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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령] 코뮤니즘 ABC : 제1장 자본주의 사회 체제(6~8)

  • 코뮤니즘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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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자본주의 사회 체제

     


    6. 자본

     

    우리는 이제 자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안다. 무엇보다 먼저, 자본은 명확한 가치이다. 자본은 화폐의 형태일 수도 있고, 기계 또는 원료, 또는 공장 건물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자본은 완성품의 형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은 새로운 가치의 생산, 잉여가치의 생산에 이바지하는 가치이다. 자본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가치이다. 자본주의 생산은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계와 공장 건물은 자본의 형식을 띤다. 그러나 기계와 건물은 언제나 자본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가? 확실히 그렇지 않다. 만일 사회 전체가 그 자체를 위해 모든 것을 생산하는 협동적인 공동재산이라면, 기계와 원료가 한 줌에 지나지 않는 부자를 위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일 수 없기 때문에, 기계도 원료도 자본일 수 없다. 다시 말해, 보기를 들면 기계는 자본가 계급의 사적 재산일 때, 임금 노동을 착취하는 목적에 이바지할 때,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데 이바지할 때만 자본이 된다. 가치의 형식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가치는 자본가가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사들이는 수단인 금화 또는 지폐의 형식일 수도 있다. 가치는 노동자가 그것을 가지고 일하는 기계의 형식일 수도 있다. 또는 가치는 노동자가 그것에서 상품을 만들어내는 원료의 형식일 수도 있다. 또 가치는 마침내 팔리게 될 완성품의 형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가치가 잉여가치의 생산에 이바지한다면, 그 가치는 자본이다.

     

    대체로 자본은 끊임없이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전환이 어떻게 생기는지 연구해보자.

     

    . 자본가는 노동력이나 생산수단을 아직 사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를 고용하고, 기계를 조달하고, 가장 질 좋은 원료를 손에 넣으며, 충분한 석탄 등등을 공급하는데 열심이다. 이때 우리는 화폐 형식을 띤 자본을 갖고 있다.

     

    . 이러한 화폐의 공급을 통해 자본가는 시장으로 간다. 물론 그 자신이 아니라, 그는 전화기, 전신기, 그리고 백 개의 도구를 가지고 간다. 이때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구매가 일어난다. 자본가는 돈이 없지만, 노동자와 기계와 원료와 연료를 가지고 공장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것들은 이제 더는 상품이 아니다. 그것들은 상품이기를 그만둔다. 그것들은 판매용이 아니다. 돈은 생산수단과 노동력으로 전환되었다. 화폐의 포장은 제거되었다. 자본은 산업 자본의 형식을 취했다.

     

    이제 작업이 시작된다. 기계가 작동되고, 바퀴가 돌며, 지레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노동자가 땀에 흠뻑 젖으며, 기계도 마모되고 원료가 소비되며, 노동력은 고갈된다.

     

    . 거기서, 모든 원료, 기계와 노동력의 마모가 차츰 많은 상품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자본은 새로운 겉모습을 갖는다. 공장 형식을 가진 자본은 사라지게 되고, 자본은 많은 상품의 형식을 띤다. 우리는 상품 형식의 자본을 갖는다. 그러나 이제 생산이 완료되면, 자본은 그것의 포장만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생산의 과정에서 자본에 잉여가치가 추가되는 동안 가치를 증식시킨다.

     

    . 생산에서, 자본가의 목적은 그 자신이 쓰려고 상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위해, 판매를 위해 상품을 생산한다. 창고에 쌓아둔 상품은 팔려야 한다. 처음에 자본가는 구매자로서 시장에 갔다. 그러나 이제 그는 판매자로서 시장에 간다. 처음에 그는 돈을 가지고 있었고 상품(생산수단)을 사길 바랐다. 이제 그는 상품을 가지고 있고 돈을 얻길 바란다. 이러한 상품이 팔렸을 때, 자본은 다시 상품 형식에서 화폐 형식으로 다시 바뀐다. 그러나 자본가가 받은 돈의 양은 잉여가치의 전체 양이 훨씬 커졌기 때문에 그가 원래 지불했던 돈의 양과 다르다.

