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11호를 내면서
  • 조회 수: 2990, 2020-11-22 23:19:30(2020-05-03)
  • 코뮤니스트11호를 내면서


     코뮤니스트 11호 표지(포).jpg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426일까지 확진자가 28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2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는 이제 세계 모든 대륙의 거의 모든 국가로 퍼졌다.

     

    코로나19는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 사회경제 질서를 뒤엎었다. 이윤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바탕으로 한 이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매일 수천 명의 사람이 죽고, 병원은 포화상태이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를 포함한 수많은 나라에서 의료체계가 붕괴하고 있다. 의료물품과 의료장비가 부족하고,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지치고 감염되고 일부는 죽어가고 있다. 환자와 노인들 사이의 끔찍한 분류가 이루어지고, 가난한 사람들과 노약자는 치료에서 배제되어 가장 먼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는 인류의 건강뿐 아니라 자본주의 위기를 심화 시켜 세계 노동자계급에 또 다른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방역 조치로 노동력의 활동이 제한되고, 일상이 멈추면서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이동 제한으로 1분기에만 세계 일자리 33억 개 중 81%가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은 대량실직이 발생하여, 신규실업급여 청구 건수가 최근 4주간 동안 2,200만 명이나 되고, 북유럽 국가에서도 실업률이 두 배 이상 상승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할 수도 있다. 감염병이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감축과 희생이라는 훨씬 더 힘든 시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발발은 2008년 이후 해결되지 않고 지속해온 자본주의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자본은 위기 비용을 노동자계급에 전가하기 위해 코로나19 재앙마저 이용하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패배해 수많은 죽음을 방치한 자본가 정부들이 자국 자본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가 보여주는 끔찍한 광경이다.

     

    감염병에 상대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다는 한국도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자민중의 고통과 희생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물론 감염병 대처에서도 장애인 인권 침해, 이주민 차별 등과 같은 기본권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노동자들의 위험과 고통 속에서도 정부의 정책에 협조해 대중투쟁이 자제되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수많은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은 건강과 기본생활 보장에 대한 즉각적인 요구와 저항이지만, “자본의 이윤을 위해 죽고 싶지 않다.” 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는 전 세계에서 동일하다.

     

    오늘날 자본주의 위기와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한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자본주의) 정상 상태로 돌아갈 것이냐? 정상 상태 자체가 문제였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자본주의에 맞서 싸울 것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로 이행하느냐 아니면 야만으로 복귀하느냐의 문제는 1916년 로자 룩셈부르크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말했다. 부르주아사회는, 사회주의로 이행하느냐 아니면 야만으로 복귀하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지금, 이 순간 우리 주위를 한번 돌아보면, 부르주아 사회의 야만으로의 복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해진다. 이 세계대전, 이것이 야만으로의 복귀이다. 제국주의의 승리는 문화의 절멸을 초래한다. 우리는 그래서 오늘날,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정확히 한 세대 이전인 40년 전에 예언했던 것처럼,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제국주의의 승리와 고대 로마에서처럼 모든 문화의 몰락, 민족 절멸, 황폐, 퇴행, 일종의 거대한 묘지이냐, 아니면 사회주의의 승리, 즉 제국주의와 그것의 수단인 전쟁에 대항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적인 투쟁 활동의 승리냐. 이것이 세계사의 딜레마, 일종의 양자택일이고, 그 저울대는 계급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결정 앞에서 떨며 흔들리고 있다. 문화와 인류의 미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용감한 결의로써 혁명 투쟁의 칼을 저울의 접시 위로 던지는가에 달려 있다. 이 전쟁에서는 제국주의가 승리했다. 그 민중학살의 피 묻은 칼이 잔인한 초과 중량으로 저울대를 비참과 치욕의 편으로 끌어내렸다. 그 모든 비참과 그 모든 치욕은 오직, 이 전쟁으로부터 그리고 이 전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의 손아귀에 놓인 하인의 역할에서 벗어나 정신을 수습하여 스스로 운명의 지배자가 될 것인가를 배움으로써만 상쇄될 수 있을 것이다." 유니우스 팸플릿, 로자 룩셈부르크, 1916

     

    우리는 코로나19 정세를 맞아 국제 코뮤니스트 진영과 함께 세계 계급투쟁 상황을 공유하면서 투쟁의 목표를 명확히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 판단해야 할 코로나19 사태를 음모론이나 낙관론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을 경계하며, 국제주의-코뮤니스트의 원칙으로 전망을 제시하고 실천하면서 계급투쟁 확산과 세계혁명당 건설에 기여할 것이다.

