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3호] 노동조합과 코뮤니스트 (상)
  • 조회 수: 3994, 2015-10-12 10:59:54(2013-12-21)

  • 노동조합과 코뮤니스트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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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우리는 작년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을 출범하면서 노동조합을 넘어선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제안했다.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제안하며1)

     
     “지난 수십 년간 사민주의(의회주의), 민족주의, 조합주의 등 노동자계급 내부의 걸림돌은 노동자계급 고유의 무기인 단결력과 전투성, 그리고 계급투쟁에서의 창발성을 무력화시켰다. 자본의 공격은 강화되는 반면 노동자계급의 저항과 투쟁은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자본가, 그리고 계급 내부의 적들에 의해 여전히 여러 장벽에 막혀있다. (생략)

    우리는 낡은 조합주의, 의회주의 세력 운동의 쇠락 속에서도 새롭게 소생하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전망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분출을 촉진하는 아래로부터 실천을 제안한다."
     
     1) 제도권 노조운동을 넘어서는 자립적 노동자운동이 현실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기존의 노조/현장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일 수밖에 없다. 자본이 만들어내고 관료화된 노조운동을 넘어서야 한다. 정규직. 비정규직, 조합원. 비조합원을 구분치 않고, 투쟁하는 노동자 모두를 평의회적으로 포괄하는 ‘수평적 노동자 직접행동’, 노동자투쟁과 실업자, 빈민, 청년, 소수자들의 직접행동이 결합하는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행동(연대)’을 제안한다.
     
     2)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직형식은 내용과 형식이 통일되는 노동자 민주주의와 직접행동에 기반해야 한다. 이것은 투쟁하는 주체들에 의해 직접 선출/소환 가능한 대중총회, 파업/투쟁위원회, 노동자평의회의 형식과 같아야 하며, 노동자 민주주의의 완전한 실현과 노동자 국제주의에 기반한 직접행동만이 계급투쟁의 확산과 자기 조직화를 보장해줄 수 있다.
     
     3) 현재의 자본주의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분출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은 운동의 주체와 최종목표가 불분명한 반자본주의 운동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의 최종목표를 분명히 밝혀주는 공산주의를 전망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생략)

    노동자투쟁과 계급의식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사민주의, 조합주의, 중도주의 정치세력들이 아닌, 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전망하는 코뮤니스트 정치와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직접행동이 만나야 한다. (생략)

    코뮤니스트 정치조직과 계급조직(노동자평의회)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코뮤니스트 직접 정치운동을 실천하자!“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핵심은 낡은 노동조합운동과 사민주의 정치를 넘어선 아래로부터의 직접행동과 코뮤니스트 정치가 직접 만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경로와 입장을 통해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운동과 실천을 주장해왔다. 이글은 노동조합 문제에 대한 보다 실천적인 접근을 위해 노동조합문제에 있어 가장 단호하고 명료한 입장을 가진 공산주의좌파 흐름의 입장을 소개, 평가하여,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논쟁과 새로운 운동이 출현하는데 기여하기 위함이다.

     

    이글은 노동조합의 탄생에서부터 1914년까지,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조합의 변화, 68혁명 이후 현재까지 노동조합의 역할과 계급투쟁과의 관계를 분석하여 실천적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호에서는 노동조합의 탄생에서 68혁명 이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글의 결론 일부를 미리 밝히자면, 코뮤니스트들이 노동조합과 노동자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을 만나고 개입하는 원칙을 소개하고 정립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넘어선 운동, 즉 ‘반노동조합주의 노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 코뮤니스트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과거 코민테른의 노동조합 개입방식인 전달 벨트(노동조합이 당과 계급 사이의 전달 벨트 역할) 전술은 폐기되어야 하며, 코뮤니스트는 노동조합을 지도 장악할 수 없다. 코뮤니스트는 노동조합 활동이나 장악을 위해서가 아니라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과 직접 만나고 가장 의식적인 노동자의 자기 조직화를 위해 노동조합의 한계를 넘어서는 운동에 개입한다.