     

    그러나 이것으로 자본의 운동이 끝난 것은 아니다. 확대 자본은 다시 작동하고 더 많은 잉여가치의 양을 얻는다. 이러한 잉여가치는 부분적으로 자본으로 증식되고 새로운 주기를 시작한다. 자본은 눈덩이처럼 구른다. 각각의 주기에서 더 많은 잉여가치의 양이 자본에 더해진다. 이러한 결과는 자본주의 생산이 끊임없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은 잉여가치를 노동계급에서 강탈하고 곳곳에서 자신의 지배를 넓힌다. 자본의 특수성은 자본의 급속한 성장을 설명해 준다.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것은 예전에도 있었다. 보기를 들면, 농노제가 지배했을 때 지주나 고전 고대에서 노예소유주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그들의 농노와 노예에 의지해 살았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이 생산했던 모든 것은 지주와 노예소유주가 먹고 마시고 입는다.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부하와 그들의 수없이 많은 식객도. 그때는 거의 상품생산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시장이 없었다. 만일 지주나 노예소유주가 그의 농노나 노예에게 많은 빵과 밀과 생선 등등을 생산하라고 강요했다면, 이 모든 것은 그저 썩어버릴 것이다. 생산은 지주와 그의 식솔들의 물질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데 한정되었다. 그것은 자본주의하에서 아주 다르다. 여기서 생산은 직접적인 욕구의 만족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에서, 상품은 이윤을 더 쌓을 수 있기 위해 판매를 위해, 이익을 위해 생산된다. 이윤이 크면 클수록, 더 좋은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 쪽에서는 이윤을 위해 미친 듯이 사냥한다. 이러한 탐욕은 끝을 모른다. 그것은 자본주의 생산의 주축이고 주요 동기이다.

     

    7. 자본주의 국가

     

    우리가 보았듯이,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의 착취에 토대를 두고 있다. 아주 작은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진다. 노동대중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자본가는 명령한다. 노동자는 복종한다. 자본가는 착취한다. 노동자는 착취당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은 이러한 잔인함과 계속 늘어나는 착취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 생산은 잉여가치를 뽑아내기 위한 실질적 도구이다.

     

    왜 이러한 도구는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해서 작동할 수 있었을까?

     

    어떤 까닭으로 노동자는 그러한 상황을 견뎌냈는가?

     

    이 질문은 대답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대체로 그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본가계급이 잘 조직되었고 강력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부르주아지는 자주 노동계급의 머리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이 목적을 위해 부르주아지가 쓰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수단은 국가와 같은 자신의 조직이다. 모든 자본주의 나라에서 국가는 그저 지배계급의 연합이다. 영국과 미국과 프랑스, 또는 일본과 같은 나라를 생각해보자. 모든 곳에서 우리는 장관, 고위 관리, 국회의원이 자본가와 지주, 공장소유주와 금융계의 거물이거나 또는 이들의 성실하고 보수가 좋은 부하, 즉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신념에서 자본가에 봉사하는 변호사, 은행원, 교수, 장교, 신부, 주교임을 알고 있다.

     

    부르주아지에 속한 모든 이러한 개인들의 연합, 전체 나라를 포괄하고 있고 모든 것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있는 연합이 이른바 국가이다. 이러한 부르주아 조직은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을 갖고 있다. 이러한 목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 쪽의 혼란과 반란을 억압하고, 노동계급에서 잉여가치를 방해받지 않고 뽑아낼 수 있게 하며, 자본주의의 생산수단의 힘을 늘리는 것이다. 둘째 목적은 같은 종류의 다른 조직(즉 다른 부르주아 국가)에 맞서 싸우고, 잉여가치에서 좀 더 큰 몫을 위해 그들과 경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국가는 지배계급의 연합이고 착취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자본의 이윤과 말할 것도 없이 자본의 이해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강도들의 모든 활동을 지시하는 길잡이를 가진다.