     

    코뮤니스트11호는 이러한 원칙에 충실해지려 노력했다.

     

    코뮤니스트 정치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한가운데 치러진 한국의 총선에 대한 코뮤니스트의 입장을 실었다. 코로나19 사태의 본질과 노동자계급의 대안을 제시하면서, ()의회주의 원칙을 명확히 했다.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미 오랜 기간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고, 코로나19 사태는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최신 경보 신호일 뿐이다.

    코로나19는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지만, 지배계급은 이윤 창출을 위해 착취를 멈추지 않고 있고, 오히려 위기를 노동자계급에 전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자본주의 존재 자체가 노동자계급과 인류의 생존, 그리고 지구상의 생명체 존립과도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 시켜 주고 있다.

    해결책은 오로지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생산, 노동, 인간 자원과 자연 자원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직해 소수의 착취자에게 봉사하는 이윤의 법칙을 대체하는 것뿐이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자의 해방이 의회의 장악이나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부르주아 국가는 계급 위에 있는 기관이 아니라 자본의 지배를 유지하고 방어하기 위한 억압과 통치의 기구이다. 부르주아 국가는 혁명적인 방법으로 전복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 조직화 기구로 대체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와 선거제도에 복종하는 한, 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정치는 투표소가 아니라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국제정세에서는 '코로나19와 자본주의'를 특집으로 다뤘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코로나19 사태와 노동자계급의 대안에 대해서는 추후 심층적인 분석과 전망을 제시할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자본주의 위기의 컵을 넘치게 할 마지막 낙하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몇 개월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의 엄포는 위기 때마다 항상 그래왔듯이 노동자가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 부담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최신 경보 신호일 뿐이다. 지구와 인류는 바이러스보다 훨씬 크고 심각한 질병, 즉 생산 시스템 자체에서 발생하는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을 상품화하여 사회적 관계를 해치고, 자신의 본질인 이윤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하고 황폐화한다. 우리는 이 질병을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지구와 인류는 쇠퇴하는 자본주의로 고통받고 있고, 코로나바이러스는 최신 증상에 불과하다.”

     

    보건의료 시스템의 핵심에서 극복할 수 없는 자본주의 모순의 폭발은 자본주의 쇠퇴기 말기 단계의 명백한 신호이다. 바이러스가 노화에 큰 영향을 미쳐 가장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듯이 보건의료 시스템은 인민의 필요가 아니라 위기와 쇠퇴의 자본주의의 요구에 따라 수년간의 긴축과 관리로 크게 약화하였다. 가치 법칙을 조작하고 무엇보다 부채의 바다로 곤두박질치며 인위적 지원으로 유지해나가는 자본주의 경제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새롭고 혹독한 세계적 불황을 일으킬 정도로 무르고 약해졌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단순히 자본주의적 인류에 닥친 이 재앙의 희생자가 아니다. 그들은 계급의식과 계급연대를 발전 시켜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모조리 지워버릴 수 있는 잠재력과 역사적 능력을 갖춘 계급이기도 하다. 오직 코뮤니스트(공산주의) 혁명만이 분열과 경쟁에 기초한 인간관계를 연대를 기반으로 한 관계로 대체할 수 있다, 생산, 노동, 인간 자원 및 자연 자원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직함으로써 소수의 착취자에게 봉사하는 이윤의 법칙을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의 자발적인 계급투쟁이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투쟁으로 발전하고, 세계혁명당 건설에 기여하도록 국제 코뮤니스트 진영과 함께 연대하고 투쟁할 것이다.

     

    오늘 우리의 요구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그러나 내일 격리와 감염병이 끝났을 때, 노동자로서 직면하게 될 자본주의 바이러스, 즉 앞으로 다가올 생활 수준에 대한 공격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은 우리를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야만을 물리쳐야 한다: 우리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자본가들을 멈추게 하는 것처럼, 우리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물리칠 것이다.”

