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 [코뮤니스트 11호] 성 상품화, 성 착취 그리고 자본주의 - n번방, 박사방 집단 성착취
  • 성 상품화, 성 착취 그리고 자본주의

    - n번방, 박사방 집단 성착취

     

     thumb-8cfe93b1c8bf95cd275bd01a95a8cdf7_1586997910_5909_600x337.jpg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 상품화와 성폭력은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일상생활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성 상품화와 성폭력은 성차별을 전제로 행해지고 성차별은 사회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남성 대 여성이라는 대결 구도로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성차별의 사회구조적 배경은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n번방, 박사방 사건을 계기로 부르주아 언론은 성 착취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부르주아 언론은 경제적 착취보다는 남성 가해자에 의한 여성 피해자 착취라는 시각으로만 바라볼 뿐이다.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그런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각으로는 결코 근본적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표피적 시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 상품화와 성차별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본 원인을 밝히기보다 오히려 은폐하기 때문이다.

     

    n번방, 박사방 성 착취 사건은 특정 범죄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단순히 남성만의 놀이문화 때문도 아니다. 이러한 설명은 성차별과 성 착취의 사회적 배경을 아주 쉽게 무시해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일부 남성들의 왜곡된 성 의식에 따른 성 착취에 대해 강력한 처벌로 재발을 방지하자는 국가 이데올로기로 귀결될 뿐이다. 하지만 박사방에는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유료회원과 아르바이트로 유인된 피해자들 그리고 수십 명의 운영자들이 있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착취와 피착취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성차별은 엥겔스가 밝혔듯이 사회경제적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특히 성차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의 상품화를 넘어 사회구조적인 성 착취로 나타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차별은 개별화된 가족에게 사회 재생산을 떠넘기는 것과 연관이 있다. 자본의 총체로서 국가는 여성 차별적인 성 역할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본이 부담해야 할 사회 재생산 비용을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 결국, 가족 내 육아/가사노동은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노동 착취와 가사노동을 더 많이 부담하는 여성은 이처럼 이중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다. 결국, 성 착취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구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없는 노동은 상품을 창출하지 못하는 노동이다.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사용가치와 가치를 지녀야 하며 가치는 교환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 가족 내에서 행해지는 육아/가사노동은 교환되지 않기에 경제적으로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육아/가사노동이 사회적 재생산과 밀접하고 중요한 노동임에도 개별 가족 단위에서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현실에 대해 로자 룩셈부르크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관점에서 가사노동은 아무리 엄청난 희생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것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작은 노력이 모인 것이라 할지라도 생산적 노동이 아니다. ... 이것은 잔인하고 미친 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잔인함과 광기를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성 착취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이다. 성 착취는 여성 억압과 소외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 실질적인 선택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이러한 주장은 여성이 처한 사회적 현실과 성 착취의 사회적 배경에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페미니즘이 남성이 아닌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육아/가사노동을 여성이 더 많이 분담한다고 해서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더 많은 이윤 추구를 위한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구조 속에서 사회 재생산을 개별 가족 단위에 부담을 떠넘기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전체의 문제이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 보았듯이 자본은 의료를 비롯한 사회적 공공부문도 철저하게 이윤 획득의 수단으로 간주한다. 그렇기 때문에 육아/가사노동의 가치화는 더 철저하게 자본에 예속되고 오히려 성별 분업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육아/가사노동의 가치화가 아닌 육아/가사노동의 사회화만이 자본에 의한 이중착취를 근절시킬 수 있다. 노동이 자본의 이윤 추구 수단이 되지 않는 사회, 노동력이 상품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만 성 착취를 단절시킬 수 있다.

     

    하지만 육아와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자본주의에서는 불가능하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생산하지 않는 사회, 노동력이 상품이 되지 않는 코뮤니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코뮤니즘 사회는 여성 노동계급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남성 노동계급과의 연대 속에서만 건설이 가능하다.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자본주의에서는 불가능하고 코뮤니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

    여성남성 노동계급 연대로 성 착취, 노동 착취 극복하고 코뮤니즘 사회 건설로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윤태상

댓글 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notice communistleft 46 2020-07-09
notice communistleft 412 2020-05-15
notice communistleft 546 2020-05-07
notice communistleft 692 2020-05-03
248 communistleft 131 2020-06-24
247 communistleft 109 2020-06-18
246 communistleft 97 2020-06-15
245 communistleft 181 2020-05-31
244 communistleft 149 2020-05-24
243 communistleft 168 2020-05-21
communistleft 149 2020-05-20
241 communistleft 197 2020-05-12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