    부르주아 국가의 그런 견해에 맞서, 다음의 조건을 더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국가가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만 운영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주장을 생각해보자. 모든 자본주의 나라에는 어린이 노동을 금지하거나 규제하고, 노동일을 제한하는 따위의 공장입법이 있다. 보기를 들면, 독일에서 빌헬름 2세가 통치하던 때에, 국가가 노동자를 보호하는 꽤 건강한 체제가 작동했다. 영국에서, 전형적인 부르주아 장관인 로이드조지는 보험법(Insurance Act)과 노령연금법(Old Age Pensions Act)을 도입했다. 모든 부르주아 나라에 노동자를 위한 병원과 약국, 요양소가 있다. 철도가 건설되었고 이를 통해 잘 사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 똑같이 모든 사람이 여행할 수 있다. 상수도가 도시 곳곳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그런 것들은 공공 서비스를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은 이것은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에서 국가가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이윤에도 마찬가지로 관심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할 것이다. 국가는 실제로 공장법을 어긴 공장소유주를 처벌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까닭으로 그릇된 것이다. 부르주아 당국이 때에 따라서는 노동계급에게 유익한 법과 규제를 통과시킨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르주아지의 이윤을 위해 통과시키는 것이다. 철도를 보기로 들어보자. 노동자가 철도로 여행한다. 이런 까닭으로 철도는 노동자에게도 쓸모 있다. 그러나 철도는 노동자를 위해 건설되지 않았다. 상인과 공장소유주는 상품을 운반하고 병력을 수송하며, 노동자를 운반하기 위한 철도가 필요하다. 자본은 철도가 필요하고, 그 자신의 이윤을 위해 그것을 건설한다. 그것은 노동자에게도 쓸모 있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가 그것을 건설하는 이유가 아니다. 다시 도시 청소 또는 이른바 도시 위생과 병원을 생각해보자. 이러한 경우에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 구역과 다른 구역에 대해서도 걱정한다. 도시 중심에 있는 부르주아 구역과 견주어 보면, 우리는 노동계급의 거주지에서 쓰레기와 파괴된 혐오스러운 것들, 질병 등을 발견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부르주아지는 중요한 것을 했다고 한다. 왜? 질병과 전염병이 때때로 도시 전체로 퍼져서 부르주아지도 감염된다면 그들도 고통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으로, 부르주아 국가와 그것의 도시 시설은 부르주아의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

     

    다른 보기도 있다. 19세기 동안, 프랑스 노동자는 부르주아지에게서 임신 조절법을 배웠다. 인공 도구를 써서 그들은 아이를 전혀 갖지 않거나 두 명 이상 낳지 않게 되었다. 노동자의 빈곤은 끔찍했고, 많은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 산아제한의 결과로, 프랑스의 인구는 거의 정체되었다. 프랑스 부르주아지 국가에서 병사가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소란이 일어났다. “민족이 사라져가고 있다! 독일은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더 많은 병사를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해마다 병역판정을 받은 사람이 병역에 맞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서 내친김에 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군인은 더 작아졌고, 그들의 가슴둘레도 더 줄어들었으며, 훨씬 더 약했다. 그리고 이제 보시라! 부르주아지는 더 “자유로워”졌다. 그들은 노동자가 더 많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려고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도록 주장하기 시작한다. 틀림없이, 암탉을 살찌우면, 더 많은 계란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경우에, 부르주아지는 확실히 노동자에게 유익한 조치를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그 자신에게 이로울 때만 그렇게 한다. 그러나 많은 사례가 보여주고 있듯이, 노동계급의 압력 때문에 부르주아 국가는 노동자에게 유익한 조처를 했다. 거의 모든 공장법은 노동계급 측의 위협 결과로 확보되었다. 영국에서, 노동일(하루 10시간)에 대한 맨 처음 법적 제한은 노동계급의 압력을 통해 생겨났다. 러시아에서, 차르 정부는 혼란 상태와 노동자의 파업에 놀랐기 때문에 최초의 공장법을 통과시켰다. 이런 문제에서 노동계급의 적들로 이루어졌던 국가, 그 자신의 이윤을 방어하는 경제조직인 국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내일 두 배로 굴복하는 것보다 오늘 한 번 양보하는 것이 더 좋다.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양보하는 것이 더 좋다.” 파업하는 노동자의 요구에 굴복하고 추가로 반 페니 동전을 그들에게 양보한 공장 소유주는 공장 소유주이기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 국가가 노동계급의 압력 때문에 몇몇 하찮은 양보를 했을 때 국가의 부르주아적 특성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부르주아 조직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할 뿐 아니라, 아주 많은 하부조직을 갖고 있고 사방에 있는 하부 조직의 쟁점에 촉수를 뻗치기 때문에 이러한 조직 가운데 가장 복잡하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의 주요 목적은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보호하고 강화하며 확장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에 맞서 국가는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잔인한 폭력과 정신적 예속이다. 이것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가장 중요한 도구를 이룬다.

