내부문제로 서로 반대하는 그룹이면 각각 환구단과 종탑으로 갈라져 연대하고 사실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오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사실은 그 당에서 영향력 있는 몇 동지들이 재능집회에 오지만, 집중결의대회와 같은 비교적 큰 집회 때 자기 당원들을 조직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당에서 재능투쟁 연대 가자고 하면 그 안에서 벌어질 일이 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가장 중심에서 처음으로 갈등 관계가 대놓고 드러난 곳이 서부비정규센터였어요. 나중에 들어보니까 거기는 투쟁하는 곳은 특별히 정치 입장을 가리지 않고 다 연대한다는 식으로 활동을 해왔고, 종탑세력 일부와는 지역주민, 회원, 운영위원 등의 관계이기도 했고.




    사회자 : 최근 들어서 어용화의 한 특징 증의 하나가 상급단체가 어용세력으로 등장하는 건데 거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보기에 연맹이나 산별노조가 어용화 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투쟁에 의한 교섭력으로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의존하기 시작하면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섭이 안 풀리면 국회의원 찾아가거나 하는 방식이 가끔 통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무래도 자본은 정치권력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두려워하는 속성이 있기 마련이고. 소문이 나면은 자기네들 이미지에 문제가 생기니까. 그러니 이 방식이 쉬운 방식이 되는 거죠. 굳이 회사 앞에서 집회 안 해도 되고, 돈 들이지 않아도 국회의원 한 명한테 가서 잘 해서 나중에 후원금 좀 주고. 이런 게 상급단체들의 어용성을 꽤 심화시키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유명자 : 서비스연맹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급단체들에 다 벌어지는 일들이죠. 현장투쟁에 의해서가 아닌 그런 방식을 통해서 교섭안을 받아 올 때 수혜자가 누구냐. 상급단체 장이예요. 그런 활동을 하면서 상층부에서 자리매김을 하는 가죠. 그럼 꼭 거기 아니라 딴 데 가서도 그 역할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인맥 고리를 붙잡고서.


    봉혜영 : 제 생각에는 소위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노동세력이 기존에는 같은 테이블에서 권력관계를 다투지 못하고 있다가 국회의원이 되거나 노사정위원회 같은 데 들어가니까 권력의 맛을 보고 어용화 되는 면이 있지 않을까요. 그게 점점 밑에까지 내려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서 오늘날 이런 상황에 다다른 거죠.


    유명자 : 결론은 비슷한데 노동자 정치세력화하면서 비례대표제, 정당명부제로 십 수 명 국회의원 나오니까 다 거기에만 매달리는 거죠. 정치세력화가 아주 독약 같아요. 신생노조를 조직해서 노조 만들고 조합원들 교육하는 것도 우리 때하고 결이 달라요. 내용 자체가 달라요. 요즘 불러들이는 강사들 봐요. 다 색깔이 드러나요. 