     

    코뮤니스트는 임금 투쟁이나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어떠한 투쟁도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과 무관하다며 기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코뮤니스트들은 어떻게 노동조합 기구가 항상 이 투쟁들을 궤도 이탈시키고 통제하는지를 지적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한계를 넘어선 비공인 투쟁을 시도해야 한다.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생존조건의 지속적인 악화에 대항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조합의 외부 또는 노동조합에 대항한 비공인 파업의 형식을 취했다. 이러한 투쟁은 파업참가자들의 총회에 의해 주도되고, 총회에서 선출되고 언제나 소환될 수 있는 투쟁위원으로 구성된 파업(투쟁)위원회에 의해 유지 확장된다. 

     

    코뮤니스트는 계급투쟁과 노동자운동에 개입함에서 공장(작업장)뿐만이 아니라, 지역에서도 국제주의/코뮤니스트 노동자 그룹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노동자 정치 그룹은 각각의 위치/ 장소/ 지역에서 코뮤니스트와 동조자로 구성된다.

     

    현시대의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주의는 노동계급을 분리하고 눈을 가림으로써 무장 해제시킨다. 노동계급은 그 힘과 의식을 노동조합 외부에서 그들에 적대하여 싸우지 않고서는 발전시킬 수 없다. 코뮤니스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조직화를 위하여 반(反)노동조합주의 노선"을 고수해야 한다. 노동자총회, 투쟁위원회와 같은 행동을 통해서 코뮤니스트는 공산주의 정치적 틀을 항상 제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혁명적 상황의 성숙은, 반(反)자본주의적 투쟁 기구들의 프롤레타리아 권력기구들로 발전하는 능력과 함께, 노동자 평의회의 특징을 취하는 그러한 조직들의 반(反)자본주의와 혁명적 방향에 따라 명확히 나타날 것이다. 반(反)자본주의와 혁명적 방향은 코뮤니스트노동자들의 활동적이고 조직화된 개입 없이 자발적으로 행사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공세적 시기에 어떻게 투쟁 기구들의 개별적 경험들이 혁명 전략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이다.

     

    물론 노동조합의 국가(자본) 기구화 진행이 아직 온전하지 않고,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거나 노동조합 활동 자체를 탄압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반(反)노동조합주의 노선은 노동조합 안의 노동자를 포기하거나, 반(反)노조정서에 역이용 당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노동조합을 개조하거나 장악할 수 있다는 낡은 환상에 비하면 기우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아직 새로운 운동의 출현과 그 주체가 준비되어있지 않을 뿐이다.


    1. 노동조합의 탄생과 성격의 변화

     

    노동조합은 19세기, 일상생활과 노동조건을 개선할 목적으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심각한 갈등의 국면에서 탄생했으며, 조직과 계급의 이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세기, 자본주의 최대의 번영 시기에, 노동 계급은 종종 격렬하고 처참한 투쟁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이해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 지속적인 조합조직을 건설했다. 그것이 노동조합이다. 이 기관은 노동자들의 생활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개혁과 투쟁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했다.”2)


    “노동조합은 18~19세기에 노동계급이 자신을 방어하고 생활수준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서 성장했다. 그러한 점에서 노동조합은 중요한 투쟁을 해온 노동계급 조직이었고 그들의 계급에 충성을 다 하는 투사들로 구성되었다.”3)  


    비록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려고 시도하지 않는 체제 내의 조직이었을지라도 계급의 진정한 기관이었다.

     

    “여러모로, 이러한 노동조합은, 과도한 관료주의 없이 노동자에 의해 창출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노동조합과는 달랐다. 비록 이러한 노동조합이 계급의 제한된 도구였다는 것 그리고 모든 혁명가들에 의해 이 부분(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노동자의 생활조건을 방어하기 위한 단순한 조직이었다)이 인식되었을지라도 4)