     

    지난 몇 주 동안 노동자들의 행동은 자본의 이윤을 위해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무력감을 우리의 필요에 따른 저항으로 바꾸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제부터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 방어를 지금의 사회와는 다른 사회의 관점과 연결해야 한다. 우리는 생산을 인간의 건강과 충돌시키지 않는 새로운 사회적 모델이 필요하다. 인류의 집단적 건강과 안녕이 이윤의 논리와 이렇게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 적이 없다. 우리를 내부에서 죽이는 바이러스는 자본주의다. 이 질병과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이 착취와 죽음의 체제에 대한 코뮤니스트(공산주의)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계급 투쟁의 정치적 기구인 세계혁명당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뮤니스트 정치 원칙에서는 소련 사회의 성격과 우리가 건설할 코뮤니즘에 대한 원칙과 참고 자료를 실었다. 또한, 부르주아 선거 정국을 맞아 코민테른 제2차 대회의 의회 전술논쟁 중에서 코뮤니스트 좌파의 반()의회주의 전술을 실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이라는 혁명적 개념이 운동의 중심 목적으로 등장한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는 당의 모든 정치적 활동은 바로 그 목적에 바쳐져야 한다. 적대적인 정당 사이의 모든 충돌, 권력 장악을 위한 모든 투쟁이 선거 캠페인과 의회 토론, 즉 부르주아민주주의 메커니즘 틀 안에서 펼쳐져야 한다고 믿게 만드는 거짓, 그 부르주아적 거짓과 단호히 절연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에게 선거에 참여하라고 호소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들이 부르주아계급과 나란히 활동하는 전통적 방식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서는, 착취자들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자들이 의회라는 동일한 지반 위에 등장하는 광경을 끝장내지 않고서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화에서는 부르주아 정치 서커스인 총선을 맞아 2007년 발표한 빵과 서커스라는 노래를 재조명하는 글을 실었다.

     

    빵과 서커스는 시대 상황에 대한 촌철살인의 풍자곡이면서 권력과 관료화된 운동에 대한 신랄한 비틀기이다. 이 곡에서 우창수는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과 운동의 회절과 변절, 대의주의와 직접민주주의, 노동조합의 관료화와 권력화를 비판하며 혁명과 동학을 연결한다. 그리고 그들의 축제가 아니라 우리의 축제를 벌이자고 말한다. 이 곡의 테마가 된 글을 잠시 빌리면, 그는 월드컵과 수많은 관 주도의 축제, 그리고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등을 로마의 풍자시인이 말했던 그들만의 축제로 보고 21세기 한국사회의 오늘과 실업자, 철거민, 조합에서 해고된 노동자 등을 통해 민중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눈에 대의제 국회는 정략적 이익을 위해 주먹질도 마다하지 않는 21세기의 검투장이며, 민중은 대의제 아래 민중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수기로 전락하고 있음을 경고하며 풍자한다.”

     

    이 밖에도 지난 호에 이어서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내부 논쟁(2)’를 실었다. 어려운 글이지만, 정독해줄 것을 권한다. 또한, ‘엥겔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올 하반기에 본격적인 평가와 계승의 입장을 토론하기에 앞서 혁명 동무 맑스와의 마지막 우정을 보여주는 편지글, 맑스 저서에 대한 공적 책임을 다하는 엥겔스의 글을 소개했다.

     

    이론 글로는 지난 호의 자본주의 경제이론에 이어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를 실었고, 1932년 국제코뮤니스트그룹(G.I.C.)이 발간한 맑스주의와 국가 코뮤니즘을 기획번역으로 실었다. 레닌을 국가 코뮤니스트라고 비판하고 있는 이 글은 추후 국가와 코뮤니즘의 문제에 대한 토론 자료로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코뮤니스트11에는 자본주의 쇠퇴기-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코뮤니스트 동지들에게 특별한 고민과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 주로 실려 있다. 많은 관심과 토론을 부탁드린다. 물론 실천으로 이어지는 토론을 기대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자본주의를 정상으로 돌리겠다는 허위에 맞서 함께 싸우자!

    우리는 결코 코로나19 이전의 자본주의와 낡은 관성과 무기력에 빠진 계급투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므로.

     

    20205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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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뮤니스트 11호 표지(내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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