    사회자 : 수지 동지께 여쭙겠습니다. 수지 동지가 보시는 어용의 규정은 어떤 것인지? 앞으로 ‘달려라 진보’가 연대하는 원칙에 대해서 내부에서 논의했던 것은 어떤 것인지, 반대로 어용이 아닌 투쟁하는 세력은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수지 : 전 좀 다르게 대답하고 싶은 게, 저는 상급단체라든지 자신의 지위라든지 자신의 권위 이런 것들을 놓지 못하는 순간 어용이 된다고 저는 그렇게 느껴요. 그와 동시에 제가 민주노조운동을 하면서 어렵게 느끼는 건 그렇다면 그런 권위를 완전히 버리는 사람들만 우리와 같이 투쟁하느냐? 그것도 아니에요. 저희와 같이 공대위나 지대위를 꾸려서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다 거기에 얽매여 있어요. 마음속으로는 여기가 옳다고 생각하니까, 같이 투쟁하고 연대하겠지만, 사실 속으로는 자기도 더 멋있는 투쟁하고 싶고, 더 좋고 큰 데 가서 발언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용이 되기는 싫으니까 와서 연대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왜 우리와 같이 투쟁하시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거든요. 저분들은 진짜 우리 투쟁에 동의해서 같이 하시느냐고 묻고 싶지만, 사실 입 밖으로는 내기 어렵지요. 이분들과 같이 투쟁하면서 굉장히 애매한 것이 주체들이 노동자로서 노동자 원칙을 지켜 투쟁을 해 나가는데, 이분들은 사실 자기 인생이나 운동맥락에서 노동자성이 별로 보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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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운동하는 것을 봐도 열심히 운동하는 학생이긴 한데, 그 학생이 별로 가난하지도 않고 살아가는데 어려움도 없고 결국은 제가 느끼기에는 그 친구가 투쟁을 열심히 할 수 있는 건 사실 부모님의 도움과 여러 가지 자기 인생의 조건들이 뒷받침해 주니까, 남들보다 열심히 투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어요. 이런 세력들이 많이 보이면서 사실은 젊은 세대에서부터 맑스주의를 내세운 권위주의나 계몽주의 같은 것들을 더 많이 흡수하고, 그러면서 자기가 권위의식을 갖게 되어, 사람들을 계몽해야 한다거나, 데려와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운동을 해 나가는 세력들도 많거든요. 그 친구들이 어쨌든 이렇게 같이 와서 운동하고, 틀린 이야기는 하지 않기 때문에 같이 하지만 저렇게 운동하면 과연 민주노조운동인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보죠. 하지만 그런 세력까지 다 정리하고 가기에는 우리가 너무 소수에요. 그걸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전 더 많아요.


    사회자 : 말씀하셨던 것 중에 좋은 얘기인데 학생운동세력들이 노동자투쟁에 연대하면서, 관료주의를 일찌감치 습득하고 그것에 젖어서 사회에 나가서 상급조직으로 불리는 곳에서도 똑같은 패턴의 운동을 버릇처럼 또다시 하게 되는 악순환, 이 말씀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유명자 : 말 그대로 학생조직에 특히 뒤에 ‘지도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단체가 있는 학생들이 특히 심하죠.


    수지 :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자기 생각이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유명자 : 모 정치단체 학생단위가 빠져나갔는데, 아무리 중앙에서 결정했더라도 단 한 명도 자기 소신껏 행동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우리에게 연대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떠나서 미래가 너무 암담했어요.




    사회자 : 이제 막바지인데 정리를 해야 해서요, 이번 질문은 좀 다른 차원인데 투쟁이 현재 상황에 이르기까지 자기비판의 지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유명자 : 재능투쟁을 하면서 원칙을 지키는 투쟁이라 하는데 별로 맘에 안 들어요. 그 얘기 몇 번 했는데, 사실은 처음 투쟁을 할 때 하고자 했던 기본에도 미치지 못하는 거예요. 기본을 지키지 않고 자본에 유연해지면 어용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어용으로 가는 과정은 자리와 직책과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하면 100% 어용화 되는 척도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쿠데타를 통하든 어용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든 결국 학습지 노조 권력을 장악했어요. 소규모고 작은 조직이고 떠나서 어찌됐던 그걸 붙잡은 거죠. 저는 재능이 원칙을 지키는 척도가 되는 투쟁사업장처럼 된 현실도 너무 화가 나고 서글퍼요. 투쟁 마무리될 때는 처음에 무엇 때문에 투쟁했는지조차 본질도 없어지고 결국 투쟁과정에서 발생한 조합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마무리 합의가 되곤 해요. 그래서 강종숙 동지와 저는 그런 식으로 투쟁의 마무리에 가도 본래 요구의 본질이 없어지는 그런 합의만은 하지 말자고 했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현장에서 습득한 사람으로 보기에는, 정말 그리고 자기비판의 지점이 있다면 강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항상 이 얘기를 해요. 투쟁 2,500일 하면서 한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는데, 단 하나 후회한 것은 2010년 12월 이현숙 집행부 어용세력들이 해고자이기에 투쟁하겠다고 이름 올렸을 때, 철저하게 2007년 임단협에 대한 자기비판과 공개사과, 그리고 반성문 쓰게 하지 못한 거예요, 당시 제가 그것을 내부적으로 제기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이 “해고돼서 왔는데”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제가 더 강하게 제기 할 수 없었던 것은 12명의 해고자 중에 이현숙 집행부보다 못한 자들이 있었거든요. 그들을 거기까지 붙들고 와서 1,000일, 1,500일, 1,800일 함께 투쟁한 것처럼 끌고 온 강종숙 위원장과 지부장인 저의 원천적인 잘못이 있어요. 사측과 연대 동지들에게 알려 질까봐 싸안고 강하게 쳐내지 못했어요. 분명한 어용세력인 이현숙 집행부가 들어올 때 그걸 막지 못 했던 것, 결국은 그게 씨앗이 돼서 저와 첫날부터 투쟁했던 조합원들이 함께 손을 잡고 다수파가 되도록 어용세력을 키워 준 것이 지금도 후회스럽습니다.