    “노동계급의 방어적인 조직으로써 처음 나타났던 노조들은 인간 이하의 노동환경에 직면했고, 오래된 친목단체나 회사의 확장으로서의 산업적 측면에서 그들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노조는 그들의 열망에 기초해서 개량주의 수준까지도 도달하지 않고 있다. 이데올로기적이며 경제적인 분석을 이용하자면, 개량주의는 혁명적인 행동에 대한 요구 없이 법적인 발전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조합들에게는 발전이냐 혁명이냐에 대한 물음은 전혀 없었으며 더군다나 사회주의에 대한 물음조차 없었다. 노조는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좀 더 참을만하고 덜 굴욕적인 노동환경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증명해왔듯이, 자본에 좀 더 적합한 노동환경을 얻으려는 시도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노동조합들은, 혁명가가 아니라면, 적어도 노동계급의식을 가지며 오늘날 노동조합들의 왜곡된 계급의식, 타락과는 대비되는 건전한 구성을 가진 조직이었다.”5)


    이러한 초기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상승기’ 또는 ‘상승과 자유경쟁의 단계’라는 경제적 조건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현재의 노동조합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당시에는 이러한 개선들이 체제로부터 용인될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마찬가지로 계급의 결합에서 하나의 중심이 되었고, 이 속에서 계급의 연대와 계급의식이 발전될 수 있었다. 그래서 혁명가들은, 노동조합 내부에서, 그것으로부터 "공산주의의 학교"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개입활동을 했다.”6)

     

    “이러한 노동조합은 그것의 역사적인 시기가 오늘날의 노동조합과는 완전히 다르게 탄생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상승 국면 동안에 탄생했으며, “자유경쟁” 시장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 두 가지 측면 - 상승과 자유경쟁의 단계 - 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했다.

     

    1. 비록 자본가 계급이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그 구조는 계급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그러한 개선(생활조건, 노동조건) 비용을 큰 어려움이 없이 흡수할 만큼의 충분한 이윤을 가졌다.

    2. 경제의 세계화 경향은 이미 나타났으나 아직 제국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생산 및 금융 독점은 형성되지 않았다.

    또 다른 본질적인 측면 : 이러한 역사적 국면 동안 부르주아지, 국가는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합법화시키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분명히 중재 조직이지만, 부르주아 국가는 이 중재 조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노동조합/노동자와 부르주아지 간의 충돌을 수반할 뿐이었다. 7)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 또는 자본주의 쇠퇴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노동조합의 특징과 역할은 변했다.

     

    “제국주의 시대인 20세기에 변한 것은 무엇이었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자본주의는 거대한 제조업 및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금융 센터를 형성하는, 제국주의 특징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국제경쟁이라는 맥락에서, 국가의 부르주아지는 노동조합을 합법적으로 인정(이 단계는 19세기 말에 시작했다.)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임금을 관리하기 위해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중재자로서 노동조합을 인정했다 (국제적인 수준의 '국민 국가제도’에 대한 자본의 재평가와 경쟁의 요구에 따라). 수년간 노동조합은 중재 기구의 역할을 했다, 따라서 ‘제도화된’ 노동조합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한 발전은 피할 수 없는, 노동조합이라는 본질의 결과였다 : - 노동자와 자본가 - 라는 두 당사자 사이의 조정을 위한 기구로서 노동조합은 심지어 지배계급과 국가 양쪽에서 승인, 합법성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핵심적인 문제는 19세기를 통해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충돌은 주로 지역적이고 제한적인 특징을 띤다는 것이었다. 제국주의 단계에서 자본주의의 구조 변화 (자유경쟁의 소멸), 생산 및 금융 독점의 보급, 국제 경쟁은 민족국가의 수준으로 충돌의 규모를 상승시키고 국가고용주협회는 노동과 자본 간의 경제적 충돌에 점점 더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수년간, 노동조합은 노동력에 대한 협상, 즉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중재, 기구로서의 그들의 본질적인 특징을 상실하지 않았다. 만약 노동조합에 이러한 본질적인 특성이 남아 있다면, 변화한 것은 그들이 그것을 수행하는 방식이다.”8)


    “20세기 초에 이르러 노동조합의 성격은 변화했다. 사회 전반으로 가치법칙이 확장되면서 노동조합과 다른 중요한 노동계급 조직들은 자본주의 관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는 노동자 대중정당들 역시 이에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사태의 예 중 하나는 20세기 주요 제국주의 전쟁에서 노동조합이 지지를 보냈다는 것이다.”9)  