     

    잔인한 폭력의 조직 가운데 군대와 경찰과 감옥과 법정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그다음에 스파이와 선동가, 조직된 파업파괴자, 살인청부업자 등과 같은 보조 기관을 말해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군대는 특수한 방식으로 조직된다. 맨 꼭대기에는 장교 집단, 견장 착용자집단이 있다. 그들은 지주계급과 부유한 부르주아지 출신이고, 그리고 부분적으로 인텔리겐차(지식계급) 출신이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지독한 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들은 특별 학교(러시아에서 사관학교나 융커 학교)에서 교육받았다. 그곳에서 그들은 사람들을 치는 방법, “유니폼의 영예를 유지하는, 즉 사병을 절대복종시키고 그들의 하나의 졸병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귀족과 부유한 부르주아지 가운데 가장 빼어난 성원이 육군이나 해군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계급장과 훈장을 단 고관인 장군이나 제독이 된다.

     

    장교들은 결코 가난한 계층에서 나올 수 없다. 그들은 일반 병사 대중을 완전히 틀어쥔다. 병사들은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결코 묻지도 못하고, 그저 명령을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기만 하는 환경의 영향에 흠뻑 빠져 있다. 그런 군대는 기본적으로 노동자를 견제하려고 한다.


    러시아에서 차르 군대는 되풀이해서 노동자와 농민을 억압하는 데 익숙했다. 알렉산드르 2세가 통치할 때, 노동해방이 시행되기 전에, 그곳에서는 많은 농민 반란이 있었다. 이러한 반란은 군대가 모두 진압했다. 1905년에 군대는 모스크바 봉기 동안에 노동자에게 총을 쏘았다. 군대는 발트연안 지방과 코카서스, 시베리아에 토벌대를 데리고 갔다. 1906년~1908년에, 군대는 농민 봉기를 억압했고 지주의 재산을 방어했다. 전쟁 동안, 군대는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와 코스트로마와 그 밖의 다른 곳에서 노동자를 총살했다. 장교들은 특히 잔인했다. 외국 군대도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독일에서, 자본주의 국가의 군대는 노동자를 억압하는 데 익숙했다. 군대는 맨 처음 일어난 해군 봉기를 진압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뮌헨, 독일 곳곳에서 일어난 봉기를 군대가 무참히 진압했다. 프랑스에서, 군대는 때때로 파업자에게 총질을 해댔다. 아주 최근에, 군대는 노동자와 많은 러시아 혁명적 병사에게 총을 쏘았다. 영제국에서, 아주 최근에, 군대는 아일랜드 노동자가 일으킨 봉기, 이집트 노동자의 봉기, 인도의 봉기를 진압했다. 영국 안에서도, 병사들은 노동자의 대중 집회를 공격했다. 스위스에서, 파업이 일어날 때마다 기관총 부대가 동원되었고 이른바 밀리티아(스위스 군대)는 유색인을 소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밀리티아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쏘았다. 미국에서 군대는 노동계급 주거지에 불을 질러 집들을 완전히 파괴했다(보기: 콜로라도에서 파업이 일어났을 때). 자본주의 국가의 군대는 지금 러시아, 헝가리, 발칸, 독일에서 일어난 노동자 혁명을 목 졸라 죽이려고 동맹을 맺고 있다. 그들은 전 세계에서 반란을 진압하고 있다.