    또 하나는 내면적인 부분인데, 제가 그들과 회의 자리 등에서 논쟁하고 설득할 때 좀 더 논리적이고 냉철한 이성으로 상대를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제 성향의 문제도 있지만, 저는 그들을 도저히 용납할 수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누가 봐도 투쟁을 분탕질 치기 위해서, 더욱이 이현숙이 폭언·폭행당했다는 것을 눈으로 본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집단적으로 공개사과와 해명을 요구하면서 지부장의 자질을 문제 삼고 평가하는 수작을 부릴 때, 제가 좀 더 냉철하게 판단하고 세련되게 대처를 해야 했는데 그걸 하지 못한 것을 자기비판합니다. 활동가로서 아니라 대중조직 이끄는 지부장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생각했어야 해요. 장기 투쟁하는 조직의 리더로서 중요한 시기에 내 행동이 이성적이고 냉철했어야 어용을 물리칠 수 있었는데 …
     
    봉혜영 : 저는 서울일반노조에 처음 들어갔을 때 전술과 관련해서 제가 원했던 전술이 있었어요. 사실 전술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제가 낸 계획에 대해서 자기네들이 동력을 맞추지 못해 해 나갈 자신이 없어 그랬는지 어쨌는지 사사건건 반대를 했었는데, 그런 몇 가지를 실천해보지 못한 거에 굉장히 아쉬움이 많아요. 지금 사측이 시간이 2년이 되니까 자기 방어력이 생겨버렸지만, 처음에 그들도 어리바리 했을 때 그런 전술을 밀어 붙였으면 빨리 문제가 해결되어서 상급단체와 그런 어려움도 겪지 않고 바로 해결될 수도 있었던 건데, 나 스스로 내 안에 갇혀서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 있고요. 그 이후에 쓰레기 안이 나왔을 때 저도 마찬가지로 이성적인 대처보다는 감정적으로 용납할 수가 없었어요. 이 바닥에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 나냐고 하면서 말이에요. 저들과 합리적으로 싸우고 절차에 맞게 똑같이 대응하면서 제대로 처리를 못 했던 거죠. 다른 세력을 규합해서 판을 키웠어야 했었는데 그 타이밍을 놓친 것이 많이 아쉽고 그렇습니다.