    “자본주의가 쇠퇴기에 진입하면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노동자계급에게 개혁 및 생존조건의 개선을 용인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노동조합이 더 이상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 옹호라는 그것의 근원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 이후, 그리고 임금노동의 폐지와 그와 더불어 노동조합의 소멸이 주요 사안이 되어버린 하나의 역사적인 상황에 직면한 이후,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의 진정한 옹호자로,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부르주아 국가의 대리자로 되어버렸다. 이것이 노동조합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새로운 쇠퇴기에 유일한 생존기회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전개는 쇠퇴기 이전의 노동조합의 관료주의화를 통해, 그리고 사회생활의 모든 구조들을 자신 속에 흡입해 버리려는 국가의 가차 없는 경향을 통해 조장되었다.”10)


     

    2. 노동조합의 역사적 변화와 계급과의 대립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19세기에서 20세기를 경과하면서 어떻게 성격을 바꾸었으며, 노동자계급과 무엇으로 대립하게 되었는가?

     

    노동조합주의
     

    우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해당되는 노동조합주의는 오늘날 새로운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초기부터 존재했다. 노동조합주의는 자본주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활동이다. 그것의 목표는 자본주의를 다른 생산 양식으로 교체하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자본주의 내에서의 좋은 생활 조건을 보장하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주의의 특징은 혁명성이 아니라 보수성이다.

     

    “노동조합주의는 처음에 산업 자본주의가 최초로 발전한 영국에서 등장했다. 그것이 다른 나라들로 널리 퍼진 후에, 자본주의적 산업에 자연스럽게 경쟁자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특별한 조건이 조성되었다. 초기에 풍부한 미개척지는 마을에서 노동자 부족 현상과 상대적인 고임금 및 좋은 조건들을 만들었다. 미국 노동 총동맹은 나라에서 권력을 갖게 되었고, 점점 그 조합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생활 표준들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었다.

     

    명백히 그러한 조건들하에서 자본주의를 타도한다는 생각이 노동자들의 마음에서 일어날 리는 없다. 자본주의는 그들에게 충분하고, 꽤 안정된 생활을 보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현재 존재하는 질서에 적대적인, 분할된 계급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신대륙에서 성장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가능한 모든 것들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엔 대부분이 유럽에서 건너온 수백만의 사람들이 살 공간이 있었다. 이런 급속한 농업 인구의 증가로 인해, 에너지와 행운이 함께한 노동자들이 자유로운 기능공, 소상인, 심지어 부유한 자본가가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던, 급속히 성장하는 산업이 필요했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본주의적 정신이 노동계급에게 널리 유포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영국에서도 같은 경우가 발생했다. 여기서는 영국이 세계의 상업과 대산업을 독점했고, 외국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었으며, 영국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준 부유한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본가들은 산업 평화를 위해 조합과 고임금을 허락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도 노동 계급은 자본주의 정신에 물들게 되었다.”11)

    현재 거의 모든 노동조합을 지배하고 있는 노동조합주의는 초기에는 프롤레타리아의 가치, 곧 조직화된 투쟁의 정신인 노동자 연대를 배우는 최초의 학교였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의 조직화된 힘의 최초 형태를 구현했다. 하지만 초기 영국과 미국의 노동조합들에서 이런 가치는 종종 잘못 적용되어, 결국 진정한 자본주의 정신인 협소한 동업조합으로 전락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노동조합주의의 형태는 자본주의의 발달 차이들로 인해, 국가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그것은 모든 국가에서 같은 양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 서서히 소멸해갈 때, 노동자들의 투쟁 정신은 때때로 그것들을 변형시키거나, 새로운 조합주의 형식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새로운 계급의식과 불안정 노동계급이 증가할수록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조합주의를 만들었고, 더욱 발전된 자본주의에 적응해 나갔다.