     

    경찰과 헌병대. 정규군에 더하여, 자본주의 국가는 선발된 깡패의 군대, 특수 훈련을 받은 군대를 갖고 있고, 특별히 노동자와 싸우는 데 이용했다. 이러한 제도는(보기를 들면 경찰) 사실 도둑을 잡고 사람들과 시민의 재산을 보호하는기능을 갖지만, 그와 함께 경찰은 불만을 품은 노동자를 체포, 처형, 처벌하기 위해 유지되었다. 러시아에서 경찰은 지주와 차르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보호자였다. 러시아에서 비밀경찰 또는 오흐라나로 알려진 정치경찰과 마찬가지로, 모든 자본주의 나라에서 비밀경찰과 헌병대는 특히 잔인했다. 많은 탐정, 도발자, 스파이, 파업파괴자는 공식 경찰과 협력해서 일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흥미로운 것은 미국 비밀경찰의 방법이다. 그들은 많은 사적이고 준 공식적인 “탐정 사무소”와 동맹을 맺고 있다. 냇 핀커톤(Nat Pinkerton)의 악명 높은 모험은 정말로 노동자에 맞선 하나의 작전이었다. 탐정은 노동자의 지도자에게 폭탄을 속여 팔았고, 자본가와 그 주변 사람들을 죽이라고 그들을 선동했다. 그런 “탐정 사무소”는 많은 파업파괴자(미국에서는 “스캡스 scabs”로 알려졌다)와 기회가 있을 때 파업노동자를 살해하는 무장한 깡패 집단을 모집한다. 미국 자본가의 “민주적인” 국가는 고용했던 이러한 암살자들이 아주 비밀리에 활동해서 미국에는 나쁜 일이 없다!

     

    부르주아 국가에서 법 집행은 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자위 수단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자본주의 소유권을 침해하거나 자본주의 체제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처리하는 데 이용된다. 부르주아 법은 리프크네히트를 감옥으로 보냈지만, 리프크네히트의 살해자에게 무죄 선고를 했다. 국립 교도소는 부르주아 국가의 집행자가 했던 것처럼 아주 효율적으로 셈을 청산한다. 그들의 공격은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겨냥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런 제도는 노동계급에 대한 직접적이고 잔인한 억압에 영향을 준다. 자본주의 국가가 쓸 수 있는 정신적 복종의 수단 가운데에는 특히 3가지를 말해야 한다. 즉 국립 학교, 국가 교회, 국가 또는 국가가 지원하는 신문 등이다.

     

    부르주아지는 힘만으로 노동 대중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노동자의 두뇌를 거미줄에 완전히 걸려들게 할 필요가 있다. 부르주아 국가는 노동자를 노동하는 소로 바라본다. 이러한 짐승은 일해야 하지만, 사육사가 동물원에서 동물을 훈련시키는 것처럼, 훈련받고 길들여져야 한다. 비슷하게, 자본주의 국가는 전문가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를 바보로 만들고 복종시키게 한다. 국가는 부르주아 선생과 교수, 성직자, 부르주아 작가와 저널리스트를 먹여 살린다. 국립 학교에서 이들 전문가는 자본에 복종하고 폭도를 경멸하고 증오하라고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그들은 아이들의 머리에 혁명과 혁명운동이 황당무계한 것이라고 주입한다. 황제와 왕, 산업계의 거물은 찬양받는다. 교회에서 국가의 봉급을 받는 목사는 모든 권위가 신으로부터 나온다고 설교한다. 날마다, 부르주아 신문은 이러한 거짓을 읊어댄다. 그러나 노동계급 신문은 자본주의 국가가 탄압한다. 그런 조건에서 노동자가 쉽게 스스로 진흙탕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독일 제국주의 도당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병사의 다리가 필요할 뿐 아니라, 그들의 머리와 가슴도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국가는 노동자가 말처럼 일하고 모욕을 참아 낼 가축을 닮게 하려고 노동자를 교육시키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자본주의 체제는 그 체제의 발전을 보증한다. 그 체제는 착취의 기계를 작동시킨다. 그것은 잉여가치를 끊임없이 노동계급에서 뽑아낸다. 자본주의 국가는 임금 노예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경계하고 잘 보살핀다.