    사회자 :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책에서 읽은 건데 일본 전공투 시절 학생들이 점거하던 동경대 강당에 “연대를 구해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 미치지 못해 쓰러지는 것을 개의치 않지만, 힘 다하지 않고 꺾이는 것을 거부 한다”라고 낙서가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엄청난 연대투쟁을 해왔는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본의 아니게 고립된 측면들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대 세력이 구해지기보다 쪼개진 측면들이 있고, 이 문제를 타개하는 것이 투쟁의 승리를 위해 나아가는 한 발 전진에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의미에서 향후 계획들과 현재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고민하시는 것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주시고, 오늘 간담회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유명자 :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주체들이 더는 할 게 없어요. 우리는 이대로 가면 되는 거고. 이 지경까지 온 것에 대해서 사실 할 말이 너무 많죠. 그리고 나는 연대가 갈라졌다 생각하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이미 우리 투쟁에 분열로 인해서 말로만 듣고, 막연했던 세력들이 정체를 확실하게 드러냈어요. 확실하게 갈라졌어요. 좌파 블록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정치조직에서도. 연대세력이 갈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공식적으로 지원하고 연대해야 할 세력들이 아예 빠진 거예요. 이제는 자기 합리화, 자기변명을 가지고 빠진 거죠. 그 이외에는 우리는 어느 당이 왔다고 해도 소수세력이었고, 어느 조직이 들어왔다고 해도 항상 소수세력이었어요. 개인과 소수가 연대하면서 고립되기도 하고 연대가 확장되지 않은 투쟁을 해왔지만, 연대를 가져오기 위해 끊임없이 사업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연대세력이 지금 줄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노동조합을 처음 시작하고 간부가 되고 가서 현장의 조합원들을 교육하라고 하는데, 노동조합 활동 쪽으로 제가 가방끈이 짧아서 제 발로 교육센터를 찾아갔던 적이 있어요. 거기서 배운 거라고는 노동조합은 자본에 굴복하면 안 된다, 자본과 타협하면 안 된다, 이 두 가지 밖에 없어요. 저는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그 소신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처럼 싸울 거고, 절대 이 싸움을 지고 싶지 않아요. 사실은 8월 26일 합의하고 나서 복귀자들이 12월 31일 안에 제발 단협 체결해주길 바랐어요. 저도 너무 힘들어서, 속으로는 정말 어용세력이라 하더라도 체결하라고. 그런데 체결도 못 했고 7개월 넘어서 체결한 단협에는 내가 자존심 상해서 투쟁을 접을 수가 없었어요. 최소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활동가라는 뭘 씌우지 않아도 왜 노동조합을 왜 만들었는지, 처음의 마음이라면 이 투쟁을 접을 수 없어요. 어용세력에 패하는 투쟁은 하고 싶지 않아요. 누구 때문이 아니고, 무엇 때문도 아니고,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요.


    봉혜영 : 처음 신규채용 안 나왔을 때도 기존에 같이 연대하던 동지들 증에 떨어져 나갈 사람들은 점차 떨어져 나갔고, 공대위 만들어지고 나서 2년짜리 신규 채용 안 나왔을 때는 주변에 그런 얘기도 있었어요. 노조 이름으로 체결하고 들어가면 2년짜리 신규채용 안 정도는 괜찮지 않으냐는 이야기가 있었죠. 이렇게 두 차례 갈라치기가 됐을 때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저는 그들과 같이 가지 않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고립이라 생각하지 않고, 고립됐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과 같이 갈 수 없고, 절대 같이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수지 동지! 마지막으로 향후 계속 연대를 할 것인데 한 마디.


    수지 : 저는 저를 포함한 연대 동지들한테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나를 포함해서 항상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연대를 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아무도 오지 않는 투쟁사업장에 연대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우리가 잘하는 것처럼, 여기 집회에 와서 내가 이 투쟁을 지지한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책임을 다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자기의 운동을 만들어 가지 마라. 제발 어용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투쟁을 합리화시키지 말고 제발 똑바로 주체의식을 가지고 연대에 임하자.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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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간담회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른 2015년 5월, 자본과 어용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 사업장의 최근 상황을 소개하고, 관련 자료를 덧붙였습니다. [편집자]



    재능교육 투쟁 


    2015년 5월 12일이면 농성투쟁을 시작한 지 2,700일째입니다. 지난 5월 4일에는 사측에서 법원의 가집행을 통해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천막농성장과 현수막, 피켓 등 투쟁 용품들을 모조리 철거해 갔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달려온 연대동지들과 함께 천막농성장을 다시 세우고 투쟁의 거점을 모두 원상복구 했습니다. 현재 재능교육 농성장은 24시간 비상체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에 앞선 지난 4월 20일에는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부름에 민주노총이 함께해야 합니다.’ 라는 선언에 재능교육 투쟁을 지지하는 동지들 1,050여 명이 서명을 해주셨습니다.