     

    따라서 새로운 조합주의는 모든 조합주의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으며, 노동 계급과 노동조합주의 사이에는 대립과 모순이 존재하게 된다. 19세기 말 ~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생디칼리즘(전투적 조합주의) 역시 그것의 전투성과 무관하게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개량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주의이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이다. 모든 노동조합주의가 노동자들의 투쟁을 체제 내의 개량으로 제한하는 데 반해, 노동자의 삶을 방어하면서도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자계급의 해방으로까지 향하게 하는 것은 노동자평의회이다. 부르주아 권력의 파괴와 직접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평의회의 정신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이다. 

     

    전쟁과 혁명의 시기, 노동조합의 본질

     

    노동조합 형식은 자본주의 상승기인 19세기의 구조적 조건뿐만 아니라 국가-계급-노동조합 관계에서도 노동계급 투쟁의 실제 표현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노동조합은 그러한 형태의 특성을 상실했는데, 이러저러한 노동조합 지도자의 실수 혹은 배신 때문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본질 때문에 ‘제도화된 노동조합’이 되었다.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세계 분할을 위해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일으킨 제1차 세계대전이다.

     

    “사회주의당, 사회민주주의자, 개량주의자, 이들 모두 - 일부를 제외한 - 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전쟁에 끌어들이는 데 도움을 주면서 그들의 민족 부르주아지를 지원하기 위하여 줄을 섰다. 사회민주주의당에 의해 지도되었던 노동조합들은 그들 “자신의” 민족 부르주아지를 지지했다. 이것은 민족국가 체제”를 지키기 위한 입장에 있는 노동조합의 최초의 분명한 사례였다.” 12)

     

    노동조합은 부르주아 국가인 조국의 방어자 역할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착취 구조 안에서 효과적인 부역자 역할을 하게 된다.

     

    “노동조합의 수적인 증가와 사회적 힘은 1914년 이후 계속 증가했으며, 전쟁으로 인해 수적으로 줄어든 몇몇 나라에서도 그만큼 노동조합의 중요성은 점차로 커져 왔다. 노동조합들에게 1914년의 제국주의 전쟁 참사는 그들 자신의 본질로 돌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사건이었다고 이야기된다. 이것은 그때까지 자본주의가 노동조합을 파괴적인 힘으로 두려워했고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협력적인 역할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 공장에서의 “노동자들의 지배(자주 관리가 아닌 노동조합의 노동자통제)”라는 수많은 경험은 자본가들이 만족할만한 효과에 의해 그들을 만족시켜왔다. “노동자들의 지배”는 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약화시켜왔고, 공장의 공정과정을 촉진시키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있다. 노동조합들은 (특별히 자본주의적인 총체인) 조국의 방어자로서 뿐만 아니라 착취의 구조 그 자체 안에서 효과적인 부역자로서 눈에 띄었다.”13)

     

    두 번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인 1917년 러시아에서이다. 러시아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행동이 성공한 유일한 곳이다. 당시 노동조합은 볼셰비키 당에 지도되지 않았고, 혁명적 행동의 주역도 아니었다.

     

    “지배계급(황제와 부르주아 사회주의자)의 정치권력이 빈농과의 동맹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전복되었고 볼셰비키 당에 의해 지도되었던 유일한 시기. 그런데 혁명은 볼셰비키가 기존의 노동조합 지도부를 장악하는 일 없이 일어났다 (“전달 벨트”로서 노동조합을 활용하지 않고서). 혁명가에게 소비에트와 그전의 기본적인 단계인 공장위원회를 이끌 수 있는 다른 조직이 있었다. 볼셰비키는 노동대중과 군인들을 장악하여 그들을 혁명적 행동으로 이끌려고 했지만, 동시에 볼셰비키에 의해 지도되었던 노동조합은 단 한 곳도! 확실히, 없었다. 1917년 전후 러시아에서 노동조합에 의해 공개적으로 수행되었던 몇몇 반혁명적 활동보다 더 적었다. 예) 철도 노동조합은 반혁명적 구조위원회에 참여했고 볼셰비키 군대가 이동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우편 및 전신 노동조합은 스몰리 협회와 교신하여 볼셰비키를 방해하였으며 은행 노동조합은 혁명 조직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파업을 선언하였다.”14)