     

    8.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모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또는 부르주아 사회가 잘 작동하는지 아니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를 이제 설명해야 한다. 서로 간의 적응이 만족스러울 때 모든 것은 온전하고 좋다. 시계의 메커니즘을 고려해보자. 맞물리는 톱니바퀴가 서로 제대로 맞추어져 있으면 시계는 정확하고 자유로이 돌아간다.

     

    그럼 이제 자본주의 사회를 보자.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더 온전하게 구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무 어려움 없이 인식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그 사회는 커다란 모순과 재앙적인 결점을 나타낸다. 먼저,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생산과 분배는 아주 무질서하다. “생산의 무정부성이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자본주의 기업가(또는 자본주의 회사)가 서로 따로따로 상품을 생산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고 각각의 물건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합계를 내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 소유주는 그저 자신들에게 가장 이윤을 많이 안겨주는 것과 시장에서 자신들의 경쟁자를 가장 잘 물리칠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하여 생산한다. 그에 따라 상품이 지나치게 많이 생산된다. 물론 우리는 전쟁 이전의 날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면 상품이 팔리지 않는다. 노동자는 상품을 살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위기가 생긴다. 공장들은 문을 닫고, 노동자는 거리로 쫓겨난다. 게다가 생산의 무정부성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부른다. 개개 생산자는 다른 사람의 손님을 유혹하고, 시장을 독점하길 바란다. 이러한 투쟁은 다른 형식을 띤다. 그것은 두 공장 소유주 사이의 경쟁으로 시작된다. 그러한 투쟁은 세계 전쟁으로 끝난다. 그 전쟁에서 자본주의 국가는 세계시장을 먹기 위해 서로 다툰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서로의 작업을 방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는 요소들 사이에 직접적인 갈등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모순은 생산의 무정부성이다. 그것은 위기와 서로 죽이는 경쟁, 그리고 전쟁으로 이끈다.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두 번째 모순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고려해보면, 자본주의 사회는 하나의 사회가 아니라 두 개의 사회이다. 한편으로 그 사회는 자본가들로 이루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들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두 계급 사이에, 끊임없이 타협할 수 없는 적대성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계급전쟁이라고 말한다. 또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측면이 서로에 대해 잘 조화하지 못할 뿐 아니라, 끊이지 않는 갈등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의 고려에 달려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연구해서 그것의 변화를 설명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이 차츰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때 우리는 확신을 갖고 자본주의가 장수하길 바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자본주의 기구의 여러 측면이 서로서로 훨씬 더 폭력적으로 충돌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다면, 만일 우리가 구조적 결점이 끝내 터진다는 것을 알아챈다면, 그땐 명복을 비노라!”고 말할 때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자본주의의 발전을 연구해야 한다. <계속>


    니콜라이 부하린·프레오브라젠스키 지음

    황동하 옮김


    <참고 문헌>

     


    Bogdanoff, A short Course of Economic Science.

    Kautsky, The Economic Doctrines of Karl Marx.

    Kautsky, Erfurt Program.

    Lenin, The State and Revolution.

    Engels, The Origin of the Family, of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Engels, Development of Socialism from Utopia to Science.



    <영문 출처> The ABC of Communism(Ann Arbor Paperback : The Univ. of Michigan Press, 1966) 

    <한국어 출처> 빛나는 전망 출판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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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코뮤니스트는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기에 외부로부터의 이론적 공헌과 열린 토론을 환영합니다.

    코뮤니즘 ABC는 '강령 토론 자료'로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의 입장과 다른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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