    강종숙, 박경선, 유명자 3인과 지대위, 그리고 연대하는 동지들은 박성훈 회장 집 앞(타워팰리스) 선전전, 대형마트 선전전, 현장 지국선전전, 매주 목요일 기도회와 금요일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자본과 어용에 맞서 흔들림 없이 투쟁하여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투쟁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한 지 860일이 훌쩍 넘었습니다. 정규직 전환 없이 우리 투쟁 중단 없다는 각오로 정규직 전환을 통한 복직을 목표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2014.12.3)에는 상급단체인 서울일반노조가 분회를 일방적으로 해산해버리는 관료적이고 반노동자적인 행태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공대위 전 상황실장의 사전 구속영장 발부 등으로 분회의 투쟁은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그러나 분회는 이에 굴하지 않고 원희목 원장 집 앞 1박 2일(2015.2/16~2/17) 투쟁을 만들어냈고,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해왔습니다. 이후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과 2차례의 대화를 갖기도 했습니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에 성실한 교섭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필두로 다가오는 1,000일(9/23)까지는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의를 담아서 집중투쟁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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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언]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부름에 민주노총이 함께해야 합니다 (2015.4.21)


    재능교육 투쟁승리를 위한 지원대책위원회
    간호순 外(외) 연서명자 1052명 일동
     



    재능교육 사측의 수수료 제도 개악에 노동조합이 합의해 주면서 시작된 재능교육투쟁이 2,670일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2013년 8월과 2014년 7월, 재능교육지부 투쟁이 “승리”했다고 선언한 자들이 있었지만, 최근 재능교육 사측은 다시 현장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번의 "합의"에서 현장노동자들의 임금 관련 사항은 전혀 합의된 것이 없어서 회사가 일방적으로 임금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합의”의 주체들은 위탁계약서 개정 시 노조와 합의하여야 한다는 조항마저 사측에 내주고, 2013년 8월 이후에는 사측을 상대로 어떠한 투쟁도 전개하지 않고 오로지 “교섭”에만 매달려 왔기에 사측의 태도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한편 지난 2년 재능교육 투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갈등과 분열 사태에 대해 민주노조 진영은 처음에는 당황하며 몹시 혼란스러워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외면하거나 침묵했습니다.


    하지만 원칙을 지키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고, 사태의 진실과 저들의 어용행태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일부는 오히려 집행부를 자칭하는 자들의 손을 은근슬쩍 들어주었습니다. 더욱이 최근 이러한 양상은 민주노총 투쟁사업장 곳곳에서 빈번하게 더욱 노골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재능교육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스타케미컬,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등에서 벌어진 사태는 민주노조라는 이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하였습니다.


    박근혜 정권과 총자본에 맞서 싸우겠다는 민주노총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형사고발 하고 제명하는 데도 막지 못하는 민주노총, 상급단체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투쟁하는 분회를 해산시켜도 외면하는 민주노총, 보수적인 법원마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 사안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방어하기는커녕 대공장 노조의 눈치를 보는 민주노총, 이것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민주노조의 정신이 살아있는 민주노총의 모습은 아닐 겁니다.