    세 번째는 이탈리아에서 대중파업과 대규모 공장점거가 잇따랐던 1919~20년의 “붉은 2년” 동안이다. 토리노와 밀라노 등지에서 타올랐던 노동자들의 혁명적 투쟁 상황에서 이탈리아사회당은 손 놓고 앉아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노동총동맹 또한 이들과 함께 투쟁의 확산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혁명적 기회를 유실했고 뒤이어 반동적 공세를 초래했다. 붉은 2년에 이어 끔찍한 검은 2년이 뒤따랐고, 무솔리니 파시스트의 권력 장악으로 반동의 최고조에 달했다.

     

    “최근의 사례는 “붉은 2년” 동안 이탈리아노동총동맹 [CGdL] 의 행동이었다. 공장점거가 한창일 때, 계급투쟁(적어도 단순한 요구의 영역에서라도)을 확대시키기 위한 노력 대신 이탈리아노동총동맹은 이탈리아사회당과 함께 확실한 반대를 했다. 그들은 공장에서의 시위를 고립시켰고 동시에 금속노동자의 쟁의에서 타협을 시도했다. 지올리티(Giolitti) 정부에 제출한 문서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요청했다.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이전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산업의 정확한 상태, 그들의 재정 및 기술적인 작업에 대해서 가능한 한 알아야 하며, 그리고 규제의 실행에 기여하는 노동조합의 소산인 공장 대표자를 통해서, 직원에 대한 고용과 해고를 통제하고 따라서 필수적인 규율과 함께 작업장 생활의 정상적인 과정을 장려한다.”15)


    이러한 노동조합 활동은 그들의 개량주의적 지도부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핵심은 노동조합의 지도부는 개량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혁명적 관점에서 명백하게 혹은 잠재적으로 혁명기였던 1917년과 “붉은 2년”의 역사적이고 중요한 순간 노동조합은 프롤레타리아 투쟁에 걸림돌이 되었다. 비록 1920년대 이후 코민테른이 반혁명의 도구로 전락하여 노동조합을 장악했지만, 이전의 혁명시기 노동조합이 공산주의자에 의해 지도되거나 공산주의 강령과 일치하는 혁명적 행동을 한 경우는 어떠한 곳에도 없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노동조합이 노동계급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본질이며, 노동조합과 코뮤니스트의 관계 설정의 토대이다.

     

    스탈린주의와 노동조합

     

    1930년대 노동조합은 자본의 보조적 기관으로서 자신의 잠재적 특성을 명백히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스탈린주의였다. 서구에서 노동조합의 반동적인 역할과 프롤레타리아 상황의 악화는 러시아의 상황과 연관되어 있었다. 스탈린주의 반혁명이 진행된 이래 예전의 모든 부르주아 세계는 그것으로부터 착취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1936년 이후로 서구에서의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착취를 약화시키면서도 실제로는 착취의 구체화를 강화하는 거의 모든 수단은 스탈린주의 러시아 안에서 그 모델을 찾았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이 노동계급 안에서 자본의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면, 스탈린주의 반혁명은 노동조합에게 매우 강한 힘을 주면서도, 착취를 근본적으로 강화하여 자본가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사례를 제공해 주었다. 결국, 노동조합의 본질적 운명을 폭로하게 된 셈이다.

     

    “정치적 권리와 공장 안팎에서 모임을 개최할 권리에 대한 완전한 억압; 고용주에 의해 강요된 초과노동이나 공식적 노동에 대한 부적합한 기본급; 고용주의 결정에 따른 징계수단이나 벌금, 고용주는 또한 공장 법규를 명령한다.; 시간동작연구와 무수히 많은 통제, 일한 분량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는 노동, 기술적“자격”과 임금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 내에서의 위계적 분화; 오직 자본에게만 이익이 되는 단체협약, 생산자들의 손해로 향하는 끝없는 생산성의 향상, 법에 따른 혹은 실제적인 파업금지 ; 짧게 말해, 서구에서 노조조직을 점점 더 부정적인 조직으로 이행하게 하는 모든 것은 1930년대 러시아로부터 강한 자극을 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자본과 노조에게 영향을 주었다.”16)


    다른 어떤 부르주아지보다도 스탈린식 관료주의는 노동 주기의 가속화와 최대한의 직업분류로 프롤레타리아를 가르고 나누어 착취를 증대시켰다. 러시아에서 노동조합과 관료주의는 그들의 서구식 상대방을 제압했다.