    이 땅의 민주노조는 비자주적, 비민주적인 어용노조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넘어 권력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 목숨까지 걸고 싸우면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의 지속적인 후퇴는 민주노조 운동의 전통을 크게 훼손하였고, 지금은 민주노총 안에서 어용세력과 반노동자적 행위들이 용인되는 것을 넘어 이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끝 모를 추락, 기본마저 무너진 노동자운동, 이제 민주노조의 원칙을 지키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막아내야 합니다. 이 길에 현장의 열망을 바탕으로 민주노총 최초로 조합원 총투표로 당선된 한상균 지도부가 함께해야 합니다.


    2,670일을 넘긴 재능교육 투쟁, 이제는 끝장을 봐야 합니다. 재능교육 투쟁에 연대하고 관심을 가졌던 동지들에게 호소합니다. 재능교육 투쟁의 승리를 위해 다시 한 번 민주노총이 나서야 합니다.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간절한 부름에 민주노총이 답하고 함께해야 합니다.


    민주노조의 기본정신과 노동자 투쟁의 원칙을 지키며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앞장서겠습니다. 기본과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노동자답게 싸우고 있는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십시오.■


    재능교육 투쟁 승리를 위해 1000인 선언 서명에 함께 해주십시오.


    농성투쟁 2,679일! 재능교육 자본을 넘어, 어용세력을 넘어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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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교섭 촉구! 정규직 전환 쟁취!를 위한 기자회견문 (2015.5.6)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동조합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성실교섭 촉구! 정규직 전환 쟁취!를 위한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860일. 보건복지정보개발원 고객지원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를 당하고 거리에서 피눈물로 투쟁한 날이다. 박근혜 정권 낙하산 공공기관장의 대표 격인 보건복지정보개발원 원희목 원장은 해고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을 고발, 구속, 수배, 연행, 벌금, 폭행, 현수막 절도 등으로 탄압했다. 박근혜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공약은 사실 집단해고를 위한 거짓말이었다. 이에 발맞추어 원희목 원장은 노동시장 구조개악, 공공부문 민영화를 선도적으로 밀어부치고 있다.


    860일 동안 보건복지정보개발원은 성실교섭 촉구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정규직 전환 요구에는 선별적 신규채용이나 유예기간을 둔 무기계약직 일부 전환이라는 기만적인 안을 제시했다. 또한, 1년 신규채용 쓰레기 안으로 민주노총 내의 일부 어용세력과 야합한 보건복지정보개발원은 투쟁하고 있는 분회와 공대위를 아직까지도 인정하고 있지 않다. 보건복지정보개발원이 사태해결을 위한 진정성있는 태도를 보이려면 즉각 정규직 전환을 위한 성실교섭에 나서야한다.


    하지만 올해에는 100% 비정규직 직군인 고객지원부 업무의 일부를 엠피씨라는 하청업체에 넘겨 신규채용 인원을 간접고용 하청노동자로 만들고 있다. 강력하고 절박하게 투쟁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우리의 요구는 간단하다. 민주노조를 인정하고, 원희목 원장이 직접 정규직 전환을 위한 교섭에 성실하게 나서라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의 투쟁은 절대로 멈출 수 없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문제해결의 열쇠는 원희목 원장이 쥐고있다. 860일 동안 답보상태였던 상황을 넘어 이제는 결단해야한다.


    그동안 논의되거나 등장했던 '유예기간, 선별적 신규채용, 하청화, 무기계약직, 비정규직 차별철폐ㆍ차별해소ㆍ차별시정ㆍ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은 모두 비정규직 법 제도를 확대 강화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뿐이다. 이는 결국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의 투쟁하는 조합원 2명은 일체의 유예기간 없이 즉각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원직복직 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원희목 원장과 언제든지 조건 없이 대화할 의사가 있으며, 이를 거부함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원희목 원장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바이다. 또한 지금 이곳에 모인 기자회견 참가자들과 공대위는 분회 조합원 동지들과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다.■


    원희목이 성실교섭 직접 책임져라!
    민주노조 인정하는 성실교섭 촉구한다!
    정규직 전환없이 우리 투쟁 중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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