     

    “러시아에서 노동자 관리자는 노동하고 있는 그들의 동료에 대한 착취로부터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 그들은 노동자의 기본급을 능가하며 그들의 팀 안 노동자들의 숫자 비율에 따른 보너스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임금이 보통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로부터 증대되는 것을 보며 이 착취를 증가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구의 관리자들보다 더 분명하게, 노동에서 그들의 동료들의 적으로 변한다.”17)
     

    1939년 통과된 노동법은 말한다.: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의 임금을 특징화시키는 기본적 특징은 전문노동자와 비전문 노동자 사이의 임금에 서열화하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보수로써 소부르주아의 서열화는 사회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수년 동안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는 그치지 않고 서열화와 싸웠다. 

     

    수년 동안 스탈린주의자들은 맑스 사상의 충실한 표현으로써 임금노동을 통한 산업발전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반대로 맑시즘은 임금노동의 폐지와 사회의 경제적 서열화의 폐지, 모든 개인적 요구의 무제한적 만족의 폐지, 개인적 집단적 만족에 필수불가결한 위대한 자유의 폐지를 확립했다. 우리가 만약 그것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혁명적인 어떤 것도 현재의 역사적 고비에 실현될 수 없다. 오래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안에서의 임금차이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직접시장관계에 의해 성립된 조건이다. 러시아에서 이러한 임금격차는 헌법에 따라, 원칙이라는 상태를 확보했으며 결국 이것에 대한 투쟁은 범죄가 된다.”18)
      

    한편,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보다 파업할 권리와 민주주의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던 서구에서 사실상 이러한 권리는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서 그들의 대표, 즉 노동조합이 가진 것으로 인식되었다.

     

    “노동자 자신들에 의해 일어나는 파업은 그것을 파괴하려는 노조나 국가와의 제휴를 맞이하게 된다. 종종 노동자들의 직접적 패배 때문에 혹은 노동자들에게 중재안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그렇다. 1936년의 프랑스의 혁명적 파업이 공산당과 사회주의 정당에 의해 실패한 이후로, 거의 모든 나라는 파업이 노동조합에 의해 실패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19)


    그리하여 실제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파업은 노동조합에게 위임되었다. 그뿐 아니라 계급투쟁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자본과 노동의 일상적 관계 안에서 노동조합은 둘 사이의 완충장치로서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으로부터 노동자를 자본의 요구에 적응시키는 것을 돕는 앞잡이로서 나타나기도 했다. 스탈린주의 러시아에서도 서구에서도 노동자들의 자주적 투쟁이 아닌 노동조합에 의해 독점되어 버린 자본에 대한 노동의 모든 투쟁의 표현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이했을 때, 분명히 드러난다.

     

    “부르주아지가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했을 때, 그것은 부르주아지의 이윤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들은 노동조합들은 일반적으로 ‘희생은 없다’고 선언하면서 시작해서, 곧 다음 말을 덧붙였다. ‘모든 사람들 사이에 그들의 몫을 나누지 않는다면.’ 구체적으로, 그것은 정부와 노동조합 사이, 심지어 직접 정부와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중재자와의 사이에서의 협상이 되었다. 문제는 결코 ‘희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언제나 분명히 ‘어떻게 희생의 도입을 조직하는가.’였다. 그리고 이 대본의 마지막 행동은, 수백 번 연기되었던 것으로, 언제나 똑같았다. 국가 자본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에 의한 새로운 희생이 그것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승리했다며 외친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기 없었더라면 더욱 나빴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3. 소결 : 68 이전 과거 노동조합의 특징

     

    과거의 노동조합들은 많은 점에서 오늘날과는 달랐지만,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노동조합이 자본과 노동 사이의 중재 기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형식에서 필수적인 역할이다. 그리고 노동조합 역할의 발전은 노동조합이 중재 기구의 역할을 했으며, '제도적' 노동조합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동조합은 언제나 노동력에 대한 협상, 즉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중재, 기구로서 그것의 본질적인 특징을 상실하지 않았다.

     

    둘째, 노동조합은 대표단과 대의권이라는 논리가 지배한다. 노동조합의 초기 관료화의 과정은 단순했지만, 이것은 노동조합의 실제 활동의 중요하고 공식적인 반영이었다. 이것은 결국 공식적으로 노동조합-형태의 특징과 연관된다. 사실상 그것은 관료주의의 조건들을 창출하는 중재와 협상이라는 기능과 결합된 바로 대표단과 대의권이다. 노동조합이 파업과 투쟁을 독점하면서 대의권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이것은 노동자 직접행동의 분출과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 노동조합은 정치적으로 개량주의의 온상이다. 노동조합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계속해서 개량주의를 위한 공간일 것이다. 이것은 노동조합-형태의 본질과 관련 있다. 사실상 자본과 노동 간의 중재 기관으로서, 노동조합의 행동 지형은 바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그것이다. 그래서 제3인터내셔널 시기에 노동조합이 혁명 조직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난날 경제 확장시기에 노동조합이 개량과 임금 상승을 얻어낸 것도 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이었지 중재의 결과가 아니었다. 자본의 공격과 자본주의 주기적인 축적 위기는 노동조합들을 더욱 개량주의로 고착화 시킨다.

     

    “경제 위기의 강풍과 역풍 사이에서 노동계급의 노동 및 생활 조건에 대한 자본의 공격은, 그 공격이 민족경제의, 자본주의 발전의, 시장 확장의 이해관계 방어를 위한 합의의 관행에 기초하기 때문에, 각각 이전의 “개선” 을 무효화시킬 뿐만 아니라 심지어 환상에 불과한 그러한 요구의 정식화를 만들어 낸다.

     

    "끊임없이 악화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주기적인 축적의 위기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의 경제적 한계를 받아들인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그 자체가 매일의 계급투쟁에서 주된 걸림돌이라는 것을 노동계급에게 부과한다.”21)

     
    <다음 호에 계속>

     

     - 성승욱 ․ 이형로



    <주>

     

    1)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출범하면서], 2012, 국제코뮤니스트전망

     

    2) [국제공산주의흐름 강령], 1979, 국제공산주의흐름(ICC)

     

    3) <원문> [Response to an Inquiry from Korea],2007, 국제주의자전망(IP) 
       <번역> [좌익공산주의자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2007, 사회주의노동자신문

     

    4) [노동조합, 계급투쟁 그리고 코뮤니스트], 2011, 국제주의공산주의경향(ICT)

     

    5) [혁명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1952, Grandizo Munis

     

    6) [국제공산주의흐름 강령], 1979, 국제공산주의흐름(ICC)

     

    7) [노동조합, 계급투쟁 그리고 코뮤니스트], 2011, 국제주의공산주의경향(ICT)

    8) 위의 글

     

    9) <원문> [Response to an Inquiry from Korea], 2007, 국제주의자전망(IP) 
       <번역> [좌익공산주의자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2007, 사회주의노동자신문

     

    10) [국제공산주의흐름 강령], 1979, 국제공산주의흐름(ICC)

     

    11) [노동조합주의], 1936, 판네쿡

     

    12) [노동조합, 계급투쟁 그리고 코뮤니스트], 2011, 국제주의공산주의경향(ICT)

     

    13) [혁명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1952, Grandizo Munis
     
    14) [노동조합, 계급투쟁 그리고 코뮤니스트], 2011, 국제주의공산주의경향(ICT)

    15) 위의 글

     

    16) [혁명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1952, Grandizo Munis

    17) 위의 글

    18) 위의 글

    19) 위의 글

     

    20) [노동계급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2005, 국제공산주의흐름
     
    21) [오늘날 코뮤니스트의 과업과 노동조합], 1997, 국제주의공산주의경향(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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